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이 '북한 원전건설 추진' 의혹을 '이적행위'로 규정하면서 '실체 없는 정치공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느닷없이 정치권에 떠오른 북한 원전건설 추진 의혹은 4월 서울·부산 재보궐 선거를 앞둔 보수 야당·언론의 과도한 이념공세라는 해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삭제한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파일에 '북한 원전건설 추진' 등의 문건이 나오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29일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기로 했다"고 의혹을 기정사실화했다. 김 위원장은 "충격적 이적행위"라며 비난에 나섰고, 국민의힘은 '반역죄', '원전게이트' 등의 표현으로 강도 높은 정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산자부는 해당 문건이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한 아이디어 차원의 내부 자료로 확인되었고, 문건의 서문과 결문에 각각 '동 보고서는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 '북-미간 비핵화 내용·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높아 구체적 추진방안 도출에 한계가 있으며, 향후 비핵화 조치가 구체화된 이후 추가검토 필요' 등의 문구가 명시되어 있음을 밝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정부차원의 북한 원전건설 추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의 '선 넘은 비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 이제훈 선임기자는 31일 <'대북 원전 게이트'가 '가짜 쟁점'인 세 가지 이유>에서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 사업은 국제사회의 오랜 '북한 비핵화' 보상책 꾸러미의 하나라는 점 ▲북한 원전건설이 남북 당국 차원의 협력사업으로 공식적으로 제기되거나 논의된 적 없다는 점 ▲미국·유엔 대북제재가 완화·해제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프로젝트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 선임기자는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실천하면 경수로를 지어주겠다’는 건 국제사회의 공식 약속"이라며 "무엇보다 지금은 미국과 유엔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북한과 협력사업을 전방위로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봐도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건설 사업이 한동안 진행된 ‘한국형 경수로’도 그 원천 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어, 설혹 대북 제재가 완화·해제되더라도 미국의 동의·협력이 없이는 한국 정부가 혼자 어쩌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 선임기자는 "사정이 이런데 '경수로 건설 사업의 비밀 추진'이라고? 실체를 찾을 수 없는 아주 이상한 질문"이라며 "'핵무장한 북한에 핵발전서를? 충격적 대북 원전 게이트'라는 국민의힘의 인식과 주장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한겨레는 1일 사설 <‘북한 원전 이적행위’ 주장, 무책임하다>에서 "정황과 심증만으로 ‘이적행위’로 규정해 이념 대립을 부추기고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며 "국익을 생각하는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남북관계처럼 민감한 사안에선 더욱 냉철하게 사실관계를 먼저 확인하고 합당한 근거를 갖춰 의혹을 제기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제언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실체 없는 '북 원전' 공세, 책임있는 야당 자세 아니다>에서 "실체적·객관적 진상은 어느 것 하나 드러난 것 없이 보수 야당·언론이 이념·안보 공세부터 시작한 모양새가 됐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보수야당 인사들이 보수언론의 의혹제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습을 되풀이했다고 꼬집었다. 경향신문은 "조선일보가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 때 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원전 건설 내용이 담긴 USB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국민의힘은 기정사실화하고 특검·국정조사를 하자고 나섰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29일 기사 <文대통령, 김정은과 회담때 '발전소 USB' 건넸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대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도보다리 회담에서 북한 원전 건설 문제가 거론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남북 정상 간 대화나 협의에서 원전 건설 얘기는 없었고, 문 대통령이 USB로 건넨 '한반도 신경제구상'에도 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신재생에너지 확대 방안 등이 담겼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경향신문은 "북 원전 건설 문제는 주변국에서도 예의주시할 결코 가볍지 않은 얘기다. 자칫 불안한 한반도 정세에 돌출변수가 되거나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4월 보궐선거 길목에서 자극적인 이념 공방만 벌일 게 아니라는 뜻이다. 국민의힘은 안보 문제에서 책임있는 공당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재생산해선 안 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북한 원전 논란, 색깔론 부추길 일인가>에서 "정부가 불법적으로 문서를 삭제해 빌미를 주긴 했지만, 야당이 불확실한 사실관계를 근거로 종북 논란을 키우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역대 정부의 검토용 문서라면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비판 공세를 키우는 것을 보면 '선거철 역병처럼 번지는 북풍 공작 정치'라는 민주당 논평이 괜한 말이 아닌 듯하다"며 "종북몰이로 선거판을 끌고가는 것은 국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의힘이 구시대적 정당임을 드러내 줄 뿐"이라고 썼다.

그러나 보수언론에서는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 < ‘北 원전’ 이렇게 내놓고 거짓말해야 할 까닭 있을 것>에서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이 산업부 공무원 몇 명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원전이 동네 변전소라도 되나"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는 감사원 감사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월성 1호기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했다"며 "야당 대표를 겨냥해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한다. 무언가 크게 제 발이 저린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북한 원전 문건 삭제, 철저히 수사해야>에서 "산업부의 설명을 믿는다 하더라도 탈원전을 내세우며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한 문재인 정부에서 어떻게 북한 원전 건설 추진이란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자위적 수단으로 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북한에 핵연료를 제공할 수도 있는 상황을 미국과 유엔이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국내 탈원전을 통해 발생한 잉여 장비와 인력을 북한에 투입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北 원전 문건, 全文 공개하고 작성 경위 투명하게 밝히라>에서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 주무 부서에서 왜 하필 정상회담 직후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문건을 만들었다가 감사원 감사 직전 폐기했는지 하는 부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청와대와 여당이 국민의힘의 이적행위 표현이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임을 입증하는 방법은 사안의 실체를 보다 명확히 밝히는 것"이라며 입증책임을 온전히 정부로 돌렸다.

보수언론은 과거 북한 원전 건설에 적극 찬성하는 기사와 칼럼 등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과거 북한 원전 건설에 적극 찬성하는 기사와 칼럼 등을 내놓은 바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안에 가까웠지만 '비핵화 전제 보상책'을 강조한 것이었다.

전영기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18년 5월 칼럼 <북한의 심장을 한국형 원전이 뛰게 할 때 진짜 평화 온다>에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44분간 도보다리 무성(無聲) 대화에서 최초로 유일하게 포착된 단어는 '발전소 문제…'라는 다섯 글자였다"며 "이는 김정은의 3대에 걸친 핵무기 집념이 단순히 안보체제 보장에만 꽂혀 있는 게 아님을 시사한다"고 썼다.

전 논설위원은 "식량+인프라+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 김정은이 내놔야 할 현물은 감춘 핵무기"라며 "한국형 원자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병령(71·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본부장) 박사는 '남북 간 핵 문제 타결의 요점은 북한이 원자력 무기를 내려놓고 한국이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말이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공식'이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파괴적 핵은 버리고 평화적 원전은 짓자'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어릴 때 모래 장난을 하면서 친구들과 부르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노래가 떠오른다"며 "이 노래를 한반도 평화 게임에선 '정은아, 정은아 새집(원자력 발전소) 줄게, 헌 집(핵무기) 다오'로 바꿔 부르면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2018년 3월 20일 기사 <북한에 한국형 원전 짓자… '원전수출 국민행동' 공식 활동 스타트>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수단으로 북한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물론 완전하고도 철저한 비핵화가 전제"라며 "한국형 원전 개발책임자였던 이병령 박사는 '우리의 원전 기술은 최대 현안인 북한 비핵화에도 절묘한 대안'이라며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같은시기 한국경제는 <"남북관계 개선 위해 북한에 원전 지어주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동일한 내용을 전했다.

신동아는 2018년 9월 김성일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의 기고문 <북한 산림 복원, '원전 건설'이 답!>을 실었다. 신동아는 이 기고문에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서 북한 산림 복원에 남북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북한 산림 전문가인 필자는 북한의 산림 황폐화는 에너지 부족에 기인했다며 북한 산림을 복원하는 데 ‘소규모 원전 건설’이 대안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고 편집자 주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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