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SM과 SM을 인수하려는 하이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세계관’이란 개념이다. SM이 엑소와 에스파를 통해 세계관 개념을 급진적으로 제시했다면, BTS 역시 BU(BTS Universe)라 불리는 세계관과 분리해서 말할 수 없다. 이는 BTS와 ARMY라는 글로벌 팬덤의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케이팝에서 세계관은 개별 회사와 그룹의 기획 노선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성급하게 말하고 싶은 욕구를 감추지 않는다면, 세계관 도입은 케이팝 역사의 한 전환점 같은 페이지다.

SM엔터테인먼트, 하이브 로고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하이브 로고 이미지

문화 콘텐츠에서 세계관은 작품의 독자적 세계를 이루는 구성요소의 집합이다. 그 안엔 인물과 이야기의 배경에 관한 설정들이 깔려 있다. 케이팝은 조직된 내러티브가 없는 실존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하는 산업이다. 세계관을 도입하기 위해 기성 서사 매체의 양식과 관습을 빌려 와야 했다. SM의 SMCU가 판타지 장르, 히어로 무비 같은 마니아 문화의 양식을 빌려와 설정을 구축하고, 마블 유니버스 같은 인공 환경적 서사의 인프라를 차용해 소속 아이돌을 하나로 연결하는 세계관을 구축했다면, 하이브는 BTS의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으로 동시대 젊은이들의 현실과 맞닿는 리얼리즘 드라마를 차용하는 방향으로 갔다. 이런 차이로 전자가 ‘엑소학(學)’처럼 세계관의 방대한 요소를 해석하는 팬덤의 오타쿠적 참여를 극대화했다면, 후자는 ‘Love Your Self’ 같은 현실에 대한 교화적 슬로건으로 이어지며 팬덤과의 정서적 연결을 극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엑소와 BTS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 외에도 B.A.P, 드림캐처, 고스트 나인 등 독특한 세계관을 도입한 그룹들이 있다. 꼭 완결된 형식의 세계관에 이르진 않더라도, ‘독자적 세계의 구성요소’들을 가사와 MV 등 각종 콘텐츠에 장치하는 건 케이팝의 보편적 현상이 됐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은 이런 현상들을 포괄해서 이르는 것이다. 더 큰 틀에서 말하자면, 케이팝의 세계관은 자체적 이슈의 생성으로 팬덤이 떠들고 몰입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떡밥’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SM타운 2022 : SMCU 익스프레스' 공연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
'SM타운 2022 : SMCU 익스프레스' 공연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세계관은 케이팝에 크게 두 가지 선물을 선사했다. 하나는 아이돌 활동의 서사화다. 아이돌뿐 아니라 대부분의 연예인은 작품 활동 커리어와 작품 외적 이슈를 통해 현실에서 어떤 방향의 서사적 궤적을 남긴다. 세계관은 이것을 몰입하기 쉬운 이야기의 형식으로 완성, 보완하거나 별도로 구성해 주는 틀이다. 또한 세계관은 아이돌과 팬덤을 공동체화한다. 아이돌의 활동에 서사적 기원과 내용이 주어지며 팬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통의 세계 인식이 마련된다. 팬덤과 아이돌이 동일한 공간과 시간,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 너와 나의 ‘현실’을 만들어 주는 지반이 세계관이다. 이를 통해 코어 팬덤을 규합하고 양성하는 효과가 나온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으로 지적하고 싶은 전환은 '아이돌의 텍스트화'다. 세계관이 도입되기 이전의 아이돌은 무대와 방송, 화보 등 카메라 앞에서의 이미지를 전시했고, 개별 앨범과 활동 곡에서 선보이는 파편적이거나 단선적인 콘셉트로 수용되었다. 세계관은 이미지와 콘셉트의 ‘표면’에 몰입하고 애착감정을 쏟는 것으로 소비되던 케이팝에 ‘두께’를 마련해 주었다. 여러 겹의 서사적 텍스쳐가 아이돌에 덧씌워지고, 아이돌의 활동 전반이 갖가지 설정들에 의해 체계화되고 통합되면서 계속해서 파고들 수 있는 ‘떡밥’, 텍스트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전시된 아이돌의 모습 이면에 찾아야 하는 ‘의미’가 제시되었고, 노래 가사와 MV, 세계관적 요소를 연결하고 해석하며 서로의 의견을 맞춰 보는 문화가 도출됐다. 공식적인 서사와 캐릭터 설정이 주어지며 그를 인용하는 팬 아트와 팬픽, 편집/해석 영상 등 2차 창작 역시 폭발적으로 증대됐다.

방탄소년단 '페르소나' 뮤직비디오 한 장면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 '페르소나' 뮤직비디오 한 장면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돌은 텍스트가 됨으로써 몰입과 애착의 대상에 더해 토론과 분석, 재창조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아이돌을 향한 미분화된 정서적 이끌림을 인간 의식 작용의 여러 측면으로 분산 및 다면화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팬덤의 정체성 또한 다면화되었다. 팬덤은 같은 방향의 애착 감정을 공유하는 집단에서 텍스트의 관객이자, 리뷰어, 연구자, 창작자가 되었고, 케이팝이란 문화를 실로 다양한 방면에서 참여하며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됐다. 팬덤에게 아이돌이란 2인칭의 대상을 응시하는 1인칭의 시점에 더해, 아이돌을 이루는 요소들을 관찰하는 3인칭의 시점이 생겨났고 그만큼의 거리감이 확보되었다는 말이다.

텍스트화되었다는 건 텍스트를 이루는 맥락, 콘텍스트라는 외부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세계관이 도래하기 이전엔 팬덤이 아이돌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구, ‘계속해서 파고들고 싶다’는 욕구를 풀기 위해선 미디어 뒤편에 있는 아이돌의 사적 영역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관은 이 욕구를 공식적인 ‘떡밥’을 파헤치는 것으로 수렴시켰고, 아이돌에 관한 사적 정보는 그러한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참조할 수 있는 콘텍스트로 의미화 됐다. 세계관, 혹은 세계관적 요소들은 케이팝과 팬덤 사이에 존재하는 필터나 완충막이 되어서 양자의 관계를 제도화하는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가령, 아이돌 문화가 출범한 90년대~00년대에 ‘사생 팬’ 문제가 훨씬 심했고, 타 아이돌을 향한 공격성, 팬덤 간 대결이 훨씬 원초적 양상이었던 것도 이러한 종류의 ‘필터’를 사이에 두지 않고 날것의 정념이 분출된, 미분화된 환경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모습. [빅히트뮤직 제공]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모습. [빅히트뮤직 제공]

세계관은 케이팝의 성격이 전환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영향을 미친 개념이며, 나는 그 영향력을 팬덤과 아이돌의 관계성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다음번에 쓸 글에선 세계관에 관한 논의를 이어 나가 케이팝 팬덤의 정체성을 더 자세히 살펴보며, '케이팝적 오타쿠의 탄생'을 말해 보려 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