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콘텐츠들에 대해, 국내에서는 산업적 차원에서의 긍정적 효과를 집중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 흥행에 다른 측면들이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해외에서는 <오징어게임>, <킹덤>,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한국의 ‘일부(절대 한국 콘텐츠 전반에 대해서가 아니다)’ 콘텐츠가 지닌 폭력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보도와 논의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미국, 영국, 벨기에, 호주, 브라질 등 여러 국가의 학교에서는 어린이 보호를 위해 학부모에게 <오징어게임> 시청제한 통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미디어의 폭력성 이슈는 학계와 업계에서 오래된 이슈이기도 한데,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제공되는 일부 폭력적이라고 논의되는 한국 콘텐츠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고민을 불러일으킨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콘텐츠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시선을 맥락적으로 볼 필요는 있다.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한류 콘텐츠 산업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러한 콘텐츠들의 작품성과 인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그 콘텐츠들의 폭력성을 말하는 시선은 그것이 시청자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효과에 집중한다. 어느 한 시선의 맞고 틀림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후자는 콘텐츠가 시청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강조하다보니, 도대체 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는 답을 해주지 못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단순히 폭력적인 내용이 나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어떻게 그런 내용이 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맥락적 고려가 필요하다. 예술영화에 수위 높은 살인장면이 등장한다고 치자.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해당 신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면 그것이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해당 신만 잘라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돌리면 그것은 굉장히 잔인하기만 한 영상에 다름아닐 것이다. 되려 넷플릭스가 표현의 영역을 넓힌 측면도 있다. <킹덤>의 김은희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듯, 지상파에서 좀비 목을 날리는 표현은 불가능하지 않나. 물론 폭력적인 콘텐츠가 ‘폭력 스크립트’를 제공하는 부분에는 문제가 있다. 많은 시청을 통해 일련의 폭력상황에 대한 대처요령이 시청자들 머릿속에 스크립트처럼 남는 것이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폭력적인 것으로 이야기되는 콘텐츠에 노출되는 상황 역시 좀 더 맥락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오징어게임>에 노출되고 있음이 거론되는 건, 프로그램 자체가 그들에게 노출돼서이기도 하겠지만, 프로그램 속 게임을 그들이 따라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때도 아이들이 놀이하고 있는 ‘결과’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런 상황이 낯설지는 않다. 그동안 어른들이 아이들의 좋지 않은 행동의 원인을 콘텐츠로 돌려왔던 모습을 우리는 빈번하게 봐왔다. 이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의 유해성’이라는 오랜 선입견 혹은 사회적 통념에 기인한다.

하지만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런 게임을 하는 건 아니다. 게임의 규칙과 목표, 캐릭터만 따와서 노는 것이다. 잔인해 보일 수 있는 벌칙도 흉내낼 뿐이다. 그런 자극적인 벌칙이 없다면 그들이 애초에 단순하기만 한 게임을 따라하지도 않았을 터다. 물론 악영향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하나의 놀이문화로 이해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운동장에서 오징어게임을 재현하는 걸 두고, 그들이 모두 <오징어게임>을 봤을 거라 전제해서도 안 된다. 작품의 흥행으로 작중 장치들이 밈이 돼 그런 결과가 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오징어게임>을 못 보게 한다 해서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오징어게임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오징어게임>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건 어른들의 역할이다. 대단한 작품이나,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사진제공=넷플릭스)

재편집 영상 이야기도 해볼 필요가 있다. 유튜브(YouTube) 등에서 떠도는 재편집 영상은 등급분류 대상은 아니지만, 사후 심의의 대상이다. 다만, 그 양이 너무 많아 실질적으로 시의적절한 관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플랫폼 차원의 (자율규제보다 조금은 강한) 책임있는 대처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24시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가 봤거나 같이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양육자가 그 영상을 충분히 숙지한 뒤 동반시청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동반 시청시에는 아이들과 충분히 이야기 나눌 필요도 있다. 심의기준에 맞게 설정된 연령제한에 따라 지도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떤 이들은 거실에서 대형TV로 넷플릭스를 통해 폭력적일 수 있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현실 속에서 폭력성 관련 규제를 지상파방송과 같은 레거시 미디어에만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이하 ‘OTT’)에 콘텐츠 심의가 없지 않다. 다만 지상파 방송사의 19금 콘텐츠와 OTT의 19금 콘텐츠 심의엔 차이가 있다. OTT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심의기준이 방송사 콘텐츠보다 관대하다 보니, 방송 콘텐츠로 인해 좀 완화된 기준으로 19세 미만에게 콘텐츠를 허용해줬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해외 많은 나라들이 OTT 규제보다는 자국 내 미디어 산업 경쟁을 활성화하고 콘텐츠 생태계 건전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OTT 규제보다는 기존 방송심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관점으로, OTT와 방송이 동일한 콘텐츠를 내보낸다 했을 때 방송만 규제를 더 받아선 안 된다는 것)으로, 또한 국내 사업자의 규제포섭이 아니라 글로벌 사업자에 대한 실효적 관할권 확보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넷플릭스 2022 라인업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2022 라인업 [넷플릭스 제공]

OTT를 딱 방송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특히 실시간 중계를 하지 않는 OTT의 콘텐츠에 대해 방송수준의 규제를 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 방송처럼 시간적 편집을 전제로 하는 실시간 서비스가 아니라, 이용자의 정보 선택권을 위한 공간적 편집을 전제로 하는 비실시간 서비스임을 감안한다는 측면에서도, 방송에 준한 심의를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심의 전반에 대한 문제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OTT 콘텐츠에 대한 별도의 내용규제가 추가로 고려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관련해서는 '자율규제'가 확대되고 정교화돼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자율규제는 탈규제나 비규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의 새로운 틀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행위자를 바꾸자는 것이다(여기선 ‘플랫폼’). 기존 심의제도가 기준만이 아니라 인력 부족 등의 여러 한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율규제 확대는 필수불가결하다고 본다. 다만 완전히 자율규제로의 전환은 아니고, 타율규제와 함께 상호보완적으로 이뤄질 필요는 있겠다. 자율규제가 잘 이뤄지려면 일단 사회적 합의가 제일 중요하다. 그 밖에 자율성·독립성, 예산마련, 사실상 공적규제에 버금가는 권한 일부 이양, 보다 포괄적인 역할 수행(단순 심의를 벗어나 불법행위 감시, 대중에 관련정보 제공, 개인과 기업 간 분쟁조정, 정부기관과의 공조관계 형성 등) 등이 요구된다.

심의규제를 완화하는 데 있어 폭력성 완화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관점(인종, 젠더 이슈 등)을 포함하는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 함은 물론이다. 심의주체, 인력, 심의위원 등의 심의 외적 부분에 대한 고려도 뒤따라야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넷플릭스 콘텐츠 자체에 대한 보다 확장된 관점이 요구된다. 다른 유사 미디어, 즉 방송 등의 그것과 비교하지 않아도, 넷플릭스‘향’ 콘텐츠는 다르다. 일단 장르물 중심이다. 그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과 투자재원도 다르고, 만드는 과정도 다르며 광고·협찬이나 재방송 여부, 그것이 배포되는 방식도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각을 볼 때 갖는 의도와 생각도 다르며 시청방식도 다르다. 콘텐츠 내 폭력성에 대한 맥락적 고려, 내용규제와 자율규제 관련논의 등만이 아니라, 넷플릭스 콘텐츠 자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대규모 사기업으로서 넷플릭스가 사회적 관점에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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