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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이득 때문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라는 공통분모 위해 한일 시민 손 잡아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8.09 09:12

[미디어스]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보는 심경은 그야말로 복잡하다. 국내 언론의 시각은 단순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어떻게든 일본을 이기자고 하거나 이렇게 되기 전에 정부가 뭐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논조이다. 지난 약 한달 간 언론의 태도는 이 구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인식은 모든 문제를 손익과 이해관계로 판단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 내의 ‘양심세력’은 일본을 이기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카드이다. 말하자면 ‘이이제이’인 것이다. 최근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자영업자들과 관광업계의 우려가 커지자 정부 여당 내에서도 아베 정권과 일본 시민을 구분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 세계관을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언론이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는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일본 아이치현 미술관에서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것에 항의하는 일본인들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으면 이런 세계관이 얼마나 편협하고 옹졸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소녀상 전시 중단에 대한 일본인들의 논리를 종합해보면 이런 얘기다. 첫째,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가 전체주의적 압력에 의해 훼손된 것이다. 둘째, 과거 일본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주변 국가들에 폐를 끼쳤다. 셋째, 표현의 자유를 되찾아 동아시아 국가 간의 평화를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본에서 '작은 평화의 소녀상을 확산하는 캠페인'을 주도하는 야마모토 미하기(여·64) 씨가 미니어처 평화의 소녀상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모습. (본인제공/연합뉴스)

사실 이런 논리는 지난 2015년 아베 정권이 안보법제를 밀어 붙일 당시에도 제기됐다. 안보법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명분으로 자위대의 해외 활동을 더 폭넓게 허용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자위대의 해외 파병은 과거부터 일본 정치의 주된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 평화헌법이라는 장애물을 피해야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안보법제 처리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논리는 소녀상 전시 중단에 대한 것과 거의 형식적으로 동일했다. 첫째, 아베 정권의 안보법제 처리는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둘째, 일본은 과거 이런 과정을 거쳐 전쟁이라는 결과에 도달했다. 셋째, 따라서 안보법제 처리에 반대하는 것으로 헌법을 지키고 평화를 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평화로 연결하는 논리적 징검다리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어떤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것에 쓰기보다는 나 자신의 이익 수호를 요구하는 일에 연결시키는 것에 익숙하다. 연일 ‘극일’을 말하면서 동시에 “아베 정권과 일본 시민을 구분하자”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기 전에 뭔가 외교적인 수를 냈어야 한다는 주장도 대개는 같은 세계관의 결과물이다.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문제를 바로잡고 제국주의가 만든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경제적 손해를 방지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외면하는 것은 국가의 외교적 행위는 의지의 관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내정치적 고려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정상 간에 신뢰를 쌓으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등의 주장은 그런 차원에서 나이브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주년을 축하한다며 내온 딸기 케이크를 먹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똑같이 일어났을 것이다.

일각에선 김대중 오부치 선언의 사례를 드는데 이것도 당시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당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내부 기반이 부실한 상태였다. 전임이자 같은 파벌 소속인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의 경제위기 책임론이 불거진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가토 고이치 등을 앞세운 비주류의 도전 역시 거셌기 때문이다. 이때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위기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식은 피자”로 불리거나 다른 세력의 의견에 늘 휘둘린다는 의미로 “진공 총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즉, 김대중 오부치 선언은 정상들이 결단을 내린 결과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내부 정치적 사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거다. 이렇게 보면 ‘아베 1강’이라는 지금 정권에서 한국 정부의 어떤 외교적 노력으로 김대중-오부치 선언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일본을 이기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를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 강력한 정치적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평화를 요구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아베 신조 정권은 물론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일본의 우익세력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든지 ’대한민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양국 시민들 간의 ’연대’가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과 일본 시민의 구분이나 외교적 해법의 모색은 바로 이런 인식의 위에서 될 때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마치 모든 국민이 원해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개 전쟁은 소수 기득권의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 활용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평화란 모든 국가가 전쟁을 하지 않고 국가의 이익에 국민을 종속시켜 착취하지 않으며 모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나라나 민족이든지 말이다. 언론이 경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고 할 게 아니라 평화를 말하고 촉구해야 할 때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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