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역술인 ‘천공’에 관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의 동선 하나하나가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천공에 대한 관심은 윤석열 정부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는 천공이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에게 실제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끼치고 있다면 어느 정도로 끼치고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직도’ 역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분석과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구축된 AI 시대에 아직도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해석과 개인의 특수한 경험으로 무장된 역술인에게 미래를 컨설팅받는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인공지능 (이미지=Pixabay.com), 천공 정법시대 교주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공지능 (이미지=Pixabay.com), 천공 정법시대 교주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이런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무당과 역술인은 계속 늘고 있다. 무당과 역술인이 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고 그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무당과 역술인도 계속 늘고 있다. 무당 단체인 대한 경신연합회와 역술인 단체인 한국역술인협회에 의하면 2006년 대한 경신연합회에 가입한 무당이 약 14만 명, 역술인 연합회에 가입한 역술인이 약 20만 명이었는데 최근에는 무당과 역술인 각각 30만 명으로 나와 있다. 협회에 등록하지 않은 비회원까지 포함하면 무당과 역술인의 숫자는 합계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수요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호모 사피엔스가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 또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호모 사피엔스가 시공간을 의식하게 된 이후로 항상 갖고 있는 본질적 성향이다. 시대에 따라 성향이 표출되는 양식은 상이하지만 미래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공간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천 년 넘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톨릭은 근대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 잠시 흔들린 적은 있었지만 미래라는 시공간에 대한 해석을 주도하면서 당시 과학기술과 이념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 이유만 갖고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무당과 역술인이 증가한 이유 또는 무속과 역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정보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무속과 역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이유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속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좀 더 분석적으로 표현하자면 디지털 네트워크가 만든 가상공간에서 주요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가상공간은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사회적 공간 또는 현실 공간과 달리 사회적, 제도적 구속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며 누구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사회적 현실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개별 정체성보다 사회적 규범이 더 중요하다. 개인의 일탈 또는 소수의 목소리는 엄격히 제한되거나 부정된다. 항상 다수의 의견이 중요시되며 다수 안에 있어야만 적절한 대우를 받는다. 다양성은 인정받기 힘들다. 다수와 소수, 정통과 사이비, 이성애와 동성애, 비장애인과 장애인 등의 이분법적 구획이 일반적으로 수용된다. 적절한 직업이 있고 이성애자이며 건전한 종교가 있고, 이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선호된다. 성적 소수자, 장애인, ‘하등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거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은폐한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그러나 가상공간에서는 실제 현실공간과 달리 개인들은 사회적 규범이 아니라 개별 아이디로 존재한다. 개인들은 사회적 분할이 아니라 개별 정체성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 성적 지향, 특수 가정, 단순한 취미 등에 기반한 모임을 만들고 서로 교류한다. 모임은 간단히 만들어지고 확장과 축소가 쉽게 용이하며 또 쉽게 없어지기도 한다. 특정 공간이 불편하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거나 찾는다. 공간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도처에 무수히 존재한다. 사회적 공간에서는 소수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이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주권을 행사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속과 역술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이 만든 가상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을 부담 없이 드러내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후 같은 성향의 사람들과 연대한 경험이 생기면 사회적 현실 공간에 대한 적응력이 강화된다. 다수의 논리가 늘 옳은 것은 아니며 다수와 소수는 단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단 무속과 역술뿐만이 아니다. 다수에 의해 폭력적 지배를 받았던 모든 소수 그룹들이 가상공간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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