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그나마 나은 MBC, 서서히 연성화?

MBC의 시사 보도프로그램은 다른 방송사와 비교했을 때 그나마 낫다. 4대강, 무상급식, 세종시 논란, 사법개혁 논란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 등을 다뤘다는 점에서 ‘소재의 연성화’ ‘핵심의제 회피’ 비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PD수첩>은 3사 가운데 유일하게 4대강 사업을 다뤘으며, <후플러스>에서는 △효성그룹 △삼성화재 특수조사팀 등 재벌 기업과 관련된 의혹을 비교적 소상히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시사매거진 2580>의 경우, △축구 국가대표팀 필승전략 △UFO △외국인 배우 △신입사원 연수과정 △해병대 행군 등을 다뤄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에 대한 고발과 시사 현안에 대한 탐사보도’라는 2580의 슬로건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 2009년 12월 1일 방영된 MBC < PD수첩> '4대강과 민생예산'편.
MBC의 한 PD는 “시사 보도프로그램이 자체적으로 연성화 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촛불 정국 이후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차가 된 시점에서 봤을 때, 언론에서 문제 제기 한 것에 대한 후속 보도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수사 등의 외부환경에 의해 (언론인 스스로) 위축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과거에 비해 취재, 제작 과정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며 “제작진이 극복한다 하더라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겨내는 것이 제작진의 몫”이라고 말했다.

다른 방송사의 시사 보도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다른 방송사의 심층취재, 새로운 이슈 제기 등이 어떻게 보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건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최근에는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보면 ‘주목을 끈다’ ‘자극을 준다’는 느낌이 과거보다는 약해지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다른 PD도 “특정 시기만 놓고 프로그램을 보면 연성화 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완전히 연성화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 전 단계로 들어선 게 아닌가 싶다”며 “과거처럼 용감하게 보도하지는 않고 보도 시기와 강도 조절 등은 있는 것 같지만 (권력 등에)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 무뎌진 <돌발영상>, ‘태진아 일본 정복기’는 뭥미?

한 때, 언론이 다루지 않은 것들을 영상으로 새롭게 구성, 풍자와 유머, 웃음을 더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YTN <돌발영상>도 변했다. 돌발영상의 자막, 음악 등 표면적인 ‘형식’은 그대로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경찰, 검찰 등 권력의 핵심을 향하던 돌발영상 특유의 ‘날카로움’이 사라졌다.

▲ 2009년 6월25일 YTN <돌발영상>‘말 떨어지기 무섭게’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 정치인, 등 핵심 관계자들이 여전히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의 발언을 나열하고,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가수 태진아 일본 정복기와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각오, 월드컵을 앞둔 축구 국가대표팀의 각오 등도 돌발영상의 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존 돌발영상에서는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었던 주제다.

방송 직후마다 뜨거웠던 시청자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YTN 내부 구성원들도 지난해, 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요즘 돌발영상 정말 못 봐주겠다” “돌발영상, 이건 정말 아니다” “돌발영상 폐지하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아예 비판의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돌발영상이 무뎌지게 된 것은 제작진 교체와 무관하지 않다. YTN은 지난해 8월10일 당시 임장혁 팀장을 쌍용자동차 편과 관련해 ‘편향됐다’는 이유를 들어 경영기획실로 대기발령했다. 이후 논란이 일자 8월31일 대기발령을 취소하고 사회부로 복귀시켰다. 이런 가운데 돌발영상 제작진 전원이 교체됐다. 결국 정권에 부담스러운 내용을 불편해 하던 경영진이 제작진을 교체했고, 제작진 교체가 돌발영상 연성화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박희천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솔직하게 기대를 이미 저버렸으니까 내부 구성원들도 오히려 안 볼 정도고, 나오더라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과거 날카롭던 해학과 풍자를 느낄 수 없는 등 돌발영상의 특성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망가졌나’ 할 정도”라고 말했다.

◇ “바보된 시사프로, 시민까지 바보로”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이 같은 시사 보도프로그램의 변화에는 ‘정부의 탄압’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조승호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PD수첩> 제작진 기소를 비롯해 정부의 언론 정책이 큰 영향을 줬다”며 “(제작진 기소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형사처벌이 목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모든 기자·PD가 큰 압박을 느꼈다. 민감한 보도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보수단체를 통한 고소, 고발 등으로 언론인들이 위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최근 시사프로가 민감한 현안은 피해가고 시사적이지 않은 이슈를 다루는 것은 PD수첩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민감한 현안을 다루면서 제작자나 방송사가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며 “(비판성 시사 프로그램이었던) KBS 시사투나잇 폐지 등의 사례를 보면서 제작진들이 다룰 수 있는 소재가 제한되고, 방송사들은 스스로 검열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의견 설정에 도움을 주는 시사프로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기호 언론노조 KBS본부 중앙위원도 “(시사프로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써) 시민들로 하여금 지금의 상황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해, (시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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