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력한 대권주자 안철수 원장과 중앙일보 사주 홍석현 회장의 모습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건이 폭로된 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행보가 미묘하게 엇갈리는데 관심이 쏠리고 있다. KBS 새노조가 문건을 폭로한 이후 진보언론은 지난 금요일(3월 30일)부터, 보수언론은 지난 토요일(3월 31일)부터 받아 쓰기 시작했으니 이제 겨우 사흘차다. 그러나 이 사흘 동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세 번의 수싸움

1라운드, 3월 31일엔 그 차이가 커 보이지 않았다. 결코 옹호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두 신문 모두 사설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몸통이라 우기는 이영호 말고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짜'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고 중앙일보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차이는 2라운드, 4월 2일자 보도부터 시작했다. 주말 동안 청와대의 반박이 나왔기 때문에 '거리'가 생긴 것이다. 이 '거리'를 활용하는 방식이 달랐다. 조선일보는 ‘물타기’에 돌입했다. 조선일보는 1면을 <'민간사찰 정국' 반전, 그리고 혼전>이라고 달았다. 중앙일보 역시 청와대의 반론을 1면에 소개했지만 '반전'이나 '혼전'과 같은 가치평가를 담지 않고 그저 양측의 주장을 소개하는 길을 택했다. 기사보도에서도 조선일보가 청와대의 물타기성 해명을 중점보도할 때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인적 구성을 지적하면서 '전 정권과의 연속성'을 사실상 논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 지난 2일자 조선일보 1면

사설에서는 더 큰 차이가 생겼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민주당을 공격했다. 대통령 하야를 주장한 민주당은 이제 참여정부 사찰이 공개되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민주당은 참여정부의 핵심인사였던 한명숙, 문재인, 이해찬의 정계은퇴를 각오해야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앙일보는 그에 비해선 훨씬 더 상식적인 태도를 취했다. <불법사찰, 전 정권 핑계댈 일 아니다>라는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참여정부 때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수사해서 밝혀야 하겠지만 사찰/은폐/검찰 기소가 모두 문제가 있는 만큼 정치적 시비로 문제의 본질을 흐려선 안 된다고 주문하며 청와대의 결단을 촉구했다.

3라운드인 오늘자 보도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조선일보 1면은 <청와대·민주당 막가는 폭로전>이라는 제목으로 이 정국을 진흙탕 싸움의 양비론으로 묘사한 후 슬쩍 새누리당을 주체에서 빼냈다. "우리도 사찰의 피해자이며 청와대의 일은 모른다"는 새누리당의 총선전력에 정확하게 합치하는 부분이다. 사설인 <국민 血稅로 잡동사니 정보 수집하는 시대와 결별해야>는 그와 별개로 문제의 핵심을 찌른 정론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조선일보 스스로 사태를 사설에서 비판한 '진흙탕 싸움'으로 묘사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번에 일부 사찰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관가(官街)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감찰 조직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가 처음 드러났다.(...) 그런 정보 정치가 독재 정권 시절엔 어느 정도 통했으나 인터넷과 SNS로 정보가 사통팔달(四通八達)하는 요즘 세상에 뒤 캐기와 약점 잡기로 공직자와 반대파를 길들이려 하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 불법 사찰은 그 비밀도 오래 지켜지지 않아 정권이 끝나기 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정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 여야 모두(...)법 정보 수집과 불법 사찰에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시대와 확실하게 결별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는 사설의 정론도 문제의 핵심을 짚긴 했지만 대통령과 현 정부의 책임 문제는 쏙 빼버리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 오늘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사찰'의 양상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어제의 보도기조를 이어갔다. 1면에는 <"내 약점 캔 그 사람들, 사표 내라 압박">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사설인 <대통령,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는 조선일보의 다소 추상적인 정론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입장에서 이 사태를 분석하고, 대통령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데는 중앙일보를 포함한 언론의 책임도 있음을 고백한다. 언론이 제대로 취재를 했다면 문제의 문건들이 2010년 7월 검찰 수사 착수 후 1년 반이 넘을 때까지 수사기록속에 묻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자기고백도 필요한 부분이었고, 조목조목 정부의 책임을 비판한 이후 "이 대통령은 대통령직의 엄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길 바란다. 자신이 수반(首班)을 맡고 있는 정부 조직에서 빚어진 사찰 및 은폐 시도에 대해 이런 줄 몰랐다면 몰랐다고 말하고,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다시는 불법 사찰 같은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선언과 함께 "성역 없는 조사를 지시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국민이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다"라는 결미는 우리가 중앙일보에서 일 년에 한 두 번 보기 힘든 정론이라고 판단된다.

언론, 선거 때면 자유로워진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김동원 박사는 이런 현상을 외국과 비교해서 해석했다. "외국에서는 주요언론들이 오히려 선거 때가 되면 기자들이 자율성을 가진다. 선거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데스크가 관망하는 사이 기자들이 몇 년간 축적되었던 문제의식을 매체에 쏟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프레임이 사라지고 새로운 프레임이 자리잡는 일이 선거기간에 흔히 일어난다"고 설명한 그는, "하지만 조중동은 안 그렇다. 사주체제이고 사주들이 이미 특정 정치세력에 줄을 서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실정에서는 편집부와 기자가 갈등을 겪기보다 사주가 어디에 줄을 설지 아직 판단을 못 내렸을 때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보도가 나오게 될 확률이 높다"고 진단했다. 확실히 중앙일보가 정권을 정조준하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현상이다. 막연히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보다는 덜 보수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최근 몇 년 양상을 보면 ‘반MB’에 확실히 나선 쪽은 조선일보였다.

따라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 차이는 현재의 정세에 대한 양 신문사의 이해관계의 차이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조선일보는 그간 '반MB'에 나섰지만 그것은 그들이 '박근혜'의 지지자란 점에서 나올 수 있는 '반MB'였다. 그래서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핵심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때 조선일보는 자유롭게 정권에도 비판적인 정론을 구사할 수 있었지만 박근혜가 진두지휘하는 총선 국면에서는 오히려 발이 묶였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반면 중앙일보는 그간에는 굳이 정권에 각을 세우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다른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앙일보 내부사정을 잘 아는 익명의 관계자는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줬다. 그는 "홍석현 회장이 서울시장 선거 당시 '안철수 열풍' 이후 직접 기자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한다. '신문이 너무 보수 쪽으로 가고 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한다. 사내에서 안철수와 잘 아는 산업부 기자 출신들이 힘을 받고 있다"고 중앙일보의 내부사정을 전했다. 12월 23일자에 안철수 현상을 분석하는 진중권의 긴 글이 실린 이유도 그 때문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일보는 참여정부 시기 참여정부와도 밀월관계를 형성한 전력이 있는 만큼,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자신들은 새로 줄을 설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1997년 대선에서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보다 더한 왜곡보도를 한 이유는 홍석현 회장이 경기고 동창인 이회창 후보를 좋아했기 때문(이회창은 경기고 49회, 홍석현은 64회다)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일 홍석현 회장이 안철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2012년 중앙일보의 대선 보도는 의외의 양상을 보여줄 수도 있다.

선거가 언론을 자유롭게 한다는 명제는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도 성립할 수 있지만, 해외에서 그것이 성립하는 이유가 기자의 자율성이라면 한국에서 그것이 성립하는 이유는 사주의 '다른 판단의 가능성'인 셈이다. 중앙일보 사설의 정론이 당장 마시기엔 시원하면서도 뒷맛의 텁텁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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