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대통령 행사에서 사라졌던 '이름표'가 다시 등장했다. 대통령 행사에서 대통령 내외를 제외한 참석 인사들이 이름표를 패용하는 관행은 권위주의 관습으로 지적되어 왔다.
12일 대통령실은 이날 저녁 윤 대통령이 칸 영화제 수상자들과 영화계 관계자 등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고 알렸다. 지난달 칸 영화제에서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 씨,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과 출연 배우 박해일 씨 등이 참석했다. 이 밖에 영화 '헌트'로 올해 칸 영화제를 방문한 배우 정우성 씨, 영화계 원로인 임권택 감독과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위원장,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CJ ENM 이미경 부회장 등이 함께 자리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 직전 김건희 여사와 함께 시내 한 영화관을 찾아 '브로커'를 관람했다.

대통령실이 배포한 행사 사진을 보면 윤 대통령 내외를 제외한 참석자들이 이름표를 패용했다. 유명 배우들이 이름표를 달고 행사에 참석하자 SNS 일각에서는 '왼쪽 가슴에 명찰은 뭐냐', '누군지 모를까봐 이름표를 달았냐', '배우들한테 명찰은 왜', '배우가 명찰을 해야한다면 대통령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간 대통령실 행사 사진을 보면 ▲국민희망대표 초청 대통령 기념시계 증정식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 ▲거시금융 상황 점검회의 ▲호국영웅 초청 소통식탁 등의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 반면 ▲7대 종단 지도자 오찬간담회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오찬간담회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이름표를 달지 않았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 간담회, 면담, 행사 등에서 참석자들이 일괄적으로 이름표를 다는 관행은 권위주의적 의전으로, 이명박·문재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이름표 패용 관행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2011년 1월 이 전 대통령과 국내 30대 주요기업 총수 간 오찬간담회에서 이름표가 사라졌다. 당시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대통령은 올해부터 각종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일괄적으로 명찰을 다는 관례를 개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이명박 청와대는 참석자가 너무 많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전에 자료를 통해 상대방을 파악하고, 참석자 이름표는 떼도록 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굳이 소개가 필요하지 않은 인사의 경우에도 이름표를 달지 않게 해 권위주의적 의전 관행에서 탈피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참석자가 너무 많아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려울 때는 예전처럼 이름표를 달도록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와대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이름표를 달게 하는 관행을 없애라"고 지시했다. 2017년 5월 19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오늘 아침 언론에 보도된 칼럼과 여러 기사를 직접 보고 '그동안 청와대에서 열리는 각종 정부 회의에 모든 참석자가 이름을 다는 관행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오늘 5당 원내대표 오찬부터 명찰을 달지 않았다"며 "향후 이름표 패용 관행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권위주의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청와대 상징으로 지목되는 방문객과 청와대 직원 명찰 패용 관행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 내외는 어린이날 행사 때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이라고 쓰여진 이름표를 착용했다.
2017년 6월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시도지사협의회 회장으로서 이름표 패용 관행의 변화에 대해 "청와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당시 최 지사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에서 "그 전에 청와대를 들어가면 일종의 군기를 잡는다. 의전·경호부터 검색을 통해 제일 안까지 들어가면 명찰을 달아준다"며 "저도 60이 넘었는데 가슴에 '최문순' 큰 명찰을 달고 쭉 줄서서 앉아있다가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러면 전부 일어나야 된다. 사전에 경호실에서 '대통령 입장하시면 일어서서 박수쳐주시기 바란다' 교육도 시켰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2월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 <非正常의 정상화, 이름표를 떼어줘>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이름표는 자유로운 민주국가에서는 지극히 이례적인 모습이다. 결코 정상이 아닌 이런 모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언론도 접하지 못했다"며 "어느 틈엔가 정상처럼 되어버린 비정상이 요즘 와서 더욱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현직 대통령의 특별한 이미지 때문일까?"라고 썼다.
안 교수는 "한때는 모든 군인이 계급장을 달 듯, 모든 공무원, 학생도 명찰을 단 적이 있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분야에서 그 시대의 유습이 사라지고 있는데 유독 청와대에서만은 아직 견고하다"며 "이제 제발 그 '굴종의 이름표'를 떼자"고 했다.
한편, 2018년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주권자를 위한 전 직원 명찰 패용' 방침을 밝히고 "나부터 패용하겠다"며 의지를 나타내자 언론은 '명찰 패용 논란' 보도가 쏟아졌다. 이 지사는 "자기가 누군지 투명하게 드러나면 조심하고 겸손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나온다"며 이름표 제작을 추진했지만 경기도청 3개 공무원 노동조합 등이 '예산낭비' '일방적 강행'이라며 반발해 논란이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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