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언론이 ‘씨’라는 호칭을 차별적 표현으로 사용해 대통령 배우자 호칭 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MBC 방송언어연구소와 언론인권센터는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인권과 방송말>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호칭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 "‘씨’의 존칭성이 훼손되고 추락하게 된 데에는 언론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언론은 호칭을 통해 사람들을 차별했다. 직업이나 직함에 따라 호칭을 붙였는데, 달리 사용할 호칭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씨’를 붙였다”며 “언론이 차별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표현에 대한 고민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권력자의 힘을 호칭으로 과시해 ‘씨’에 대한 존칭성이 훼손됐다”고 말했다. 

제1회 방송언어연구소 세미나 '인권과 방송말' (사진=미디어스)
제1회 방송언어연구소 세미나 '인권과 방송말' (사진=미디어스)

지난 3일 보수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 씨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기했다. 윤 대통령의 배우자에게 '씨’라는 호칭을 붙인 것은 인격권 침해라는 이유에서다. 

법세련은 “방송 공정성과 정치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영방송 진행자가 자신의 정치성향에 따라 현직 대통령 배우자 호칭만을 여사가 아닌 씨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인격권과 명예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배우자 호칭에 대한 논란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반에도 불거졌다. 한겨레가 문 대통령 배우자 호칭을 ‘씨’라고 표기하면서 당시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 이후 대통령 배우자 호칭에 대해 ‘씨’라고 표기했다. 하지만 논란 이후 한겨레는 ‘여사’로 호칭을 변경했다.

신지영 교수는 ‘당선자’, ‘당선인’ 논란은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본 사례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 ‘당선자’로 통용되던 표현을 ‘당선인’으로 바꾸라니까 언론은 하루아침에 표현을 바꿨다”며 “헌법재판소에서도 ‘당선자’가 맞는 표현이라고 했지만, 언론은 듣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당선자’라고 쓰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제1회 방송언어연구소 세미나 '인권과 방송말' 신지영 고려대 교수 발제문 갈무리
제1회 방송언어연구소 세미나 '인권과 방송말' 신지영 고려대 교수 발제문 갈무리

신 교수는 대안으로 특정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앞에 부연하고 해당 인물에 대한 호칭을 ‘씨’로 통일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예컨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대통령 윤석열 씨’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신 교수는 "평등의 실현을 위해 언론이 평등한 호칭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승혜 MBC 뉴스룸 뉴스전략파트장은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고,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데 주입해서 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여사’라는 말은 지금 언중이 사용하고 있고, 시대상을 반영하는 언어다. 언론이 아젠다를 세팅해 특정 단어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시절은 지났다”고 말했다.

정 뉴스전략파트장은 “‘씨’가 옛날에는 좋은 의미였고, ‘여사’라는 말이 과거에 다른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현재 논쟁이 있었던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한겨레가 어느 순간 ‘씨’에서 ‘여사’로 명칭을 바꾼 것은 ‘씨’에 대한 대중의 시각이 변했고, ‘여사’라는 의미가 현재는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어떤 사람의 특징, 집단적인 속성을 이야기할 때 평등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중립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 교수는 “다른 호칭으로 불릴 직업이나 지위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그래서 ‘씨’라고 호칭하는 것이 평등의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최근에는 피해자에 대한 심판이나 피해자를 노출시키는 것을 조심해서 보도하다 보니 오히려 가해자의 말을 시민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사건 보도에서 ‘주어’로 누구를 쓸 건지 누구의 관점에서 보도할 것인지에 대해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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