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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후퇴’ 우려되는 대통령 시정연설‘재정확장’ 필요성 강조했지만 ‘정시 확대’ 언급으로 개혁 진정성에 의문 제기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10.23 10:48

[미디어스] ‘조국 사태’는 정권의 위기였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등 여진이 이어지겠지만 이게 결국 집권세력에겐 독이 될까, 약이 될까? 위기가 새로운 기회로 이어진다면 말 그대로 전화위복일 것이다. 그러나 후퇴의 핑계가 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및 국정 운영 방향 등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에 나섰다. ‘공정성’과 ‘경제’가 중요한 키워드로 다뤄졌다. 최근 정치 현안이 조국 전 장관 문제였고 또 예산안의 처리를 요구하는 연설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잘 뜯어보면 우려가 되는 점이 없는 게 아니다.

먼저 ‘경제’와 관련해서는 재정확장의 필요성이나 당위를 설명하는 데 연설의 많은 분량이 할애됐다. 특히 대외환경의 변화가 우리 경제에 대한 직격탄이 되고 있는 상태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방파제’를 쌓아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올해 성장률이 목표치였던 2.4%에 미달하는 2.0%에서 2.1%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인 상황에서 최근 수출 관련 지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중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 규제 등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 양극화 심화나 고용 상황 개선 등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은 매우 필요하다. 내년 예산안이 513조 규모로 ‘슈퍼 예산’으로 불리는 수준에 이른 것은 긍정적이다.

물론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재정 지출이 한 번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어 ‘재정중독’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는 동시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이 ‘선심성 예산’을 편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어떤 논란이 불거질 것인지를 미리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예산안대로 재정 집행을 하더라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를 넘지 않고 국제통화기금 등도 한국을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로 보고 있다는 점 등을 언급했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신화는 그 자체로 넘어야 할 산이지만 자유한국당 등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 위한 차원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정부가 근본적인 구조 개선보다는 건설경기 부양 등 편리한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 역시 재정확장의 한 방법인 것은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공정’과 관련한 부분을 보면 우려되는 내용이 없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된 합법적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자는 것”이었다며 그간 정부의 노력보다 국민의 요구가 훨씬 높았다고 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조국 전 장관 사태에 대한 의미로 읽힌다. 조국 전 장관 일가의 위법 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번 논란이 국민에게 불공정과 특권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재차 인정한 것이다.

조국 전 장관 문제 중 가장 여론의 반응이 컸던 것은 ‘스펙 품앗이’ 등 자녀 입시와 관련한 대목이었다. 이 때문인지 ‘공정성’의 회복은 입시 문제에 대한 언급으로 이어젔다.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는 발언이 시정 연설 내용에 포함된 것이다.

언론의 지적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이 발언은 기존 정책을 뒤집는 것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 확대와는 반대 취지의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고교학점제나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을 공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 문제에 대해 입시제도 전반의 손질을 언급하고 이게 정시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던 시기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직접 나서 이를 부정한 일도 있다. 당시 시민단체들과 일부 ‘진보 언론’ 등은 “다행”이라는 메시지를 내놨었다. 그러나 이제 우려는 현실이 됐고 정부의 스텝도 꼬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언급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총선의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에서 이와 관련한 유권자들의 압력을 받고 있는 여당 소속 의원들의 주장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앞서 언급한 조국 전 장관 관련 의혹 때문에 여론은 더 악화됐을 것이다.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동력의 유실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 입장에선 언제까지나 ‘이상론’만 말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바로 이 상황은 개혁이 좌초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부가 말하는 개혁은 포장지에 불과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앞으로 집권 세력이 ‘개혁’의 당위를 내세우며 국민에게 일시적 고통 분담과 인내를 요구할 수 있을까? ‘개혁’의 깃발을 중심으로 정권재창출을 모색하는 것은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개혁이 이런 식으로 후퇴하는 것은 유권자들이 대의명분보다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자는 식의 개별적 이해관계를 정치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경제’와 관련한 재정확장의 당위를 말했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다. 대의명분을 기준으로 개혁의 취지를 관철하지 못한다면 결국 재정확장은 정부 여당이 반드시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선심성 예산’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정치는 여전히 전열을 정비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앞서의 상황은 개혁을 주장하는 또 다른 대안적 정치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보수정치에 유리한 조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경험한 바 있는 길을 다시 가야하는 것일까? 이 비극을 막는 것 역시 집권 세력의 책임이지만 역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것 같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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