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정권의 최근 두드러진 통치 방식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전 부처의 수사기관화이다. 감사인지 수사인지 직장 내 괴롭힘인지 구분되지 않는 일을 계속 벌이는 감사원이 대표적이다. 국민권익위원장도 검사 출신이 맡는다고 하니 ‘환상의 콤비’가 될지 모르겠다. ‘건폭’ 단속하는 국토교통부, ‘킬러문항’ 체포에 나선 교육부, 보조금과 노조 회계 장부를 지명수배한 기재부와 고용노동부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3일 한겨레 등의 언론도 이러한 문제를 짚고 있다.

이런 흐름은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거다.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이 다양한 문제를 수사해 와 폭넓은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대출 의원은 “대입 제도에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했다. 같은 논리라면 국회의원을 수사하면 정치 전문가고 회장님을 수사하면 기업 전문가일 것이다. 금융감독원장은 그러한 바를 인정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아부에 가까운 얘기가 적확한 평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무엇을 수사했다고 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자동으로 될 수는 없다. 검사는 ‘수사전문가’일 뿐이다.

각 부처가 수사기관화 되는 것은 관료조직이 ‘수사전문가’인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관료의 시각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구조와 제도적 모순으로부터 발생한다. 따라서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거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제도 개선의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이해 조정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가 핵심이다.

검사의 시각은 다르다. 검사의 일은 구조와 제도적 모순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하고 ‘범인’을 잡게 돼있다. 윤석열 정권의 통치에 대입하면 교육개혁을 가로막는 범인은 ‘킬러문항’, 노동개혁을 가로막는 범인은 ‘건폭’인 것이고 이들은 ‘이권카르텔’이라는 범죄 단체에 속한 것이다. 따라서 검찰총장격인 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빠른 검거를 요구하는 것이고, 이를 1년이 넘도록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수사팀에 대해선 ‘조인트’를 까면서(?) 인사 조치 등을 시행하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정상화’ 또는 ‘헌법정신’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게 전 부처의 ‘수사기관화’의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 환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 환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식 통치를 규정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극우화이다. 경찰 제도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를 맡은 사람이 “문재인이는 간첩”이라고 하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공무원 교육에 핵심적으로 관여하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자리엔 전 정권이 군인들을 상대로 코로나19 생체실험을 한 것이라는 주장을 해온 ‘극우 유튜버’가 임명되었다. 사회적 합의의 주체가 돼야 할 경사노위원장 자리에 ‘아스팔트 우파’와 행보를 같이 해 온 정치권 인사를 앉힌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북한붕괴론을 직접 거론하고 남한 핵무장을 주장한 이력의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전례가 없다. 박근혜 정권도 “솔직히 통일부 장관은 아무도 와도 되는 자리 같다”는 말이 장관 자신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부처를 홀대했을 망정 최소한 그 자리에 가는 게 맞다는 평을 듣는 사람을 장관에 임명했다. 이명박 정권 때조차 의미없는 인사를 앉힌 일은 있어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대통령은 ‘북한지원부’ 역할을 해온 통일부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는데, 남북간 교류 협력을 ‘대북 퍼주기’로 여기는 극단적 진영의 견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주장이다.

‘극우화’의 보다 직접적인 징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총연맹 연설에서 ‘반국가세력’을 언급한 최근의 발언이다. 전 정권의 종전선언 추진 등 비핵화 협상 과정을 마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북한에 백기항복이라도 하려고 한 것처럼 묘사했다는 점은 충격이다.

이제와서는 먹고 살기 바쁜 다수의 국민들이 잊은 사실이지만, 종전선언 추진은 행동 대 행동 등의 단계적 비핵화 프로세스에 관한 복잡한 논의에서 도출된 결론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보유 시도를 ‘자위권’으로 주장해왔다. 따라서 비핵화의 대가로 정치적 안전보장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서는데, 비핵화가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는 불가능하므로 그 중간단계의 절충으로서 활용된 개념인 것이다. 그나마도 문재인 정권과 트럼프 정권은 추가 논란을 우려하여 종전선언의 급을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수준으로 낮췄다. 유엔사 해체 등은 종전선언과 관계가 없다는 것도 당시에 다 설명된 바다. 대통령은 자유총연맹을 상대로 한 당시 연설에서 ‘괴담’과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는데, 앞서 종전선언에 대한 이러한 논의의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불순한 의도에 따른 행위’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괴담’과 ‘가짜뉴스’의 전형적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관심은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진심인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이념 지향이 뚜렷하지 않은 인물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된 이후 극우세력에게 포섭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대통령은 이전에 정치 경험이 전무해 ‘통치전문가’였던 적이 없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많은 것을 이해하고 설명해야 되는 처지인데, ‘불순세력’ 등이 등장하는 음모론은 현실을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니 마치 운동권 초년생이 세상만사를 다 민족모순이나 계급모순으로 설명하려 드는 것과 비슷한 시절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거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실제로는 ‘반국가세력’ 등 주장을 스스로도 믿지 않으면서 정치적 효과를 위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검사 출신 대통령’에서 힌트를 얻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특수부 검사는 수사가 잘 안 되거나 진행하다 막히면 언론을 활용해 난관을 돌파한다. ‘범인’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이 나쁜 놈이 얼마나 거대한 사회악과 연결이 돼있는지,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 언론을 상대로 강변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단계에서 특수부 검사는 ‘100%의 유죄 확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언론 플레이’ 과정에서 나온 얘기를 다 공소장에 담는 것도 아니고, 공소 사실이 법원에서 다 유죄로 판명되는 것도 아니다. 무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특수부 검사는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다소간의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떤 불이익도 특수부 검사의 마음을 꺾지는 못한다. “애초에 기소가 잘못되었다”며 자책하는 검사는 들어본 일 없다. 쓴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윗선’을 탓하고, 판사를 탓하고, 정치를 탓하며, 마지막의 마지막에 유죄임이 확실함에도 유죄 입증을 못한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할 따름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무책임이다. 따라서 이러한 무책임의 문제는 윤석열 정권 통치의 ‘수사기관화’와 ‘극우화’에 대해서도 논리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반국가세력’ 발언의 진의에 대해서 대통령실은 이도 저도 아닌 방식으로 설명한다. 원론적 얘기일 뿐이며 자리가 그런 자리라 한 말일 뿐이라는 거다. “’반국가세력’은 전 정권과 야당을 지칭한 것”이라고 하면 책임질 일이 생길 테니, 그건 피하겠다는 거 아닌가?

‘바이든-날리면’ 논란에서도 이러한 ‘무책임’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는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한 게 사실이 아니고 그렇게 보도한 언론이 동맹을 이간질한 대역죄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대통령이 정확히 뭐라고 얘기했다는 것인지가 확인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해석만 있을 뿐 대통령실은 이에 대한 정확한 자기완결적 설명을 한 일이 없다. 애꿎은 외교부만 MBC를 상대로 한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법원의 음성감정 제안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판이다. 이게 ‘무책임’이 아니면 무엇인가?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앞으로도 이런 태도는 계속되리라고 본다. 따져봐야 할 것은 국민의 원한 게 이런 것이냐는 거다. 물론 어떤 국민은 통치의 ‘수사기관화’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또 냉소든 체념이든 어떤 차원에서든 ‘극우화’에 대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책임’을 그냥 보고만 있을 국민이 있겠는가? 더 늦기 전에 ‘검찰총장 대통령’으로부터 벗어나 국정을 책임지는 지도자로 변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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