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과 인터뷰한 내용을 왜곡·축소하는 대통령실의 후진적 홍보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전후로 세 번째로,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마사지' 논란이 연상된다.

MB 청와대 홍보수석 이동관의 한 마디 "마사지"

2010년 1월 29일 새벽 1시 30분경, 청와대는 전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진행진 이명박 대통령의 영국 BBC 인터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한반도 평화와 북핵 해결에 도움될 상황이 되면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모든 언론이 해당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보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오른쪽)과 김은혜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KBS가 BBC로부터 이 대통령 인터뷰 영상을 받아 녹취를 푸는 과정에서 청와대 보도자료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은 "양측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사전에 만나는 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아마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건없이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 대통령 발언을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축소·왜곡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이 대통령 BBC 인터뷰에 배석한 당시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현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은 사의를 밝혔다. 김 대변인은 "여파가 클 수 있는 발언이어서 인터뷰를 마친 뒤 이 대통령에게 진의를 물었고, 이 대통령이 설명하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며 "발언을 왜곡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현 윤석열 대통령 대외협력특보)의 추가 해명이 논란을 키웠다. '마사지' 논란의 시작이었다. 이 홍보수석은 기자들에게 "(이 대통령 발언은)오해를 살 수 있어서 조금 마사지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며 "워딩에 따라 실체적 진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 기술적인 실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마사지' 논란이 재현됐다. 2010년 2월 26일 이 대통령은 제2기 생활공감 주부모니터링단 출범식에서 교육계 비리와 관련해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들도 정신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정신차려야 한다"는 이 대통령 발언을 "책임지고 가르쳐야 한다"로 수정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기자들이 반발했지만 청와대는 '민감한 상황'을 고려해달라며 자료를 배포했다. 이날 행사에는 4500여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CBS가 이 대통령의 발언 그대로를 인용해 보도하자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마사지'한 보도자료를 다시 "정신차려야 한다"로 수정해 배포했다.

2010년 5월 30일, 이동관 홍보수석은 한·중·일 정상회의 관련 브리핑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만약 일본이 (천안함 사태와)같은 방식의 공격을 받았다면 한국처럼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자위권 발동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씀"라고 전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이 기사화되자 일본 쪽이 청와대에 정정을 요구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취재진에 "일본 쪽이 민감히 받아들이고 있다"며 표현 수위를 낮춰달라 요청했다.

다음날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 홍보수석이 브리핑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일본 측은 '이 같은 발언은 없었다'고 사실관계를 전면 부정했다"며 "청와대가 이 수석의 발언을 정정했으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일본 쪽에 사과할 일도 아니고, 사과하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0년 1월28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고 있는 다보스 알렉산더호텔에서 BBC World 닉 고잉 TV메인앵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외신 인터뷰 '마사지' 논란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이 CNN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을 '굴종 외교'라고 발언한 것을 감추다 뒤늦게 정정했다. 25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23일 윤 대통령의 CNN 인터뷰 방송 소식을 알리면서 기자들에게 직접 방송을 보고 내용을 확인하라고 공지했다.

CNN 방송 후 대통령실은 CNN 방송에 나오지 않은 내용이라며 추가로 윤 대통령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모든 상황이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던 2017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는 질문에 윤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도발과 대결을 피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눈치를 보며 지나치게 유화적인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CNN 홈페이지에 게재된 윤 대통령 인터뷰 기사 내용은 대통령실이 공개한 내용과 달랐다. CNN은 "그는 이전 진보 정권의 화해전략을 지적했다"(he said, pointing at the previous liberal administration's conciliatory strategy)면서 "지난 5년동안 이러한 접근 방식은 실패로 판명됐다"는 윤 대통령 발언을 전했다.

CNN 기사를 확인한 기자들이 대통령실에 문제를 제기하자 대통령실은 2시간여 뒤 윤 대통령 실제 발언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CNN에 "일시적인 도발과 대결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걸 '굴종 외교'라고 표현을 하는데, 저쪽의 심기 내지는 저쪽의 눈치를 보는 그런 정책은 아무 효과가 없고 실패했다는 것이 지난 5년 동안에 이미 증명이 됐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굴종 외교' 등의 발언을 삭제해 보도자료로 배포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앞서 지난 21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윤 대통령에게 "장관 후보자들은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중략)그리고 대선 기간 동안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고 제안했다"며 한국 정부가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현장 통역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여성가족부 폐지' 질문은 제외됐으며 대통령실이 이후 배포한 자료에서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질문에 없었던 "대선 기간동안 윤 대통령께서는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는데"라는 내용이 보도자료에 포함됐다. 상당수 언론이 이를 받아썼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한국과 같은 경제적 선진국이 여성의 대표성을 향상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며 "한국의 성 평등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물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지칭했다가 이를 정정하는 논란을 빚었다. 지난 3월 7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보도에 따르면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지 않는 선거 캠페인으로 비판을 받아왔다'며 페미니스트냐고 물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페미니즘은 성차별과 불평등을 현실로 인정하고 시정해나가려는 운동이다. 그런 점에서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 다음 날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는 '행정상의 실수'로 답변을 잘못 보냈다며 '페미니스트' 발언을 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 도쿄·서울지국장은 SNS를 통해 인터뷰 원문을 다시 공개해 윤 대통령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해당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현재까지 수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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