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의혹이 제기된 지 한 달여 만에 KBS 경영진이 '사원들의 일치단결'을 호소하는 입장을 내놓은 것을 놓고 시민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 김인규 KBS 사장 ⓒ 연합뉴스
KBS 경영진은 27일 "도청 의혹 사건으로 무엇보다 '수신료 인상'이라는 본질이 희석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번 사건은 정치권이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 수신료 인상안을 표결처리하기로 국민 앞에 약속해 놓고도 이를 뒤집으면서 일어난 것"이라며 "그런데 어느 사이에 '정치권의 합의파기'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이른바 '도청' 의혹만 남아 있는 형국으로 변질됐다"고 발표했다.

또,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동안 근거 없는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사원간의 불신을 주장한 본부 노조(새 노조)의 책임도 없다 하지 못할 것"이라며 사원들의 일치 단결을 호소했다. KBS 도청 의혹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기보다는 도청 의혹의 책임을 정치권과 내부 노동조합에 전가하는 모양새다.

27일 KBS 경영진의 입장 발표 이후 트위터에는 이를 비판하는 의견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용민 시사평론가는 자신의 트위터(@funronga)에서 경영진의 입장에 대해 "요약하자면 'KBS 새 노조, 너희는 누구편이냐?'는 것이다. 적극 해석하자면 '도둑놈이라도 자기 편이면 남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라며 "마피아와 KBS의 차이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kohemi)에서 "국가정권도 늘 못나고 후지고 엉터리 같은 자기 면모를 감추려 할 때, 폭력과 구속과 무단을 일삼고자 할 때 늘 '국민의 일치단결'을 외쳤다"고 비판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도청의혹에 대한 KBS의 해명이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의혹 해소가 아니라 의혹 키우기 혹은 제 발등 찍기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도청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했는데 이 모든 책임을 노조에 떠넘기고 있다"며 "동문서답이 따로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이용자는 "'수신료 인상'이라는 경영진의 이권 때문에, 도청 사건 이전부터 KBS가 언론이기를 적극적으로 포기하고 정권 세력의 뒤를 핥아왔다는 본질이 희석되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 "막장방송 KBS의 현재" "김인규 사장님 그럼 도청은 인정하는 것입니까?" "경영진을 개콘으로" "지랄도 이 정도면 풍년을 넘어 세계화" "KBS, 한국도청공사" 등의 의견이 있었다.

한편, 경향신문은 28일 사설 <김인규 사장은 깨끗이 물러나는 게 낫다>에서 "도청 의혹 사건은 김 사장에게 공영방송을 이끌 책임의식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며 김 사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경향은 "KBS가 어제 발표한 '경영진의 입장'은 흡사 책임전가란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한 것 같다"며 "KBS가 사상 초유의 국회 야당 대표실 도청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말장난 수준의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발생한 지 한 달을 넘긴 KBS의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을 살펴보면 일관된 원칙과 정서가 발견된다. KBS 내부에서 횡행하는 책임전가, 그리고 후안무치"라며 "명색이 큰 언론사로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내팽개치는 뻔뻔함이 체질화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권태선 한겨레 편집인은 28일 한겨레 오피니언면 <언론의 자기부정, KBS도청의혹> 제하의 글에서 "설령 증거인멸 덕에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 해도, (KBS는) 이미 가장 값비싼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며 "신뢰를 잃은 공영방송, 그것은 한국방송의 자기부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자기부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금이라도 (KBS가) 새노조의 감사 요청을 받아들여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방송 경영진은 노조를 비난하기에만 급급하다. 그렇다면, 한국방송 내부의 진실규명 투쟁에 연대함으로써 공영방송을 되살려내는 일은 이제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