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이준석 대표의 기자회견을 본 윤석열 대통령은 복잡한 심경일 것이다. 그냥 내버려 뒀더라도 차기 전당대회로 가는 과정에서 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조정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와 ‘친윤’의 갈등 구도를 방관하거나 오히려 부추긴 결과, 스스로 ‘비윤’의 구심을 만들어버린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의혹에 대한 유튜브 방송과 윤리위 제소 및 결정 등에 있어서는 어디까지가 ‘윤심’의 작용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최근 비대위 전환은 용산의 ‘오케이 사인’이 작용한 게 확실하다. 그것마저도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의 텔레그램 메시지라는 데에서 여당의 내홍은 이준석 대표의 ‘기행’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준석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을 다수의 언론은 ‘윤핵관 저격’, ‘대통령에 반기’ 등의 키워드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60여분간 장광설’의 꿰뚫는 핵심 논리는 어느 보수 논객의 평처럼 틀린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의 위기는 유튜브 음모론과 반공이데올로기에 기대는 구식의 정치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도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전통적 지지층과 지역구도에만 안주하면 되는 이른바 ‘윤핵관’들은 대통령에 충성경쟁과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고, ’이준석 밀어내기’는 그 결과란 것이다. 정확한 진단이 아닌가?

이런 진단에 대해 당내 기득권이 하는 항변이라고는 고작 ‘왜 분란을 자초하고 대통령을 모욕하느냐’는 정도이다. 좋은 교육을 받고 오랫동안 여러 사람을 상대하며 나라의 운명을 바꿀 정책을 직접 손으로 만지는 정치인들이 이런 수준 낮은 논리로 일관하는 이유는 뭘까? 실제 관심사는 충성 경쟁과 당권 다툼에 있다는 해석을 안 할 수 없다. 이런 꼴로는 이준석 대표의 현실 진단이 맞다는 걸 오히려 증명하는 꼴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과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힌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과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힌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연합뉴스)

성상납 의혹이나 해명하라는 반응도 있다. 이준석 대표는 대중정치인으로서 의혹을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드러난 정황만 봐도 의심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 의혹이 지금 사태의 핵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준석 대표 입장에선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징계 등의 별다른 대응이 없었던 다른 의원들 문제와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보수정치 전반에 약이 되려면 대통령에 대한 충성 경쟁이나 당권 다툼이란 맥락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대위 전환은 과정은 폭력적이었으나 집단적 의사결정의 결과물이고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다. 이준석 대표도 굳이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가처분 신청은 인용될 가능성 크지 않다. 맞는 진단은 인정하고 처방을 둘러싼 논쟁으로 넘어가야 한다.

중도층과 스윙보터를 등한시해서는 선거 승리가 어렵다는 게 이준석 대표의 진단이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에 대해선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가령 이준석 대표는 자유와 인권을 얘기하는데, 그런 명분은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기자회견에서 든 예시는 음란 도박사이트 차단 수단으로 사용되는 https 차단, 메신저 프로그램의 불법촬영물 필터링 등 해제, 북한 방송 개방 등이다. 북한 방송 개방은 그렇다 치고 앞의 두 가지는 정책 자체가 중도층 전체 여론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이준석 대표 지지층인 이른바 ‘이대남’, 그중에서도 인터넷 커뮤니티등을 통해 활성화 된 사람들 사이에서 인화성이 강한 이슈일 뿐이다.

즉, 이런 점에서 보면 이준석 정치라는 것은 거창한 명분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지지층을 끌어 모으는 데만 도움이 되는 이슈에 집중하자는 것으로,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것은 최근까지 ‘이준석 코드’를 통해 부각된 약자 혐오에 편승하는 갈등유발적 정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즉, 윤석열 정권과 그 주변 인물들이 여당의 내홍이라는 리스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이준석 대표와는 다른 처방을 통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준석 대표의 것과는 다른, 적어도 중도적이고 국민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권과 여당 주류가 예고하는 방향은 이런 기대와는 차이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의원을 대표로 뽑으면 이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킨다는 전략은 벌써 일부 실행되고 있다. 이제 9월 들어서부터는 이재명 의원의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한 수사 결과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할 거다. 여당의 국정감사 대응은 이전 정권이 추진한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를 이룰 것이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권과 ‘이재명의 민주당’을 하나로 묶고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없는 국민의힘’을 그 대척점에 있는 존재로 상정해 반사이익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정권 초기에는 아직 남아있는 전 정부에 대한 불만 여론이 어떤 방식으로든 현 정권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밑천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그럴듯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내부의 반대 세력에 명분이 쏠리기 시작한다. 이준석 대표와 그 지지층이 ‘비윤’의 진원지로서 구심력을 본격적으로 갖게 되는 시기가 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런 점에서 ‘이준석 정치’는 여당 내 이준석 대표에 우호적인 어느 의원의 표현대로 ‘먼저 온 미래’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미래가 유토피아라기보단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당의 ‘먼저 온 미래’는 어떤 사람들에겐 ‘재앙의 예고’일 수 있다. 민주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들, 또 진보정치를 어떻게든 이어나가겠다는 세력이 돌아볼 지점이 여기다. 이미 예고된 미래에 대응할 준비가 과연 얼마나 되어 있는가? 그저 상대를 깎아 내리거나 ‘우리 편’에 더더욱 환호하라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강 건너 불 구경이 아니라 타산지석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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