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WP) 기자로부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남성 중심 내각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는 답변을 내놨으나, 대통령실은 '그렇지 않다'고 수습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대통령이 성불평등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총평했다.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보도진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질문을 위해 손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WP "성 불평등 압박 질문에 불안한 모습"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동행 취재한 WP 기자는 기자회견 종료 직전 추가 질문을 통해 윤석열 내각의 성비에 대해 질문했다.

WP 기자는 "지금 내각에 남성이 굉장히 많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여성의 승진 등이 일관되게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며 "(대선)캠페인을 할 때에도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WP 기자는 "한국이 여성의 대표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 어떻게 생각하나"라며 "또 행정부에서는 남녀평등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건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금 공직사회에서, 예를 들어 '장관' 그러면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며 "아마 이게 우리가 각 지역에서 여성의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WP 기자 질문에 당황한 듯 통역 이어폰을 뺀 채 뜸을 들이다 답변에 나섰다.

WP는 이날(현지시각) <한국의 대통령, 성불평등에 대한 압박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윤 대통령은 한동안 꼼짝않고 서 있다가 번역을 받는 이어폰을 벗더니 대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며 윤 대통령 답변 뒤 통역사가 재빨리 기자회견 종료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WP는 "한국은 임금, 정치 발전, 경제 참여 등의 면에서 남녀평등이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라며 "선거운동 기간 윤 대통령은 여가부를 없애자고 제안했었다. 이 발언은 성평등을 위한 운동에 반대하는 일부 '반페미니스트 운동' 청년들에게 구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WP는 "대다수 젊은 여성은 보수 성향의 윤 대통령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한 진보 성향의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가 21일(현지시각) 보도한 <한국의 대통령, 성불평등에 대한 압박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S. Korean president appears uneasy when pressed on gender inequality)> 기사 갈무리

윤석열 정부에서 현재까지 이뤄진 주요 인사를 보면 총 19명의 국무위원 중 여성은 3명, 차관·차관급 인사도 총 41명 중 2명에 불과하다. 그동안 성·세대·지역 등 인사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이어져왔지만 윤 대통령은 '능력주의'에 따른 인선을 주장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답변이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자 대통령실은 수습에 나섰다. 22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대통령 생각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본다"며 "인정을 했다, 안 했다기보다 대통령이 질문을 듣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한 것이다. 대통령 답변은 앞으로도 여성들이 공정한 기회를 가지도록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WP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지칭하는 인터뷰를 했다가 이를 정정하는 논란을 빚었다. WP는 지난 3월 7일 인터뷰 기사에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지 않는 선거 캠페인으로 비판을 받아왔다'며 페미니스트냐고 물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페미니즘은 성차별과 불평등을 현실로 인정하고 시정해나가려는 운동이다. 그런 점에서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WP 보도 다음 날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는 인터뷰 문서 원본을 제시하며 '페미니스트' 발언을 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WP 도쿄·서울지국장은 SNS를 통해 인터뷰 원문을 다시 공개해 윤 대통령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해당 WP 기사는 현재까지 수정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 "질문은 한 개만"

또한 질의응답 진행 방식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한국 기자는 한국 대통령, 미국 기자는 미국 대통령에게 한 개의 질문만 해 달라고 반복해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기자들은 두 대통령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국 기자가 복수의 질문을 던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질문은 하나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제가 윤 대통령을 보호해드리겠다"고 농담을 던졌고, 기자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자회견은 한국 기자 2명, 미국 기자 2명이 질문하는 것으로 종료됐다. 기자석에서 질문 요청이 이어졌지만 "다음 일정이 많아 이동해보겠다"는 강 대변인의 말로 기자회견이 종료됐다.

22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대선)캠페인을 할 때에도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얘기했다"는 WP 기자의 발언은 통역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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