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집권 3개월도 안 돼 자기들끼리 싸우다 집권세력이 비상상황을 맞이했다는 얘기는 적어도 최근 들어선 본 일이 없다. 전 국민이 매일 매일 새로 갱신되는 한국 정치의 역사적 순간을 목도하는 중이다.

이준석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은 저항할 태세지만 비대위 전환은 불가피할 듯하다. 당헌 당규 상의 난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현실 정치에서 그런 건 다 부차적이다. 비대위로 가고자 하는 쪽에서 어떻게든 돌파할 수 있는 근거를 대기만 하면 된다.

최고위원이 모두 사퇴해야 비대위로 갈 수 있다는 해석이 있지만 이건 주장하기 나름이다. 국민의힘 당헌 보칙에는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라고 규정돼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8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국회에서 열린 현인보고에 참석해 후보 비서실장에 선임된 권성동 의원의 귀엣말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2021년 11월 8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국회에서 열린 현인보고에 참석해 후보 비서실장에 선임된 권성동 의원의 귀엣말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당 대표나 권한대행만 비대위원장 임명권을 가지므로 직무대행은 비대위원장을 지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도 보기 나름이다. “당 대표 또는 당 대표 권한대행”이라는 표현은 당 대표가 스스로 비대위 체제의 불가피성을 인정했거나 이미 당대표가 사퇴하거나 해서 없는, 비대위를 꾸리는 상황에서의 일반적 상황을 가정한 것일 뿐이다. 권한을 따지자면 ‘당 대표 직무대행’은 ‘당 대표’의 직무를 대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대위원장 지명도 가능하다는 논리 역시 있을 수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사퇴했다지만 ‘직무대행’이라는 건 권리행사의 주체를 의미하는 거지 직책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사퇴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 이 조항이 문제라면 당헌을 개정하면 된다. 당헌 개정 권한은 전당대회에 있지만 불가피한 경우 상임전국위가 전당대회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규정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상황에선 결국 힘이 센 쪽이 이긴다. 여당의 경우 힘은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실릴 것이다. 다수의 언론 보도를 보면 지금의 이 난리통은 대통령실이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는 유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시작된 걸로 보인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사태 초기에는 최고위원 몇 명의 사퇴로 비대위 전환은 어렵다고 하다가 반나절도 안 돼 입장을 사실상 선회한 이유도 이 사실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비대위는 필연적으로 조기전당대회 국면을 열 것이다. 이준석 대표 입장에선 비대위가 출범하면 돌아올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법적 대응도 언급하지만 법원의 개입 가능성은 크지 않다. 8월 중순이 되면 이준석 대표 성상납 의혹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올 거라는 관측도 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든 이준석 대표는 정치적 영향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전당대회에서 자기가 원하는 리더십의 대표가 당선되도록 하는 정도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치에서 말하는 ‘야미쇼군’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사태는 장기간 친이, 친박으로 나눠 다퉜던 보수정치가 본격적인 계파 갈등의 국면으로 다시 들어왔다는 걸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전이야 지지율 20%대라고 해도 여전히 ‘그립’을 쥘 힘이 있는 대통령에 가까운 쪽이 이길 수밖에 없지만, 후반전으로 들어가면 그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이게 바람직할까? 그렇지 않다. 과거와 같은 계파 대립은 실패한 정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단기적으로는 당내 대립이 불가피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안정적 국정운영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하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명분을 취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여당은 이를 뒷받침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그래야 갈등이 주변화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해야 할 일’을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냐이다. 보수정권이니 보수정치적 지향을 가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것은 국민을 편가르는 것이거나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통치여서는 안 된다. 그걸 잘한다고 여길 국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7월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 도중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7월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 도중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여당이 최근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에서 여당의 메시지는 구태한 것들뿐이었다. 경찰국 신설 논란은 이전 정권에서 승진한 경찰대 출신들이 부풀린 것이며, 경찰위원회는 사상이 불순한 민변 출신들이 장악했다는 주장이 그렇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강경진압을 사실상 주문한 것이나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장악해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태도가 반대파들에 명분을 안겨줄 뿐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대통령 주변에선 모처럼의 휴가 기간 동안 구상을 가다듬고 여권 전반에 걸친 인적쇄신과 조직개편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모양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국민 여론을 통합해 위기에 대응하고, 그걸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할 자세가 돼 있다는 걸 보여주는 국정운영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통합적 리더십의 가능성을 보여준 일이 없다. 그래서 기대할 게 없다는 체념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5년은 길고 지지율 20%대 정권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이걸 방치하는 건 무책임이다. '심리적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의 인식이 바뀌어야만 한다면, 그걸 바꾸도록 할 책임도 집권 세력에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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