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인사평가에서 사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부서의 직원, 막내급 직원 등이 마구잡이식으로 최하등급(R등급)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 서울 여의도 MBC사옥 ⓒ미디어스
1월 말 MBC는 하반기 개인평가에서 '조직 발전 저해 인력'에 해당하는 R등급 인원을 부서별로 강제할당한 바 있다. 전체 사원의 5%인 70여명에 대해 반드시 R등급을 부여하라는 것이다. R등급을 받으면 재교육을 받아야 하며, 3회 이상이면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다.

이에 대해 MBC노동조합은 "만약 회사가 R등급을 주고자 한다면 대다수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분명한 평가 원칙과 기준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그 어떤 사전 조치도 없이 70여명을 쥐어 짜낸다는 어처구니없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며 "R등급 평가결과를 축적해 구조조정과 연봉제의 밑그림을 그리려는 게 사측의 궁극적인 의도"라고 지적했었다.

14일 MBC노조가 특보를 통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평가기준이 모호하다"는 노조의 우려대로 사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부서 직원, 막내급 직원 등이 마구잡이식으로 R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입사 직후 잇따라 특종을 터뜨려 능력을 인정받았던 보도국 막내 사원이 '리포트 숫자가 저조하다'는 이유로 R등급을 받았다. 드라마국에서도 막내급 사원들이 R등급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사측 간부들은 (R등급 부여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막내 사원이니 한번 희생해 달라"고 밝혔다는 전언이다.

또, 지난해 사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부서의 직원 4명 가운데 3명이 R등급을 받았다. "누가 봐도 보복성"이란 지적이다.

출장을 다녀오다 다리를 다쳐 3주간 깁스를 한 탓에 인터넷 모니터 촬영과 실내인터뷰를 전담하는 등 사무실 근무를 한 영상취재부 직원도 R등급을 받아 "MBC에서는 일을 할 때 반드시 몸부터 사려라. 사고를 당하면 R등급"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제할당된 70여명을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R등급이 부여되자, 이를 보다 못한 선배 사원들이 "차라리 내가 R등급을 받겠다"고 자처해, R등급을 받기도 했다.

강제할당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몇몇 사측 간부들은 "강제할당이 부당하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러니 자네가 인사위원회에 가서 경영진을 설득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보직국장은 "평가가 필요하다 해도 이런 방식은 조직안정성만 크게 해칠 뿐이다. 제도 시행방식에 문제가 많다"며 "너무 융통성이 없어 보직 간부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특보에서 MBC노조는 "구성원들로부터 그 어떤 신뢰도 받지 못하고 있는 김재철 사장이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불러들인 'R'때문에 MBC는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다"며 "구성원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MBC라는 공동운명체에 기댔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이럴 바엔 '나 하나 피해 안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퍼져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MBC노조는 최문순 사장 시절 'R등급 강제할당' 움직임이 있었을 당시 보도국 보직부장들이 전원 보직사퇴서를 쓰고, 사장을 찾아가 강제할당 계획을 철회시킨 사례를 공개하며 "이제는 보직 간부들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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