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비호감 대선', 최근 대선주자 관련 여론조사 보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프레임이다. 대선주자들에 대한 여론으로 이번 대선 정국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 검증 보도의 당위성이 흔들리고 있다.

'비호감 대선'은 지난달 17일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주자 호감 여부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보도 제목으로 등장했다. 한국갤럽이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조사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호감 34%, 비호감 58%),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호감 30%, 비호감 60%)과 홍준표 의원(호감 28%, 비호감 64%) 등 여야 상위권 후보 모두 높은 ‘비호감’ 답변을 얻었다.

네이버에 '비호감 대선'을 검색한 결과

언론은 후보자들의 비호감도에 주목했다. 중앙일보는 9월 24일 <이런 비호감 대선 없었다...“뽑을 사람 없네” 통계로 입증> 보도를 시작으로 <참 우울한 대통령 선거>(9월 28일), <비호감 대 비호감>(10월 1일), <“나쁜놈·이상한놈·추한놈” 비호감 대선 때린 ‘2% 안철수’>(10월 13일) 보도에서 연일 대선 후보들의 비호감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여론조사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와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문화일보 <낮은 호감도, 높은 비호감도>(10월 1일), 한국일보 <비호감 대선의 비극>(10월 6일), 대전일보 <비호감 대통령 뽑기>(10월 7일), 한국일보 <이재명, 靑 입성까지 3대 난관 ①대장동 ②이낙연 ③비호감>(10월 11일), 헤럴드경제 <이재명-윤석열, 점점 커지는 ‘비호감’...분석 ‘최대 리스크’>(10월 14일), 매일경제 <역대급 비호감도 후보들의 경쟁이 된 대선, 왜?>(10월 17일), 매일신문 <비호감 정치, 그래도...>(10월 17일), 한국일보 <20대는 왜 이재명·윤석열이 ‘너무’ 싫다고 하나>(10월 18일) 등이다.

대선주자들의 높은 비호감도는 주목할만한 이슈다. 한국갤럽이 2017년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 2월 21~23일 실시한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후보자들의 비호감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호감 47%, 비호감 46%),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호감 54%, 비호감 37%), 이재명 지사(호감 39%, 비호감 51%)의 비호감도는 절반을 넘지 않았다.

문제는 정책 관련 보도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비호감’ 키워드가 등장하기 시작한 9월 24일부터 10월 18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 ‘이재명’과 ‘윤석열’을 다룬 기사 1000개씩을 ‘연관어 분석’을 통해 검색한 결과, 정책 키워드는 없었다. 이재명 후보는 당내 경쟁자, 대장동 의혹 관련 키워드가 대부분이었고 윤석열 후보는 검찰총장, 손바닥, 고발사주 의혹 등이 연관어로 제시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통해 9월 24일부터 10월 18일까지 각 1000개의 '윤석열'(위), '이재명'(아래) 기사를 '연관어 검색'으로 시각화한 결과. (자료=빅카인즈)

대장동, 고발사주 의혹 등 각종 이슈에 매몰된 탓도 있지만 언론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손쉬운 보도로 여론조사 결과에 집중해 정책 비교 보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대선 보도가 여론조사 결과 중심으로 소비되는 것을 경계했다.

엄 소장은 “여론조사 인용 보도가 많아지는 이유는 여론조사 결과가 클릭수를 유도하기 좋은 정보이기 때문이다. 정책이나 비전, 대선후보의 자질 검증으로 보도하면 재미가 없으니 주로 수치 위주로 줄 세우는 식의 보도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호감도 조사’의 경우, 후보자들에 대한 반감을 키울 뿐 아니라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 있어 보도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엄 소장은 “호감도-비호감도 조사가 의미는 있지만, 왜 비호감도가 높게 나오는지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함께 다뤄져야 한다”며 “원인까지 보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 안팎에 후보자를 향해 나오는 온갖 발언들을 비호감 이유로 해석하게 되고 이는 결국 유권자의 손해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여론조사 보도는 악순환의 사이클에 놓여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를 기사화하면 기사를 쓰기도 쉽고 조회수도 높게 나오지만 문제는 아무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결과가 정보 수용자들에게 간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여론조사 시 판단 근거를 묻지 않다보니 지금의 보도는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역으로 해석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며 "언론보도의 기본은 사실에 기반을 둬야 하는데 기사 작성자의 추론적 해석이 여론조사 결과 해석으로 기사에 담겨 '가정적 정보'가 정보 수용자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특히 "여론조사는 인지도 조사, 호감도 조사, 지지도 조사로 나뉘는데, 호감도 조사는 유권자들의 감성적인 부분을 묻다보니 유권자가 호감과 비호감을 결정하는데 정책 정보 인지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며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후보자가 비호감 요인을 고칠텐데 지금은 후보자도 유권자도 비호감 요인을 정확히 모르기에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가 쌓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 대표는 여론조사 결과 보도 대신 후보별 정책 보도 중심의 기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해외 매체를 보면 팩트 기반의 해석 정보를 제공해 '분석적 정보를 원하는 정보 수용층'을 창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 대표는 "예를 들어 후보별 기후 공약을 분석해 1~2년 동안 보도한다면 분석적인 보도를 원하는 수용층이 해당 매체를 방문하게 되고 언론사는 쉬운 정보를 가지고 경쟁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대선에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꼬리표가 따라 붙는 배경에는 유력 대권주자들에게 불거진 대형 의혹, 이를 두고 여야 정치권이 벌이는 정치공방이 있다는 언론분석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국정감사를 '대장동'과 '고발사주'가 뒤덮은 형국에서 '적대적 공생', '비호감 대선'을 우려하는 비판적 기사와 칼럼이 이어지고 있다.

김정곤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6일 칼럼 <비호감 대선의 비극>에서 외부 악재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이재명·윤석열 후보 지지율에 대해 "상대방을 겨냥한 네거티브가 격화하면서 위기를 느낀 보수와 진보 각 진영의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대세론을 굳히고 있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라고 썼다.

이어 김 논설위원은 "가뜩이나 '찍을 후보가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역대급 비호감 후보들이 즐비한 대선"이라며 "‘악당 대 악당’의 대결 속에서 공정과 정의라는 시대정신은 사라지고 부동산을 비롯한 정책대결마저 실종된 최악의 대선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

여야 유력 대권주자들의 비호감도가 60%대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 더해 지지후보가 없다는 여론이 높게 집계되고 있다. 지난 9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의견 유보'로 분류되는 응답자는 26%에 달해 어떤 후보의 지지율보다도 높게 나타났다. 특히 18~29세 젋은층 49%,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 63%가 뽑을 사람을 정하지 않았다.

지지층은 결집하고, '뽑을 사람이 없다'는 여론은 크고, 후보 비호감도는 높은 현상은 그 자체로 여야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치환경의 양극화, '막말'로 대표되는 비호감 언행 등도 이런 현상의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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