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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빠져 '성격'을 놓쳐버린 등장인물[윤석진의 드라마공방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2008 상반기 드라마
윤석진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 승인 2008.03.21 11:00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해가 바뀌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2008년 2월 이후 주말연속극을 필두로 각 방송사의 새로운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수놓고 있다. KBS의 <대왕세종>과 <엄마가 뿔났다> 그리고 <싱글 파파는 열애 중>, MBC의 <천하일색 박정금>과 <누구세요> 그리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SBS의 <행복합니다>와 <온에어>가 올해 각 방송사에서 새롭게 선보인 드라마들이다. 사극, 가족드라마, 트랜디 드라마, 전문직 드라마 등 장르도 다양하다. 게다가 조선시대 성군(聖君), 어머니, 아버지, 아줌마, 이혼녀, 빙의, 방송사 등 소재도 천차만별이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라 할 만하다.

'소문난 잔치' 진수성찬 뚜껑 열어보니 '명불허전'

   
  ▲ KBS '엄마가 뿔났다'ⓒKBS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던가? 스타급 배우와 작가, 연출자가 의기투합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새로 방영될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명불허전(名不虛傳)인 경우가 많아 당혹스럽다.

스타 작가의 신작 주말연속극은 기존의 작품에서 크게 다를 바 없어 진부하며, 스타 배우의 출중한 연기력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극본의 허술함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스타 연출자의 만화와 다른 드라마의 현실성을 배려하지 못한 영상은 허무 개그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식상하다. 그래도 시청률은, 언제나 그랬듯이, 동 시간대 다른 방송사 드라마와의 대진 운에 따라 적당히 분배된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가 차고 넘치는데 재미있게 볼 만한 드라마를 찾기 어려운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장르와 소재, 스타급 배우와 작가, 연출자가 만드는 작품이라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이유는 장르와 소재, 제작 규모에 상관없이 '사람(성격character)'을 배제하고 '상황(역할 role)'만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일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드라마가 없다

생각해보면, 최근 몇 년 사이에 방영된 드라마 가운데 가장 재미있거나 인상적인 드라마들은 모두 등장인물, 곧 '사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장금>의 '서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최근 KBS 일일연속극 <미우나 고우나>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드라마로 자리매김하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일상적으로 쉽게 만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이 평범한 시청자처럼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상황'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 이야기가 <미우나 고우나>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일상적인 영상예술이다. 일상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과 같은 존재가 바로 드라마인 것이다. 따라서 장르를 불문하고 드라마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 현실을 보기 힘들다면, 좋은 드라마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의욕적으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들은 대부분 '상황'만 취하고 '사람'을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배우와 작가, 연출자의 화려한 면면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시청의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다. '사람'이 사라진 드라마는 결코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없다. 최근 방영중인 각 방송사의 주말연속극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엄마가 뿔났다>의 '나영미(이유리 분)'와 '김정현(기태영 분)', <천하일색 박정금>의 '박정금(배종옥 분)'과 '한경수(김민종 분)', <행복합니다>의 '이준수(이훈)'과 '박서윤(김효진 분)' 등이 '상황'에 빠져 '성격'을 놓쳐버린 등장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 SBS <행복합니다> ⓒSBS  
 
자식 때문에 애면글면하면서 가슴앓이를 하는 엄마가 주인공인 KBS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는 최근 막내 딸 나영미의 결혼 문제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알고 보니 재벌가의 아들이고, 남자의 어머니는 평범한 집안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모욕적 언사를 일삼는 상황은 기존의 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풍경이라 특별히 문제 삼을 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재벌과 서민의 결혼 문제로 불거진 갈등의 폭이 깊었던 것과 달리, 남자의 '단식 투쟁'으로 갈등이 해소된다는 상황 설정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죽음을 각오한 단식으로 어머니에게서 결혼 승낙을 받아내는 과정과 부모님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결혼할 수 없다던 영미가 그것에 감동하는 것이 억지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혼을 둘러싼 갈등을 극대화하려는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분열을 일으킨 결과라 할 수 있다.

'역할'에만 충실한 등장인물, 억지스럽고 2% 부족한 '성격'

아버지의 여자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집안을 책임지면서 딸과 엄마 그리고 형사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아줌마 박정금의 활동상을 다룬 MBC 주말연속극 <천하일색 박정금>도 등장인물의 성격 창조에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 MBC '천하일색 박정금'ⓒMBC  
 
박정금은 어머니를 몰아내고 아버지의 여자가 된 청주댁(이혜숙 분)과 그 딸 사공유라(한고은 분) 때문에 남편과 이혼하고 첫째 아들까지 잃어버린 아줌마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상처가 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삶을 꾸려가는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언제 사랑했는지도 모르게 사공유라의 약혼자인 한경수와 삼각관계에 빠지면서 박정금의 성격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아 출신의 입양아로 변호사가 된 한경수는 박정금과 사공유라의 갈등을 유발하는 역할이 존재 이유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박정금의 매력적인 성격에 흠집을 낼 정도로 성격 창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인물이다.

이처럼 상황에 맞는 역할에만 충실한 등장인물들 때문에, 그리고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려던 아줌마 '박정금'이 사라졌기 때문에 <천하일색 박정금>이라는 제목만 아까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평범한 집안의 차남과 재벌가의 장녀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행복합니다> 역시 등장인물의 성격 창조에 아쉬움이 많은 드라마이다. 이준수는 사랑하는 여자 박서윤이 재벌가의 딸이자 자기가 다니는 회사 회장의 장녀라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녀의 행복을 위해 자기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편화된 에피소드 나열은 곤란…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 필요

하지만 그녀의 오빠이자 자신의 대학 동창인 박상욱(이종원 분)이 자신의 사랑을 모욕하는 행동을 하자 그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박서윤과의 결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이준수의 행동은 '훈남'의 역할에 충실한 정형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깟 돈이 무슨 상관이냐며 거침없이 행동하는 박서윤의 모습도 재벌가의 딸이지만 되바라지지 않고 소박한 역할일 뿐이다.
 
드라마가 재미있으려면, 시청자가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을 진짜 사람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들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게 파편화된 에피소드를 단순하게 나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사람,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뒷받침되지 않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의 주말연속극은 이제 막 출발점을 떠나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려고 한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이 제대로 창조되지 않아 드라마 시청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드라마의 도입부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구축하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성격에 근거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해서 진짜 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의 주말 저녁 시간이 즐겨워질 수 있을 것이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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