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네 번째 시정연설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절감했다며 사회 전반에 걸쳐 '공정'의 가치를 새롭게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재차 강조하며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당부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손으로 엑스(X) 표시를 하거나 대통령 연설 도중 야유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들었다. '공정'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며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 국민의 요구를 깊이 받들어 '공정'을 위한 '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국민의 요구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면서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자는 것이었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공정'에 대한 정부의 눈높이가 국민의 눈높이보다 낮았던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공정'이 바탕이 되어야 '혁신'도 있고, '포용'도 있고, '평화'도 있을 수 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과 관련해 "어떠한 권력기관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 없다. 검찰이 더 이상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고 재차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최근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국민의 뜻이 하나로 수렴하는 부분은 검찰개혁이 시급하다는 점"이라며 "엄정하면서도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위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들뿐 아니라 대다수 검사들도 바라마지 않는 검찰의 모습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정부가 할 수 있는 검찰개혁방안은 이미 국민께 보고드렸다"며 국회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 검찰개혁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특히 한국당과 일부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필요성에 대해 이견도 있지만, 검찰 내부의 비리에 대해 지난날처럼 검찰이 스스로 엄정한 문책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특수 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특별사정 기구로서도 의미가 매우 크다"며 "권력형 비리에 대한 엄정한 사정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국정농단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공수처법'은 우리 정부부터 시작해서 고위공직자들을 더 긴장시키고, 보다 청렴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 20대 국회에 대해선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재가동과 여야 정당대표 회동 활성화 등 '협치'를 복원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 입법 없이는 민생 정책들이 국민의 삶 속으로 스며들 수 없다"며 "특히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얽힌 국정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여야 국정상설협의체'를 약속대로 가동하고 여야 정당대표들과 회동도 활성화하여 협치를 복원하고 20대 국회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이어 문 대통령은 "정치는 항상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믿는다. 저 자신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 스스로 성찰하겠다"며 "제 때에 맞는 판단을 위해 함께 의논하고 협력해야 한다. 더 많이, 더 자주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회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해 '소통'과 '협치'에 방점을 찍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전후로 불거진 사회·정치적 갈등에 책임감을 느낀 문 대통령이 향후 협치에 더 힘을 쏟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시종일관 야유를 보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 관련 법안의 조속 처리와 공수처법 설치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손으로 'X'표시를 그리며 항의했고, 연설을 마친 문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자 뒤돌아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는 가운데 공수처 발언이 나오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손으로 엑스자를 그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며 재정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 총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9.3% 늘어난 513조 5천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일각에서는 '슈퍼예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분도 계신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재정과 경제력은 더 많은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고, 매우 건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예산안대로 해도 내년도 국가채무비율은 GDP대비 40%를 넘지 않아 OECD 평균 110%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으로, 재정건전성 면에서 최상위 수준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저상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히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재정이 앞장서야 한다"며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하여 대외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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