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대선자금 수사 국면이 20년 만에 돌아왔다. 언론은 경쟁적으로 기사를 쏟아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거래와 조작을 주장한다. 경제 위기 상황에 그렇잖아도 할 일 많은 정치권이 이 문제를 놓고 내내 씨름하게 생겼다. 여야 대립에서 막힌 데를 뚫어줘야 할 정권의 적극적 역할도 기대하기 어렵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검찰이 그리는 그림은 이재명 대표 정치 인생 전반을 겨냥하고 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 때도 대장동 일당들의 금전적 조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거다. 대장동 일당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온갖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수사가 구체적으로 진행된 대목을 따져보면 아직 거기까지 거론할 단계는 아니다. 지난 대선 전에 남욱 변호사가 조성한 비자금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까지 전달됐다는 부분까지는 검찰 수사가 나름대로 탄탄하게 진행된 것 같다.

그런데 대선자금 수사의 핵심은 유동규 전 본부장이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돈을 준 게 맞는지, 그게 실제로 선거비용으로 쓰였는지다. 민주당은 김용 부원장이 돈을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유동규 전 본부장의 진술뿐인데 회유와 거래를 통한 걸로 의심돼 믿을 수 없다는 거다. 실제 대선자금에 쓰였는지 여부는 검찰도 진술 이상의 근거를 갖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김용 부원장이 구속됐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영장 발부 사유에 밝힌 바는 없다고 하지만,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된 게 아니면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김용 부원장이 돈을 받았을 가능성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걸 전제하면 이후 쟁점에 대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김용 부원장이 대선자금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였으나 본인이 썼을 경우다. 이 경우,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하지만 책임을 지는 방식에 있어서는 덜 곤란한 수준에서 넘어갈 수 있다. 둘째는 김용 부원장이 이재명 대표 모르게 경선자금으로 쓴 경우다. 김용 부원장은 조직관리를 담당하였는데 업무의 특성상 비공식적 자금이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라면 이재명 대표는 법적 책임은 별개로 하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셋째는 이재명 대표가 불법적인 선거자금 수수와 사용을 사실상 묵인하였을 경우다. 이 경우 법적 책임이 불가피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장동 일당들의 태도로 봐서 검찰 수사가 이 시나리오 중 하나로 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걸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김용 부원장이 돈을 받았다는 의혹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인데, 만일 김용 부원장이 돈을 받았다는 물증이 나오면 이러한 경우의 수를 따지기도 전에 스텝이 꼬여 정치적 타격을 키울 수 있다. ‘조작 수사’를 섣불리 규정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꺼내들었던 ‘대장동 특검’을 다시 제안한 걸 어떻게 봐야 할까? 특검의 전제는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는 것일 수밖에 없다. 실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측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실제 그런 의심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유동규 전 본부장이 가벼운 형벌을 받기 위해 검찰과의 거래에 응했다는 등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여러 정황들뿐이다. 설사 실제로 검찰의 회유와 거래가 작동했더라도 유동규 전 본부장의 진술이 감추고 있던 사실을 털어 놓는 데에 이른 것인지, 아니면 검찰이 시키는 대로 없는 사실을 지어내고 있는 것인지는 지금 시점에선 누구 표현대로 ‘취향 따라 골라잡는’ 것일 수밖에 없다. 단지 이런 정도의 상황을 근거로 수사 대상자가 특검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들이 볼 때 검찰 수사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비칠 수 있다. 민주당 일각에선 특검법 강행 처리까지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명분을 만들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특검 주장으로 얻을 수 있는 거라곤 당혹감에 빠진 지지층에게 ‘할 말’을 만들어 주는 효과뿐이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둘러싼 민주당 내 분열 등을 전망하는 듯 하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만 진행되는 거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대선자금 수사라지만 구체적으로는 경선자금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는데, 이건 상대적으로 당 전체가 책임질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이재명 경선 후보 캠프의 문제에 국한된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이재명 대표와 이른바 ‘변방의 장수들’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은 측면도 있다. 특히 경선 문제라면 이재명 대표와 김용 부원장 등이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당도 사실관계 파악 자체가 쉽지 않다. 김용 부원장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는 내부 분위기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겨냥하는 형태로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선 분열도 후퇴도 쉽지 않다. 때문에 장외투쟁을 포함한 강대강 대치 국면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국회는 경색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국면이 장기화될 판인 것이다. 그렇잖아도 위기라고들 하지 않는가. 이재명 대표의 정치인생을 떠나 국회가 공전되는 것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현안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현안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럴 때는 권력을 쥔 쪽에서 야당에 명분을 줘야 한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 전에 해외순방 당시 막말 논란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은혜 수석의 설명을 보면 국회와 야당에 대해 막말을 한 사실은 인정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이 주장은 일리가 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예산안 처리에 대한 국회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다. 막말에 대한 사과도 없이 협조를 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종북 주사파는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든지 하는 발언의 진의도 명확히 해야 한다. 또 누가 봐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기 힘든 김문수 경사노위원장 인사도 재고돼야 한다. 이런 것이야말로 지도자의 책임있는 행보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물러날 기색이 전혀 없다.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 “대통령의 국회 출석 발언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고, 국회에서 예산안이 제출되면 시정연설을 하는 것은 국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25일 일정이 정해졌는데 추가적인 조건을 붙이는 것은 제가 기억하기로 헌정사에서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인 총선 때까지 정권과 여당은 “국회 다수를 차지한 종북 주사파 세력의 방탄용 정쟁 유발에 국회가 할 일을 하지 못해 위기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구도를 예고했다고 볼 수 있다.

탄압과 조작만 되뇌는 야당도 답답하지만 정권을 잡은 데 대한 책임을 질 의사는 전혀 없어 보이는 집권세력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각 당 핵심 지지층에 속하지 않은 유권자들도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른바 중도적 유권자층을 이렇게 방치하다 선거 직전에 가서야 손 벌리는 정치를 언제까지나 반복하는 건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참 이상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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