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걸그룹 아이브 장원영이 MBC <가요대제전>에서 한 립싱크 무대가 논란이 되었다. 장원영은 같은 그룹 멤버 이서와 함께 아이유의 노래 ‘스트로베리문’을 커버했고, 지난 2일 무대 영상이 MBC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후 비난이 일어났다. 이미 며칠 전 신문 헤드라인과 커뮤니티 이슈 게시판을 휩쓸고 간 얘기이기 때문에 논란의 개요를 자세하게 설명할 건 없어 보인다. 다만, 해당 노래가 가창에 특화된 정적인 분위기이고,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알아챌 정도로 립싱크가 명백하다는 점, 퍼포먼스 무대도 아니고 의자에 앉은 채 립싱크를 했다는 점에서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모양새인 게 사실이다.

여론은 대체로 비판적이지만 일부 옹호 의견도 있다. 비판 여론의 요지는 ‘가수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단 것이다. 실력 없는 아이돌이 다른 가수들이 무대를 선보일 기회를 빼앗았다, 선배들이 노력해서 쌓아 올린 아이돌에 대한 인식을 저해했다는 다소 거창한 비판으로 이어지는데, 3분짜리 연말 무대 하나에 그렇게까지 의미를 둘 일은 아닌 듯하다. 개별 아이돌이 업계 전체 이미지를 걸머질 책임도 없고 케이팝은 공익사업이 아니다. 한편, 옹호 의견은 아이돌이란 직군과 방송 무대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아이돌이라 해도 방송에서 라이브를 소화하는 일은 흔하기에 설득력 있는 방어 논리는 아니다.

[가요대제전] 아이브(IVE) 장원영과 이서 (MBC케이팝 유튜브 갈무리)
[가요대제전] 아이브(IVE) 장원영과 이서 (MBC케이팝 유튜브 갈무리)

해당 이슈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되, 그 이상 도덕적 의미를 두거나 어떤 정의감을 투사할 것까진 없어 보인다. 다만, 얘기해볼 만한 논점을 끄집어내 보자면, 논란 배후에서 아이돌의 정체성에 대한 오래된 두 가지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립싱크 무대로 가수의 자질이 거론된다는 건 아이돌은 결국 가수이며 가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는 아이돌에 관한 보수적인 관점이다. 반면, 아이브 팬들은 “아이돌이 왜 가수인가”라고까지 항의하는 면이 보이는데, 이걸 좀 더 말이 되는 방식으로 대변하자면 아이돌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엔터테이너란 뜻이고, 시대에 따라 가수의 개념은 확장된다는 관점이다.

언젠가 ‘아이돌의 실력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글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나는 후자의 입장에 동의한다. 아이돌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아이돌의 실력은 춤 노래 같은 기능적 퀄리티보다 종합적인 개념으로서 무대를 잘하는 것에 달려 있다. 케이팝 산업의 현주소에 비추자면, 아이돌은 퍼포머라는 정의도 충분하지 않다. 팬덤 비즈니스와 전 방위 미디어 활동, IP 산업 등 아이돌의 본질은 무엇이다,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어진 것이 아이돌의 정의다. 그런 다양한 요소를 채워 넣기 위해 다인조 그룹이 구성되고, 저마다의 다양한 재능이 발휘되는 분업 체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저 논란이 합리화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돌 매니지먼트가 분업 체계란 건 멤버 각자의 적성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는 걸 뜻한다. 보컬이 아닌 비주얼과 화제성이 우수한 멤버도 중요하고 그것도 엄연한 아이돌의 실력이다. 현실에선 그런 멤버가 그룹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창을 위해 존재하는 자리에는 라이브를 할 수 있는 멤버를 내보내는 것이 맞다. 그것이 ‘아이돌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라는 명제에 부합하도록 그룹을 운영하는 길이다. 오히려 해당 논란은 ‘비주얼도 최고지만 노래도 잘하는 만능 아이돌’ 같은 아이돌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의 환상을 보여주려다 실패한 해프닝으로 보인다.

K팝 걸그룹 [연합뉴스TV 제공]
K팝 걸그룹 [연합뉴스TV 제공]

이 논란에서 구태여 시사점을 뽑자면, 사회적으로나 케이팝 커뮤니티 내부에서나 여전히 아이돌의 개념에 대한 정돈된 합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케이팝 산업이 태동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케이팝은 물렁물렁하고 피상적으로 이야기되는 면이 있다. 아이돌을 ‘가수’의 틀에 가둔 채 편리하게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틀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편의적으로 개념을 오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기준은 논점에 오른 대상이 ‘내 아이돌이냐, 남의 아이돌이냐’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예컨대, 해당 논란은 아이브를 견제하고 싶은 사람들이 엔터 산업의 인의 도덕이 땅에 떨어진 것처럼 열을 올리는 성격도 있어 보인다.

반면, 어떤 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음원 성적을 자랑하고 싶을 때는 ‘아이돌은 가수다’라는 정의를 핏대 높여 강조하고, 다른 아이돌의 립싱크가 도마에 올랐을 때는 근엄한 목소리로 성토한다. 그러다 불리한 논란이 벌어지면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다’라는 정의로 너무 쉽게 워프해 버린다. 정초부터 벌어진 립싱크 해프닝은 케이팝 산업에 잠재된 혼란스러움과 지리멸렬함이 비화된 한 편의 촌극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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