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부터 김홍열 박사의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를 매주 정기적으로 게재합니다. 정보사회학을 전공한 김홍열 박사는 성공회대에서 정보사회학, 과학기술의 사회학을 강의했고 현재 미래학회 편집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정보사회 관련 여러 편의 저서들과 논문들이 있으며 오마이뉴스에 ‘갈등의 정보사회학’, 아주경제에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라는 기명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미리 준비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친절하게 보여줍니다.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롭게 나타나는 사회 현상과 그 이면에 있는 깊은 흐름에 대해 통찰력 있는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지난 3월 16일 교육부가 비수도권 지역 약 30개를 글로컬대학으로 지정해 글로벌 경쟁력 있는 대학을 키우겠다는 취지의 ‘글로컬대학 30′ 사업 추진 방향 시안을 발표했다. 선정된 대학당 5년간 약 1,000억 원을 지원해 대학이 과감한 대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대학지원을 강력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학당 1,000억 원 지원은 교육부의 대학 지원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날 발표한 자료를 통해 교육부는 현재 한국의 대학은 비수도권 대학뿐 아니라 대학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판단하고 향후 10~15년은 대학 혁신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는 구체적으로 ‘4차 산업혁명과 기술진보는 대학 교육과정의 혁신을, 디지털 시대와 팬데믹 경험은 AI 등을 활용한 교육방법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대학은 ‘여전히 학문 간, 교수 간 견고한 벽을 유지하며 공급자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그 결과, 국가경쟁력에 비해 대학교육 경쟁력은 하위권에 정체된 상황이고 수도권-비수도권 격차가 점차 심화됨에 따라 지역 인재가 수도권으로 유출되어, 비수도권의 지역 소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학과 대학교육을 경쟁력 측면에서 보는 시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 교육과정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16일 정부세종청사 15동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시안) 공청회'에서 윤소영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장이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정부세종청사 15동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시안) 공청회'에서 윤소영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장이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 교육과정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교육부의 판단은 ‘글로컬대학 예비지정’ 선정기준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총 100점 만점에 혁신성이 60점, 성과 관리가 20점, 지역적 특성이 20점으로 혁신성이 가장 중요한 판단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혁신성의 평가 내용 중 가장 강조되는 부분은 ‘대학 안-밖, 대학 내부(학과, 교수)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혁신적인가?’이다. 여전히 학문 간, 교수 간 견고한 벽을 유지하며 공급자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 대학 시스템에서 학문·학과 간의 벽을 허물어 학생 중심의 전공 체계가 가능한 미래형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하라는 취지다. 

이번에 발표된 교육부의 문제제기와 지원 정책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비수도권 지역의 대학뿐 아니라 수도권 대학에서도 졸업 후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경우는 날이 갈수록 쉽지가 않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일자리와 전공과의 불일치율은 52.3%로 나타났다. 취업자의 절반 이상은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대나 의대, 교육대, 사범대 등을 제외하면 불일치율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일부 전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4년 동안 공부한 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취업을 위해 별도의 교육 훈련을 받아야 하는 불필요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고등학교 때부터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는 문·이과 구분에 따른 교과 과정에 있다. 문과·이과 각각 선택할 수 있는 학과가 정해져 있어 한번 결정하면 전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율전공과 복수전공 등 일부 열린 공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과·이과의 프레임 안에서 운영되고 있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과 관련 전공자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예를 들어 금융권에서는 더 이상 경제학, 경영학, 법학 등의 전공자를 뽑지 않는다. 금융권은 한때 문과생들의 취업의 꽃으로 여겨졌지만 디지털 전환에 맞춰 IT 인력 채용에 집중하고 있다. 금융 업무의 대부분을 AI가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문과생보다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더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제 더 이상 문과·이과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 둘 사이에 구분이 의미 있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인문학 소양과 과학기술이 분리되어 운영되던 근대화 초기 과정에는 인재 육성과 효율적 교과 운영을 위해 필요한 체계였지만 글로벌화된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실제로 문과, 이과 분리 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는 아시아 일부 나라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여전히 문과, 이과에 기초한 대학 전공, 교육 과정을 유지하고 있고 대학 내부에서는 이 경계를 없애려는 과감한 혁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대학 전공의 많은 부분도 더 이상 시대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특히 문과의 경우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전공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문학, 역사, 철학 등 전통적 인문학의 경우 사회적 수요가 소멸된 지 오래되었고 인기 있던 전공들도 이제 서서히 그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4년간 공부를 했어도 졸업 후 일자리 구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발생하는 폐해는 전부 젊은 세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존 학과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학생 스스로 적성, 미래 가능성 등을 탐색하여 전공을 선택하도록 시스템이 바뀔 필요가 있다. 교육부의 이번 정책이 대학교육의 혁신적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걸림돌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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