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KT가 2014년 1월 황창규 회장 취임 후 14명의 정치권 인사, 군인, 경찰, 고위공무원 출신 등에게 고액의 급여를 주고 민원해결 등 로비 창구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KT는 이들에게 공식업무 없이 자문 명목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지급했다.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황창규 회장 취임 이후 위촉된 'KT 경영고문' 명단을 확보해 공개했다. 이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KT는 정치권 인사 6명, 퇴역장성 1명, 전직 지방경찰청장 등 퇴직 경찰 2명, 고위 공무원 출신 3명, 업계 인사 2명을 '경영고문'으로 위촉했다.

▲황창규 KT 회장. (연합뉴스)

이들은 KT 퇴직임원이 맡는 고문과는 다른 외부 인사로 그동안 자문역, 연구위원, 연구조사원 등 다양한 명칭으로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KT는 자문료 명목의 보수를 매월 지급했는데, 이들에게 지급된 자문료 총액이 약 2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친박 실세로 손꼽히는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의 측근이 3명이다. 이들은 홍 의원의 정책특보, 재보궐선거 선대본부장, 비서관 등을 지냈다. 위촉 당시 홍 의원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방위) 위원장이었다. 특히 2016년 8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KT 경영고문으로 활동한 남 모 씨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18대 대선 박근혜 캠프 공보팀장을 지내기도 했다.

17대 국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을 지낸 박성범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15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매월 517만 원을 받고 KT 경영고문으로 활동했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활동한 이 모 씨는 경기도지사 경제정책특보 경력을 발판으로 KT에 영입됐다. 정치권 출신 고문들은 매달 약 500~800만 원의 자문료를 받았다.

군, 공무원 출신 경영고문들도 있다. 이철희 의원은 이들이 정부 사업 수주를 도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지난 2016년 KT가 수주한 '국방 광대역 통합망 사업' 입찰 제안서에는 경영고문 남 모 씨가 등장한다. 남 씨는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신참모부장, 육군정보통신학교장 등 군 통신 분야 주요 보직을 거친 예비역 소장이다. 국방부의 사업 심사위원장은 남 씨가 거쳐간 지휘통신참모부 간부였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KT가 남 씨를 내세워 750억 짜리 사업을 수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KT와 직접적 업무관련성이 있는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국민안전처, 행정안전부 고위 공무원 출신들도 경영고문에 위촉됐다. 이들은 2015년 '긴급 신고전화 통합체계 구축 사업'을 비롯한정부 사업 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로 분류된다. 경찰 출신 고문들은 사정당국, 수사당국 동향을 파악하고 리스크 관리가 가능한 IO(외근정보관) 등 '정보통'으로 골랐다.

KT는 이철희 의원의 줄기찬 요구에도 경영고문 활동 내역을 제시하지 못했다. KT 직원들은 물론 임원들조차 이들의 신원을 몰랐다. 공식 업무가 없거나 로비가 주업무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경영고문이 집중적으로 위촉된 2015년 전후는 유료방송 합산규제법, SKB와 CJ헬로비전 합병, 황창규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등 민감한 현안이 많았던 시기다.

이철희 의원은 "정치권 줄대기를 위해 막대한 급여를 자의적으로 지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점을 고려하면 황창규 회장은 업무상 배임 등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로비의 대가로 정치권 인사를 '가장 취업'시켜 유·무형의 이익을 제공하면 제3자 뇌물교부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철희 의원은 "황창규 회장이 회삿돈으로 정치권 줄대기와 로비에 나선 걸로 보이기 때문에 엄정한 수사를 통해 전모를 밝히고 응분의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2017년 말 시작된 경찰 수사가 1년 넘게 지지부진한 것도 황 회장이 임명한 경영고문들의 로비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경찰이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수사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차제에 검찰이 나서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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