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프로스포츠 산업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로부터 근로자성을 인정받았으나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스포츠 특성상 노동자들의 근무 기간이 다른 산업에 비해 짧은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행정소송은 경력을 단절하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이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4일 서울 용산역 ITX4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스포츠 기업 112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 청원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또 프로스포츠 산업 내의 가짜 3.3 노동자 법률구제 공동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가짜 3.3 노동자’는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3.3%)하는 위장된 노동자를 말한다. 이들은 플랫폼노동, 특수고용, 프리랜서 외에도 음식점·서비스·사무직·제조업 등 직업 종류와 상관없이 퍼져 있으며, 특수고용노동자 종합소득세 신고 플랫폼 ‘삼쩜삼’의 누적 가입자 수는 1000만 명을 넘었다. 현재까지 권리찾기유니온이 파악한 스포츠산업 내 프리랜서·개인사업자 계약형태의 채용 공고는 39건에 달한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ITX4 회의실에서 열린 '2022 프로스포츠 가짜 3.3 미디어데이' 권리찾기 유니온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ITX4 회의실에서 열린 '2022 프로스포츠 가짜 3.3 미디어데이' 권리찾기 유니온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E스포츠를 포함한 대부분의 프로스포츠 구단은 코칭·스태프 등 구단 관계자들과 프리랜서 형태의 계약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월급제이며 실질적으로 사용자에 종속된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구단들은 이들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노동자성 판정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6월 부산고용노동청은 부산아이파크 축구단 유소년지도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사측인 HDC스포츠에 퇴직금 지급을 명령했다. 유소년지도자는 구단의 지시에 따라 업무 기간 유소년팀 지도 업무 외에 구단이 지역에서 개최하는 축구교실 지도자 업무를 수행했으며 선수 영입과 이적 관련 업무를 하는 등 기존 업무 외의 노동을 했다. 그러나 HDC스포츠는 부산노동청의 시정지시를 75일째 이행하고 있지 않으며, 향후에도 이행의사가 없음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E-스포츠 구단인 DRX는 감독 A 씨를 상대로 ▲회사가 지시하는 대회에 참가 ▲훈련 활동 ▲부대활동(광고촬영 등)을 수행하는 내용의 2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는 훈련과 광고촬영, 녹화 등으로 월 3일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출근했으며 광고 촬영, 대회 참가 등으로 생기는 수익은 100% 회사에 귀속됐다. 그는 훈련실에 CCTV 설치해 선수들을 감시하겠다는 구단 대표의 요구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구단 대표는 리그 개막 후 5경기 만에 성적부진을 이유로 감독 A 씨를 해고했다. 그는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으며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그의 노동자성을 확인,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지노위 판정 이후 DRX 측은 “1심, 2심, 대법원까지 확정되는 데 5년 이상 걸리는 것을 알려드린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ITX4 회의실에서 열린 '2022 프로스포츠 가짜 3.3 미디어데이' 권리찾기 유니온 기자회견에서 프로축구단 코치 A 씨가 자신의 사례를 말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ITX4 회의실에서 열린 '2022 프로스포츠 가짜 3.3 미디어데이' 권리찾기 유니온 기자회견에서 프로축구단 코치 A 씨가 자신의 사례를 말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권리찾기유니온은 “프로스포츠 기업들의 대응은 행정명령이나 중노위 판정을 무시하고 버티기 전략을 쓰고 있다”며 “인맥과 파벌이 취업줄인 스포츠산업 노동시장에서 5년까지 걸리는 장기 고비용 소송에 생계를 걸 수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노동은 어디에나 있다”면서 “그런데 스포츠 산업은 ‘스포츠 특성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노동을 가리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류 의원은 “계약형태가 아니라 실질을 따져야 한다”며 “제공한 노동에 대해 업무상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노동자가 맞다. 국회에서 스포츠 산업 내 다양한 3.3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스포츠칼럼니스트)는 “스포츠계에는 ‘노조’라는 말을 금기시하는 문화적 산물이 존재하고 스포츠 산업은 일반 고용노동 관계와 다른 약간의 특수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가 늘 얘기하는 것이 '프로스포츠나 일반 스포츠 전체의 시스템 개선을 통한 문화 발전'이다. 물론 팬층을 다양화하거나, 마케팅을 손질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면서 “스포츠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돼야 직업의 안정성과 전문성이 지속되고 안정화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것이 프로스포츠가 발전하는 최고의 길이라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ITX4 회의실에서 열린 '2022 프로스포츠 가짜 3.3 미디어데이' 권리찾기 유니온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ITX4 회의실에서 열린 '2022 프로스포츠 가짜 3.3 미디어데이' 권리찾기 유니온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하은성 권리찾기노동법률센터 노무사는 “체육 노동자들은 연말이 되면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특히 새로운 시즌 준비를 시작하는 시점에 해고될 경우 재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불리한 계약 조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하 노무사는 “구단들은 기존 계약서 내용을 수정해 법률 쟁송에 대비하거나, 노동자들의 권리주장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노무관리 수법도 등장했다”고 전했다.

DRX 감독 A 씨의 법률대리인 이현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는 “E-스포츠의 경우 전성기가 1, 2년인 선수들이 많고 코칭, 스테프, 선수 경력은 2~3년 정도다. 회사의 보도자료는 ‘너희들의 선수 생활을 끝내겠다’는 것”이라며 “소송이 5년 동안 걸려있는데 이 선수들이 어느 팀을 가겠나, 아무 활동도 못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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