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수능 정시 비중 상향을 언급하면서 기존 교육당국의 정책방향이 혼선을 빚게 됐다는 비판이 언론과 교육단체 등에서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은 22일 시정연설에서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며 정시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발언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당국과 여당 등이 정시 확대 가능성을 일축해 온 가운데 나온 대통령의 상반된 발언이다. 유 장관은 전날 국정감사에서도 "정시 확대 요구는 학종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며 학종 공정성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진보·보수 언론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 발언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시 확대는 입시제도 불공정성과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비판과 일관성이 중요한 교육정책이 대통령 발언으로 혼선을 빚고 있다는 비판 등이다.

경향신문 23일 사설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 교육적 숙고 끝에 나온 건가>

23일 경향신문은 사설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 교육적 숙고 끝에 나온 건가>에서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교육계와 학교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고 총평했다.

경향신문은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여러 면에서 우려스럽다"며 "너무 잦은 대입 논의로 교육현장의 피로감이 누적돼 있다"고 썼다. 지난해 대입개편 공론화위원회가 합의한 '2022년까지 정시 30% 단계 확대' 방안이 아직 시행되지도 않았고, 정시 확대는 현 정부의 주요 교육 공약인 수능절대평가, 고교학점제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은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교육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다음달 중 발표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때까지 성찰하기 바란다"면서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시 확대 방침이 교육적 숙고에서 나온 것인지, 파장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를. 입시를 정국돌파용 제물로 삼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정시-수시 비율 해묵은 논쟁 불붙어… 교육계 "정시 확대, 공정성 확보 아냐">기사에서 문 대통령 발언에 "교육계에서 '정시 확대는 공정성 확보 방안이 될 수 없다'며 강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은 "수능이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 더 공정해 보일 수 있지만, 수능같은 일제고사는 부모 소득이 높고 사교육을 더 받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기회의 형평성으로 보면 더 불공정하다"며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입시제도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교사노조연맹은 성명서를 내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또다시 수시·정시 비율 논쟁으로 교육계를 혼란에 빠뜨리게 했다"면서 "정시 확대는 사교육 열풍, 강제 자율학습, 문제풀이 교육을 불러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혁신교육의 방향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동아일보는 사설 <"정시 확대 추진", 공교육 혁신 함께해야 '공정교육' 된다>에서 "다만 진보교육 진영의 압력에 밀려 '정시 확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던 교육당국이 대통령 지시에 갑자기 방향타를 꺾는 모습은 교육정책 신뢰를 더욱 떨어뜨린다"며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뀔 때마다 그 혼란을 감당하는 것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라고 썼다.

이밖에도 조선일보 <대통령 한마디에… 黨政 돌연 "대입 정시 확대">, 중앙일보 <"정시 확대" 대통령 한마디에 여당 내 "정시 50%">, 한국일보 <文대통령 "정시확대" 한마디에 새판 짜는 입시>, 서울신문 <'정시 30%룰' 또 뒤집나…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입 근간 흔들> 등 주요 언론에서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반면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정시 비중 확대 발언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나온 것으로 이른바 '당·정·청 엇박자'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22일 MBC '뉴스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문제에 관한 대통령의 뜻은 지난 4개월 동안 '이상론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실천해라'라는 것이었다"며 정부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김 정책실장은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입시제도 같은 것이 우리나라 300개 대학에 획일적으로,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방식으로 간다면 또 실패할 것"이라며 "특히 학종이 과도하게 높은 수도권 일부 대학에 대해서 그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 쪽으로 잡고 있다. 이런 노력은 이미 당정청 간에 협의가 충분히 진행되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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