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가 좋아졌다는 말들이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번지고 있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김비서로 불리던 KBS가 ‘정상화’라는 말없이도 정상을 되찾고 있다. 지난 세월, 얼마 되지 않는 수신료가 아까워 매달 한 번은 욕을 해야 했던 KBS에 후원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 수신료의 가치를 빛낸 프로그램 하나를 발견했다. 욕받이였던 수신료의 화려한 변신이었다.

<거리의 만찬>은 방송인 박미선, 정의당 대표 이정미 의원 그리고 요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김지윤 박사 등 3인이 MC가 되어 토크쇼 형식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스튜디오에서 잘 차려 입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으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란 점이다. 그들이 찾은 곳은 최근 대법원의 사법거래의 피해자로 알려진 KTX 승무원들이었다.

KBS 1TV <거리의 만찬> ‘그녀들은 용감했다’ 편

여성 MC들만으로 꾸려졌고, 현장으로 찾아간다는 등의 형식만 다른 것이 아니라 내용은 더 달랐다. 방송국으로 오라가 아니라 방송국이 ‘찾아가는’ 토크쇼였다. MC라고 해서 이야기를 정리하거나 혹은 뭔가를 말해주려는 오만함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울지 않는데 눈물이 자주 나왔다.

KTX 승무원 문제는 노동 문제인 동시에 여성 문제이며 최근 밝혀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거래의 희생양이 된 정치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치, 노동 심지어 여성운동도 이들을 특별히 지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토록 복잡한 문제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부끄러움을 강제한다. 오래 투쟁한다 싶었지 자세히는 몰랐는데, 그들의 투쟁이 벌써 13년이라고 했다.

시사를 다루는 토크쇼들의 흔한 문제는 관찰자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뒤로 몸을 빼거나 아예 도망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있다. <썰전>이 각광받았던 것은 패널 유시민 작가가 스스로 “어용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임했던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로 정치를 해석하고, 또 설득했다. 그 일인칭의 어법은 힘이 강했다.

KBS 1TV <거리의 만찬> ‘그녀들은 용감했다’ 편

<거리의 만찬>은 그렇게 일인칭으로 KTX 승무원들과 함께했다. 거리의 만찬이 그런 토크쇼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했거나 그럴 희망을 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큐 같기도 하고 르포 같기도 한 독특한 포맷 속에 감성을 잔뜩 집어넣은 것은, 오히려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여느 시사 토크쇼보다 훨씬 더 강한 설득의 힘을 보였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 여린 몸으로 하지 않은 투쟁이 없다. 그러나 그들 투쟁이 정말 대단한 것은 13년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고,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은 낙관이다. 그들은 참 슬펐는데, 해도 되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가련했는데 왠지 멋졌다. 위대해 보였다. 사회의 권력이 잘난 척 껄껄 대지만 그들의 여린 13년 투쟁에는 허세로 보일 뿐이다.

그들은 13년을 쉼 없이 싸워왔는데 사실 우리는 그들을 잘 모른다. 기껏해야 “그만 좀 하지...”란 말만 툭 뱉고 말뿐이었다. 그것이 비록 그들이 아니라 철도공사를 향하고, 정부에게 한 말일지라도 그 냉소는 어차피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다.

KBS 1TV <거리의 만찬> ‘그녀들은 용감했다’ 편

파업 초기 치열했던 3년, 군대생활과 같았다고 말하는 그들의 무기는 한쪽엔 샴푸·린스, 다른 쪽엔 스킨과 로션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이런 투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는 것이고,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13년의 세월이 흘러 그들은 이제 엄마가 되었고, 생활을 위해서 다른 직장도 다닌다. 누군가는 천막농성을 지키기 위해 KTX를 타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기도 한다. 그러는 그들 모두는 내일이라도 복직이 되기를 기다린다.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버린 적 없는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13년의 투쟁, 이제는 모두 웃을 수 있는 결말을 희망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거리의 만찬>이 고정 프로그램도 아니고 파일럿도 아닌, 특집 2부작이 고작이라는 사실이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 결론이 아니라 단지 들어주고자 하는 감성적 접근을 가능케 한 멋진 프로그램이 다음 주 한 번 더 보면 끝이라는 점이다. 시사든 예능이든 거기서 거기인 방송가에서 이처럼 독특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한 번으로 마친다면 아이디어의 낭비이다. 고정 프로그램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세 명의 MC에 현직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현역 정치인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방송에 쌓은 이미지가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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