[미디어스=탁종열 칼럼] 국민의힘과 정부는 12일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고 실업급여 제도 개선 방안을 밝혔다. 현재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60%로 낮추거나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일하는 사람이 더 적게 받는’ 기형적인 현행 실업급여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는 원칙에 뜻을 같이 했다”며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기준 월 최저 실업급여는 184만 7040원으로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소득 179만 9800원보다 높다고 밝히면서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의 27.8%는 월급(세후)보다 더 많은 돈을 실업급여로 받았다고 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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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 이후 보수신문은 ‘시럽급여’라는 프레임으로 ‘실업급여’의 의미를 부정하고 세대별·성별 갈등을 조장하는 혐오보도를 했다. 국민일보는 <“일해서 번 돈보다 많아”…달콤한 ‘시럽급여’ 손본다>, 중앙일보는 <“달콤한 시럽급여 안 된다”…당정, 실업급여 하한액 하향·폐지 검토>, 서울신문 <쉬면 더 벌게 하는 ‘시럽급여’…당정, 확 뜯어고친다>, 동아일보 <“실업급여가 달콤한 ‘시럽급여’ 돼”…당정, 하한액 낮추거나 폐지 검토>, 매일경제 <월급보다 많은 ‘시럽급여’ 없앤다…前임금의 60%만 지급> 등의 기사를 통해 정부와 한통속임을 드러냈다. 이번 당정의 실업급여 개편 안이 나오기 이전과 이후의 보도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명확하게 형성된 ‘보수신문과 윤석열 정부의 야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올해 1월 말 보수신문은 일제히 <실업급여 하한 185만 원  vs 최저임금 201만 원 ...일할 맘 날까>(1/27 동아일보), <"일하면 바보" 소리 낳은 실업급여 구멍 손 봐야>(1/31 서울신문), <최저임금보다 더 받는 실업급여…누가 일하려 하겠는가>(1/31 서울경제) 등 사설과 기획 기사를 통해 실업급여 개편을 주문했다. 그리고 1월 30일, 정부는 실업급여 수급을 지금보다 더 까다롭게 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제5차 고용정책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현금지원에서 구직자의 취업 촉진으로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실업급여 지원의 문턱을 높여 실업급여를 둘러싼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며 “현재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더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정부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 25일 <‘실업급여 반복 수령’ 4년 새 24% 늘어…회사에 “해고해 달라” 요구도>, <월급보다 더 받는 실업급여 OECD “이런 나라는 한국뿐”>, <10조 쌓여있던 고용기금, 文정부 5년 만에 고갈> 기획 기사를 통해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사설 <월급보다 더 주는 실업급여, 누가 일하겠나>를 통해 “실업급여 하한액과 최저임금 연동을 끊거나,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60% 정도로 낮춰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조선일보는 “실업급여 조건인 구직 활동의 흔적만 남기기 위해 면접장에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무늬만 구직자’도 있다”며 ‘도덕적 해이’를 지적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면접노쇼’ 프레임은 전혀 새롭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2021년 9월 3일에도 "정부가 실업급여만 노리는 얌체 구직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며 "실업급여 요건인 ‘일정 기간 내 정당한 구직활동’ 여부 증빙을 위해 이력서만 제출하고 면접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조선일보의 기사에 대해 '언론보도설명'을 내어 "이력서만 제출하고 면접에 응하지 않는 경우 구직활동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실업인정 과정에서 ‘면접확인서’를 검토하여 면접이 허위로 확인되는 경우 강력히 제재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5월 26일자 사설 
조선일보 5월 26일자 사설 

조선일보에 이어 한국경제가 당정 공청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인 지난 11일 <실업급여액, 최저임금의 80%…수급자 70%는 재취업 안한다>, <베트남여행 중 실업급여 1700만원 타냈다>, <외국인 수급자도 4년 새 2배…절반은 중국 동포> 기획 기사를 통해 분위기를 띄웠다. 한국경제는 같은 날 사설 <실업 양산하는 실업급여…근로의욕 떨어뜨리는 ‘복지 함정’ 깨야>에서 “실업자를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인 실업급여가 오히려 실업을 부추기고 고용의 악순환을 조장한다”며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제도 전반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는 방안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수신문과 고용노동부, 국민의힘의 주장은 일부의 문제를 전체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진실을 은폐했다. 한겨레는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 또는 폐지’의 주요 근거로 내세우는 ‘세후 최저임금과 실업급여 하한액의 역전 현상’에 대해 ‘착시’라고 밝혔다. KBS는 “세금과 사회보험료 명목으로 근로소득에서 10.3%를 빼 세후 임금을 산정한 것은 현실을 온전히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팩트체크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소득에서 원천 징수되는 국세, 지방세, 4대 보험료를 10.3%로 일괄 적용했는데, 최저임금 노동자는 대부분 근로소득세가 면제되며(우리나라 근로소득세 면제율은 37%임) 두루누리 사업 지원(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 가운데 월 평균 보수가 260만 원 미만이면,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의 80%를 3년 간 지원)을 고려하면 ‘월 구직급여가 월 최저임금보다 많다’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과장됐다.

한겨레 보도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다음 날 "세후 소득 산정 시 정부 지원금을 포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이 해명은 “정권이 달라지자 말을 바꿨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1년 8월 25일, 한국경제는 <‘세금 일자리’에도 실업급여 주더니…고용보험료 또 올릴 듯>에서 "지난해 기준 실업급여 월 하한액(주 40시간 풀타임 근로자 기준)은 최저임금보다 높았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실업급여 혜택이 더 커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같은 날 언론보도설명에서 "2021년 현재 최저임금은 월 182만원으로 구직급여 월 하한액 179만원보다 높은 수준이다"고 밝혔다. 2021년에 존재하지 않던 ‘세전·세후 소득’이 윤석열 정부에서 갑자기 툭 튀어 나왔다. 고용노동부 담당자에게 “2021년에는 사용하지 않던 ‘세전·세후 소득’을 올해 사용한 배경이 무엇인가”를 물었으나 이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정권이 바뀌자 고용노동부의 입장이 뒤바뀐 사례는 또 있다. 2021년 보수신문에서 연일 “실업급여의 높은 보장성으로 고용보험기금이 고갈될 위기이다”, “‘세금 일자리’에도 실업급여 주더니…고용보험료 또 올릴 듯” 등의 보도가 이어지자, 고용노동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언론보도설명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지급수준이나 지급 기간은 OECD 주요국에 비해 낮아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에 대한 필요성이 지속 제기됐다"며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 후에도 여전히 OECD 주요국에 비해 높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OECD 주요국에 비해 낮은 실업급여 보장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국가의 책무가 180도 바뀐 셈이다. 

KBS는 <실업급여가 세후 임금보다 많다? 따져봤습니다>를 통해 “정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실업급여가 평균임금의 60%인데 비해 독일은 순임금의 60~67%, 프랑스는 기준임금의 57∼75%, 일본은 임금일액의 50~80%” “지급기간도 한국은 최대 270일인데 독일과 프랑스는 최대 24개월, 일본은 최대 360일로 상대적으로 짧은 편에 속했다”면서 “한국의 '실업급여의 보장성'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떨어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5년간 3번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실업급여 수급자 중 계약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비율도 늘고 있다” “실업급여를 타는 이유도 ‘권고사직 등 경영상 실직’에서 ‘근로계약 기간 종료’로 변하고 있다”며 이를 근거로 실업급여의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반복적인 실업급여의 원인이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고용의 불안정 때문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보수신문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쉬면서 실업급여나 타는 게 더 좋으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는가”라고 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실직 전 고용 안정성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 및 재취업 행태’ 보고서 중
​한국노동연구원 ‘실직 전 고용 안정성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 및 재취업 행태’ 보고서 중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간한 ‘실직 전 고용 안정성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 및 재취업 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실업급여 수급률은 21.3%에 불과하다. 실직 전 고용이 불안정했던 근로자(이하 임시·일용직)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5.8%에 불과하며, 특히 30세 미만 임시·일용직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6.9%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권익성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청년층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잦은 이직이나 자발적 이직으로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갖추기 힘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임시·일용직 실업급여 비수급자의 86.3%는 실업급여 수급요건을 갖추지 못해 실업급여를 신청하지 못했다. 고용보험이 가입되지 않은 사업장에 근무했거나 근로시간이 짧아 고용보험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이 높다. 재취업까지 평균 소요 기간은 임시·일용직은 7.7개월, 상용직은 8개월로 조사됐다. 실직 노동자들은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생계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득권 카르텔’의 중심에 똬리를 틀고 있는 보수신문은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들을 왜곡해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윤석열 정부는 이렇게 오도된 여론을 앞세워 불평등을 조장하고 노동탄압에 박차를 가하는 ‘악순환의 공범자’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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