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때 아닌 정부 여당의 고속도로 인질극으로 정치와 언론 전반이 어지럽다. 도대체 이럴 일인가 싶다. 애꿎은 양평군민들만 불행해졌다.

의혹의 핵심은 명확하다.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마친 고속도로 종점이 이 정권 들어 석연치 않게 변경된 배경에 권력의 손이 작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변경된 종점 인근에 대통령의 처가 일가가 소유한 땅이 축구장 5개 넓이에 달한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이게 ‘괴담’이거나 ‘가짜뉴스’라면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잘 하면 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관련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관련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별안간에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고 더불어민주당 탓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기-승-전-김건희’로 무책임하게 의혹을 제기해 사업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전에 ‘기-승-전-김건희’에 비견될 만한 무책임한 문제제기를 한 일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에 와서 이런 황당한 주장의 빌미를 잡힐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판단과 원희룡 장관이 이런 이유로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는 게 정당하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다. 가령 조선일보는 지난 7일자 사설에 “민주당은 마구잡이 의혹 제기를 그만하고 정부는 구설이 없을 양서면을 종점으로 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다시 추진했으면 한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8일자 사설에 “장관이 책임감을 갖고 국정을 수행하는 대신 정쟁에 뛰어들어 국정을 볼모로 치고받은 꼴”이라며 “백지화라는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내린 장관에게 엄중한 책임부터 물어야 한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10일자 사설에 “야당의 의혹 제기가 근거 부족의 무리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주무 장관이 1조 8000억 원에 이르는 국책사업을 말 한마디로 뒤집을 수 있는지 의아하다”며 “민생보다는 정치적 고려를 앞세운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세 신문이 ‘보수언론’이고 이 정권에 비교적 우호적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양식있는 국민 중 원희룡 장관이 잘했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여당과 정부는 민주당이 사과를 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면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인질극을 연상케 한다.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끝내 죽일 것이다!” 자기들이 봐도 이상하니 이제는 주민투표 등을 통해 결정하자는 아이디어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

중앙일보는 “해당 지역 여론이 원안보다 정부 변경안에 우호적이란 판단,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책 사업에 마냥 손 놓고 있는 것에 대한 여권 내부의 부담감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썼다. 양평군민의 입장에선 정부의 변경안이 더 좋을 수 있다. 애초의 원안은 두물머리 인근 차량 정체 해소를 목표로 해 양평군민에 다소 간접적 이익을 안기는 정도지만, 변경안은 실제 양평군민들이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지역의 고속도로 나들목 활용도가 크게 개선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것은 원안이라는 점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것은 주민이 원하는 모든 인프라 사업에 재정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국책사업을 시행하기 전 경제성 등을 따지도록 한 제도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지만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아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가 안돼 사업 추진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현재 원안의 방식으로 간신히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사업 시행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이런 맥락까지 고려하면 단지 ‘양평군민이 원하는 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국책사업의 실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가짜뉴스’니 ‘괴담’이니 하지만 노선 변경에 따른 의혹 제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대다수 언론의 평대로 대통령 처가 특혜 의혹과 고속도로 노선 결정은 상관이 없다는 걸 명확하게 증명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그냥 원안을 추진하면 되는 일인데, 이렇게 ‘정치적 기술’을 쓰니 비판이 제기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언론이 이 ‘기술’에 편승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우려된다. 조선일보는 원안을 따르면서 민주당 인사가 과거 주장한 대로 나들목을 신설하면 김부겸 전 총리 집값이 오른다는 둥, 인근에 더불어민주당 특정 인사 집안이 보유한 땅 면적이 상당하다는 둥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특이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 특혜’란 논리가 아니라 ‘김건희 일가에 특혜라면 이것도 특혜’라는 논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더럽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면 상대 역시 더럽다는 걸 증명하라’는 식인 셈인데, 그렇다면 어느 쪽이든 특혜가 있어서는 안 되니 대대적인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것이 맞는 결론 아닌가? 특검 얘기로 가면 수사기관도 발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수사는 밀행성이 생명이라고들 했으니 신속히 국토교통부, 양평군청 및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설 것을 촉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여론전’이 필요하다면 고령인 제인 구달 박사를 만나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인 김건희 여사가 두물머리 환경 보호 운동에라도 나서면 될 일이다. 마침 두물머리는 ‘유기농 운동의 메카’로 불리다 이명박 정권 당시 4대강 사업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대통령 퇴임 후 양평에서 유기농업에 종사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어떤가? 유기농을 하겠다는 사람이 부동산 개발로 인한 시세차익을 추구하진 않을 거 아닌가? 가짜뉴스를 탓하며 가짜뉴스 걱정으로 날을 지새다 때가 되면 스스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퍼다 나르는 정치-언론 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게 낫지 않겠나?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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