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북한 원전 건설 색깔론의 배경인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파일 삭제 의혹의 쟁점 중 하나는 '조직적 은폐' 여부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 직전 파일을 삭제한 공무원들이 담당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일하거나 다른 부처로 파견나가 있었고, 또 담당부서와 자료 삭제를 협의했다는 등의 근거로 산업부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원전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산업부 공무원 3명이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문 모 국장과 김 모 서기관은 구속 기소됐고, 정모 과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북 원전 건설 추진' 논란 확산에 따라 산업부가 '수사 중인 사안으로 답할 게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태도를 바꿔 관련 문건의 원본을 공개하면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조직적 은폐라면 산업부 내에 원본 파일이 없어야 하지만 원본 문건이 공개돼 조직적 은폐 의혹이 흔들리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을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오후 7시경 산업부는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을 공개했다. 총 6쪽 분량의 문건은 '동 보고서는 향후 북한지역에 원전건설을 추진할 경우 가능한 대안에 대한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이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문건 작성자는 우선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자체가 미국·일본 등 외국과의 의사결정 기구를 공동으로 구성하고, 사업추진조직은 한국 관련부처가 참여하는 TF로 구성해야 한다는 추진체계안을 제시했다. 또 북 원전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대한 미국·북한·한국의 입장과 가능한 시나리오, 각 추진방안에 대한 장단점을 나열했다.

문건은 크게 세 가지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안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경수로를 지으려던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한국형 원전 2기를 건설하는 방안, 2안은 DMZ(비무장지대)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 3안은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원전 3·4호기 공사를 재개해 완공한 후 북한에 전력을 보내는 방안이다. 문건 작성자는 세 가지 안 중 1안이 설득력이 있다고 봤는데, 1안에 대해서도 "현재 북-미간 비핵화 조치의 내용·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향후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부는 "현재 재판중인 사안임에도 불필요한 논란의 종식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감안해 정보공개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자료 원문을 공개한다"며 "문서는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향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이며, 추가적인 검토나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이 그대로 종결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부는 "이 사안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으며,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동 자료로 인해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며, 이에 해당 자료의 원문을 공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 내용 중 (산업통상자원부)

산업부는 지난달 31일 해당 문건이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한 아이디어 차원의 내부 자료로 확인되었고, 문건의 서문과 결문에 각각 '동 보고서는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 '북-미간 비핵화 내용·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높아 구체적 추진방안 도출에 한계가 있으며, 향후 비핵화 조치가 구체화된 이후 추가검토 필요' 등의 문구가 명시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일 산업부가 원본을 공개하기 전 머니투데이, 중앙일보 등은 단독기사를 통해 해당 문건이 산업부 내에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는 1일 오전 <[단독]북 원전지원 문건 산업부에 그냥 있다… 은폐 주장이 조작>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했다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보고서는 여전히 산업부 내부에 파일 형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오히려 정권차원에서 삭제, 은폐를 했다는 주장을 뒤집는 증거로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밝혔다.

머니투데이는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보고서는 산업부 내부 전산망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산업부는 특히 구속된 공무원들이 삭제했다고 해도 내부문서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황을 주목한다. 검찰이 복구한 문건은 사본에 불과한 것인데, 단순히 사본을 삭제한 것을 두고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하려다 여의치 않자 문건을 삭제한 정권차원의 '조직적 은폐'라고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오후 5시경 중앙일보는 단독기사를 통해 A서기관이 삭제한 북한 원전추진 문건이 다른 동료 컴퓨터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보도했지만, 이를 추가적인 의혹으로 풀어냈다. 산업부가 북한 원전추진 문건의 내용을 계속 발전시킬 필요성이 커 감사원의 눈을 피해 따로 보관해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산업부의 해명처럼 ‘내부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했다 종결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라며 "산업부 관계자는 '왜 그 문서가 다른 동료 컴퓨터로 옮겨졌는지는 정말 미스터리'라면서도 '앞으로 진행 가능성이 있거나 중요한 문건은 남겨서 후임자에게 전달해 주는데 북한 원전 관련해서 앞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참고용으로 남겨뒀을 수도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해설에 비춰보더라도 산업부 내부전산망, 또는 옆 동료 컴퓨터에 문건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산업부 차원의 조직적 은폐·조작 의혹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를 정리한 수준의 문건을 관련 직원과 공유했고 이후 자신의 컴퓨터에서만 삭제한 것을 조직적 은폐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한 산업부는 원본 문건을 공개하면서 "참고로, 일부 보도에서 공개한 530개 삭제 파일 목록을 확인한 결과, 이전 정부에서 작성된 자료가 174개, 현 정부에서 작성된 자료가 272개로 파악되며, 그 외 작성시기 구분이 어려운 문서가 21개, 문서가 아닌 자료(jpg 등)가 63개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부는 "북한 원전 관련 자료로 예시된 17개 파일의 경우 산업부가 작성한 자료는 ‘북한 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2개로 파악된다"며 "나머지 자료들은 ‘95년부터 추진된 KEDO 관련 공개 자료와 전문가 명단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산업부가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530개 파일명을 내부 전산망 파일들과 대조분석한 결과로 해석된다.

조선일보 2월 1일 <①北신포에 건설 ②DMZ 원전 ③신한울서 송전>, 2020년 11월 23일 <산업부가 삭제한 문건 444건에 '北 원전건설' 파일 10여개 있었다> 등

조선일보가 해당 문건의 내용을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보도하면서 여권 일각에서는 정보 유출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산업부 문건 공개 전인 1일 아침 <[단독]신포원전·DMZ원전·신한울...北 지원 3가지 방안 검토했다> 보도를 내놨다. 조선일보는 "감사원과 산업부 등에 대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19년 12월 1일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북한 원전’ 관련 17개 문건 가운데 ’180514_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 문건에 대북 지원 방안이 구체적으로 담겼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문건의 1·2·3안 내용을 전한 뒤 "감사원은 2020년 산업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면서 해당 문건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조선일보에 감사·수사정보가 흘러간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이상한 것은 어떻게 감사원과 검찰이 가지고 있는 문서가 일부 언론에, 이미 조선일보 같은 경우 작년 11월에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1월 23일 <[단독]월성원전 세운 산업부, 北엔 원전건설 지원 추진했다>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작년 12월 감사원의 월성 원전(原電) 1호기 감사 기간에 삭제한 내부 문건 444건 중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보고서 10여 건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은 모두 2018년 5월 초·중순 작성된 것"이라며 "여러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원전 건설 관련 보고서는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 협력 방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업무 경험 전문가 목록’ 등의 제목이 붙은 10여 건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감사원에서 흘러간 건지 검찰이 빼돌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것 자체가 굉장히 비정상적"이라며 "이 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정치공작에 활용됐는지 도리어 감사하거나 수사해야 될 내용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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