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12월 21일 기획재정부로부터 새해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2023년을 개혁을 추진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노동시장에서의 이중구조 개선, 합리적 보상체계, 노·노 간 착취적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이야말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일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상생임금위원회가 출범했다.

임금체계 개편은 근로시간 유연화와 함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핵심의제가 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줄곧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기득권 노조’ 탓으로 돌리고, 노조 혐오와 노동 배제에 집중하면서 ‘노동개혁’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은 윤석열 대통령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노조 혐오를 부채질하고 노·노간 갈라치기에 앞장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노조로 전환하자 “강성노조에 질려 민주노총을 탈퇴했다”며 ‘민주노총=정치노조’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매일경제도 사설 <정치노조에 경종 울린 민노총 탈퇴 도미노>에서 “포스코노조가 가입 5년 만에 민노총과 결별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며 “노동자 권익은 뒷전이고 기득권 챙기기와 정치 투쟁에 몰두하는 거대 노조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매일경제의 주장은 그동안 자신들이 반복해서 보도한 “기득권인 귀족노조가 청년과 노동시장 내의 취약 계층을 착취하고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과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이들 보수신문이 띄워주는 이른바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협의회’ 소속은 모두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이며, 민주노총을 탈퇴한 사례로 거론되는 금융감독원, 한국전력기술, 한국은행, GS건설, 쌍용건설 등은 모두 대표적인 ‘귀족노조’가 아닌가.

매일경제 6월 15일 자 사설
매일경제 6월 15일 자 사설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금속노조는 포스코지회에서 수억 원의 조합비를 받으면서도 노조원의 권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것도 사실과는 멀어 보인다. 포스코지회(포스코자주노동조합) 홈페이지의 게시글을 종합해보면 포스코에 민주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각종 탄압으로 3,0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민주노조를 탈퇴했으며, 2022년 11월 30일 조직형태 변경 찬반 투표 당시 전체 조합원은 247명이다. 하지만 6월 13일 조합원 33명이 요구한 ‘조합원 총회 소집 요청서’와 5월 기준 금속노조에 조합비 납부가 확인된 조합원은 73명이다. 금속노조에 내는 조합비는 월 3만원이지만(대기업 조합원 평균 조합비는 4만 원 정도) 금속노조는 포스코지회에서 조합비를 받아 이를 다시 교부금으로 지회에 내려보낸다. 그런데 어떻게 73명이 금속노조에 납부한 조합비가 수억 원이 될 수 있다는 건가.

국민의힘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공정’한 임금체계라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1일 “고용과 소득의 양극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근로빈곤층 확대 등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있다”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근로계약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 “고용형태가 서로 다른 근로자들 간의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성·국적·신앙·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고용 형태는 명시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김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동일가치노동 판단 기준에 대해 개정안은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 조건 등’으로 모호”하며 “사내하청 노동자를 포괄하는 규정이 빠져 있고, 위반 시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도 의문”이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한국일보 이진희 기자는 김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을 사용자가 정하도록 하고 있고, 근로자 대표의 의견은 청취만 하면 된다”며 “‘동일노동 동임임금’은 거짓”이라고 단언했다. 이진희 기자는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는 임금 등에서 차별할 수 있기 때문인데, 사용자가 차별의 기준을 정하면 공정한 기준이 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더 고되고, 더 위험한 업무를 시키고도 비정규직에게 임금을 덜 주는 이 사회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을 어떻게든 피해갈 만큼 약았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민주노총·한국노총과 더불어 민주당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주최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직무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적 직무급’이 더 적절하다”며 “사회적 직무급 실현을 위한 노조 조직률 확대, 초기업단위 교섭 및 단협 적용범위 확대를 통한 협약임금 적용 확대가 직접적인 대응책”이라고 말했다. 이중구조 해소에는 ‘산업별 교섭’과 ‘단체협약 확대’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한겨레는 “산별노조에 가입한 대기업 노조의 잇단 기업별 노조 전환에는 최근 정부 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산별노조의 활성화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할 가장 강력한 제도”라는 전문가의 입장을 보도했다. “산별 교섭이 활발해질 경우 노조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서 임금 격차를 줄이려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중구조 개선을 이야기하는 정부가 오히려 노동자 사이의 격차 완화를 지향하는 산별노조를 약화하는 행정을 펴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5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토론회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비정규직 임금 대폭 인상,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등을 촉구하는 기습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5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토론회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비정규직 임금 대폭 인상,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등을 촉구하는 기습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노 간의 착취’가 아니라 산업의 이중구조에서 비롯됐다. 통계청이 작성한 일자리 행정통계 중 ‘2021년 기업 규모별 연령대별 소득’에 따르면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월 소득(세전)은 563만원, 중소기업 근로자는 266만원으로 2.1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대기업 근로자의 월급이 3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까지 20년간 284만원 늘어나는 동안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급은 고작 32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고용 형태나 기업 규모에 따라 근로 조건과 임금 격차가 큰 고질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하청 노동자 등 ‘노동 약자’ 착취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원청의 중소기업·하청 착취 구조에 있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와의 교섭을 절박하게 요구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속노조는 28일 광양제철 복지센터 앞에서 ‘2022년 임단협 투쟁 승리 포스코사내하청지회 결의대회’를 열고 천막농성 투쟁을 선포하며 장기투쟁에 나섰다. 이 투쟁에는 포트엘, 대진, 전남기업, 포스플레이트, 포에이스분회, 창영산업분회 등 7백여 명이 참석해 포스코의 노조 탄압 및 사내하청 차별 중단을 촉구했다. 금속노조는 직장폐쇄와 자녀학자금 미지급 차별뿐만 아니라 징계해고, 제철소 출입정지, 정리해고 협박 등 포스코의 전 방위적인 탄압으로 올해 1천9백여 조합원 중 3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금속노조를 탈퇴했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 하청노동자의 편에 서서 이들과 연대하는 조직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아닌가.

지난해 7월 대법원이 협력업체 소속으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한 노동자들을 포스코 직원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매일경제는 사설 <대법원 ‘하청직원 직고용’ 판결 쇼크, 파견법 조속히 개정해야>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데에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면서도 “32개 업무에만 협소하게 허용하는 파견법의 법위를 확대하고 파견 기간도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판결에 대해 전경련이 “협력업체가 별도의 사업 주체로서 소속 근로자들의 채용과 임금 지급, 인사권·징계권을 행사했음에도 불법파견으로 판단했다” 우려의 목소리를 내자 한 발 더 나아가 “파견법을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고 거들고 나선 것이다. 겉으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대기업의 이윤’만을 생각하는 보수신문의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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