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의 지도부 경선이 끝났다. '이변은 없었다'고 한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명숙, 문성근, 박영선, 박지원, 이인영, 김부겸. 정치 뉴스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씩 순위는 달랐을지라도 대충 이 사람들이 당대표와 최고위원에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뻔한 게임이었다. 이것은 최고위원이 된 사람과 안 된 사람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최고위원이 된 사람은 앞에 나열했고 안 된 사람은 이강래, 이학영, 박용진이다. 앞서 언급한 6인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라는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특히 시민선거인단의 등록 수가 80만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당 내 조직력에서 열세이며 바람과 무관해 이변을 일으키기는 힘들지 않았는가 하는 판단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당선된 최고위원들의 면면과 그들을 지지했을만한 사람들의 정치적 지향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이들의 성격에 따라 향후에 벌어질 수 있는 야권 내의 정치질서 재편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새롭게 선출된 민주당 새 지도부ⓒ연합뉴스

한명숙 그리고 문성근, 친노 부활의 정점

한명숙, 문성근의 선전은 그야말로 '친노의 부활'에 정점을 찍은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물론 친노 중에서도 민주당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친노와 민주당에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친노의 판단이 달랐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결국 모든 친노 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친노의 '맏언니' 한명숙과 '노사모'로 대표되는 '노풍'의 전도사 문성근이 나란히 1, 2위를 했다는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으로부터 이어지는 드라마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한명숙 신임 대표의 경우는 정치검찰로부터 박해를 받았으나 이를 이겨낸 사람이라는 점이 민주통합당 지지층에 강력하게 어필했을 것이다. 특히 검찰에 대해서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으며 이를 기초로 한 전선을 계속 그어오던 상황이 아닌가? 정치검찰의 탄압을 이겨낸 한명숙 대표라는 모양새는 다수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박남매' 당선의 각기 다른 의미

3위를 한 박영선 최고위원의 경우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이변이라고 평가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선의 선전은 흥미로운 부분인데 구체적인 증거를 댈 수는 없으나 내 생각에는 '2번째 표'의 실질적 수혜자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소위 혁신과 통합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경선에서 박영선이 패배한 것에 대한 배려로 2번째 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박지원 최고위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경우 원내에서 대활약을 펼친 박지원-박영선이라는 환상의 복식조를 상기하며 2번째 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인영을 지지하는 486 지지세력의 경우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라는 점에서 선호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고 김부겸을 지지하는 손학규 전 대표의 지지세력의 경우 그나마 손학규 전 대표에 우호적인 구 당권파라는 점에서 지지를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거의 모든 계파에서 2번째 표로 박영선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박지원 최고위원의 경우 당대표를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아쉬운 결과를 낸 것에 그쳤다. 이강래 의원의 탈락과 함께 그의 부진은 전통적인 민주당의 지지세력이었던 호남을 기반으로 한 계층이 민주-평화-개혁세력 내부에서의 퇴조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결과가 통합 과정에서의 잡음, 돈봉투 사건에 대한 오해 등을 통해 이미지가 훼손된 상황에서 박지원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의 '개인기'를 통해서 어느 정도 실점을 만회한 결과라는 점에서도 구 민주당 세력이 힘을 못 쓰는 상황이 됐다는 평가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이인영과 '손학규의 위기' 경고한 김부겸

이인영 최고위원의 경우 당장 인구에 회자될 정도의 위력을 보여준 것은 아니나 장기적으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김근태 전 의장의 별세와 이후 과정을 통해 이인영 최고위원은 김근태 전 의장의 정치적 적자라는 상징을 획득했다. 사람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잔혹한 일일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김근태 전 의장의 별세 이전과 이후에 이인영 최고위원의 내부적 위상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지도부 경선을 통해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획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김부겸 최고위원의 득표는 손학규 전 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만 하다. 소위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지지층의 경우 손학규 개인에 대한 충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기 보다는 대권주자로서의 손학규의 역할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충성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지도부 경선에서 굳이 김부겸을 지지한 세력은 손학규계 중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면 김부겸의 턱걸이 성적표는 대권주자로서의 손학규의 미래에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친노', 야권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으나 확신할 수 없는 미래

대권주자 얘기가 나왔으니 다른 유력 대권주자의 득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한명숙, 문성근의 선전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은 문재인 이사장이다. 한명숙 대표와 함께 친노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로서 이후의 정치 일정에 민주통합당 전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이 결과가 최선은 아니다. 이학영, 박용진 후보 등이 더욱 선전하였더라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일 뻔 했으나 구 민주당 내의 계파구도를 뒤엎기에는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어쨌든 2012년 총선과 대선의 과정에서 야권의 주인공처럼 떠오를 세력은 결국 '친노'가 될 것이라는 게 이번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 결과의 가장 큰 시사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진보정치세력의 입장에서는 2012년에 친노와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와 이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실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이나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잘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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