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시사 보도프로그램이 수상하다. △특보 출신(KBS·YTN) 또는 측근(MBC)을 사장으로 내려 보내기 △정부 비판한 프로그램에 민·형사소송 남발하기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극심하면 ‘민영화’로 윽박지르기 등 일관된 탄압으로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프로젝트’가 완료됐기 때문일까.

▲ KBS <추적 60분> 홈페이지 화면 캡처. ‘1983년 최초로 탐사보도 다큐를 시작했다. 그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밝히고 있는 KBS <추적60분>은 2월 10일, ‘엄마가 뿔났다! 요실금 소동’에서 요실금을 둘러싼 소동을 짚었다.
<미디어스>가 KBS, MBC, SBS 시사프로그램의 지난 1월 말부터 3월 말까지 아이템을 분석한 결과, 방송사들은 정권에 불리한 민감 현안은 다루지 않고 ‘UFO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점술의 세계’ 등 연성 아이템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는 <추적 60분> <KBS스페셜> <취재파일 4321> <KBS10>, MBC는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후플러스>, SBS는 <뉴스추적> <SBS스페셜> <그것이 알고싶다>가 그 대상이다. 사회 문제에 대한 탁월한 풍자로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YTN <돌발영상>도 점검해보았다.

‘UFO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점술의 세계’ 등의 아이템이 재밌다고 느껴지시는가? 하지만 재미 뒤에는 현실 속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음험한 의도’가 자리잡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4대강, 세종시가 안 보인다!

지난 2달간 방송3사 시사프로그램의 첫번째 특징은 바로 ‘핵심 의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2달간 3사의 시사 프로가 보도한 것들은 ‘농협조합장’ ‘학교폭력’ ‘경마중독’(KBS), ‘아이폰’ ‘연예인 성매매’(MBC), ‘인터넷 뱅킹’ ‘10대 아르바이트’ ‘아파트 관리비’ (SBS) 등이다.

모두 중요한 이슈이긴 하나, 정작 방송사들은 그보다 더 중요한 핵심의제에 대해서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다. 4대강, 세종시 문제가 대표적이다.

▲ ‘도시의 탄생’ 편(2월7일)
3월 8일 천주교 사제들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하고, 이후 불교 조계종도 4대강을 반대하고 나서는 등 4대강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중요 사회 의제를 심층적으로 파헤칠 수 있는 시사프로그램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4대강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

이에 대해 홍기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기획제작·교양제작국 중앙위원은 “KBS 시사프로가 사회의 핵심 의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이병순 사장 시절에는 비판적 아이템을 비켜가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반면, 김인규 사장은 현 정권에 편향적인 내용을 적극적으로 시키고 있다”며 “오히려 이병순 사장 시절이 상대적으로 더 나았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근 2달 사이 KBS에서는 <열린음악회>의 원전수주 홍보, 한나라당 인사들의 교양·연예프로 잇단 출연 등의 문제가 불거져 ‘정권 홍보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시사프로그램 중 하나인 <KBS스페셜> ‘도시의 탄생’ 편(2월7일)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교묘하게 지지한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조승호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4대강 같은 경우, <PD수첩> 외에는 전혀 다룬 데가 없다”며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공판의 경우에도,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확인된 팩트, 검찰의 기소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 등에 대해서는 짚어줘야 하는데 제대로 못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정식 SBS노조 공정방송실천위원장도 “4대강과 세종시처럼 찬반이 명확하게 갈리는 문제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심층적으로 다루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도 “천주교 선언이 나오는 등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거세게 이어지는데 이에 대한 관심이 소홀한 것 같다. 4대강이나 세종시 등에 대한 방송의 지속적 감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위원장은 4대강과 관련해 “만약 박수택 환경전문기자가 있었다면 보도나 시사프로그램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을 것”이라며 “후임기자가 환경문제를 맡긴 하지만 관심도, 심층성 면에서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 시사프로그램에서 ‘요실금, UFO, 점술의 세계’를?

두번째 특징은 ‘소재의 연성화’다. ‘탐사 기획물을 지향’하고, ‘성역없는 비판과 고발’을 하겠다는 시사프로그램에서 중년여성의 요실금, UFO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숲 체험 등이 등장하고 있다.

▲ 2009년 1월24일 MBC <시사매거진 2580> 화면 캡처
‘1983년 최초로 탐사보도 다큐를 시작했다. 그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밝히고 있는 KBS <추적60분>은 2월 10일, ‘엄마가 뿔났다! 요실금 소동’에서 요실금을 둘러싼 소동을 짚었다.

기자들이 제작하는 시사프로그램인 <KBS 취재파일 4321>은 ‘숲 체험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3월 14일), ‘영정사진 찍는 날’(3월 7일), ‘발을 통해 사람들의 삶 들여다보기’(2월 21일), ‘점술의 세계’(2월 7일), ‘UFO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1월24일)을 보도했다.

‘성역없는 비판과 고발을 통해 밝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겠다’는 <취재파일 4321>의 기획의도 가운데는 ‘시대변화의 흐름과 함께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전달하겠다’는 대목이 있다. 이 아이템들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있겠으나, <취재파일 4321>이 과연 ‘성역없는 비판과 고발’이라는 의도에는 충실한 보도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시사프로그램에서 UFO가 등장하는 사례는 KBS만이 아니다.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에 대한 고발과 시사 현안에 대한 탐사보도’를 지향하는 MBC <시사매거진2580>도 1월 24일 ‘내가 본 UFO’라는 제목으로 UFO문제를 다뤘다. ‘PD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화두’라는 문구를 내건 <SBS스페셜>은 ‘산에서 암을 이긴 사람들’(3월7일) ‘방랑식객’(2월7일) ‘영동선’(1월31일)을 다뤘다.

홍기호 언론노조 KBS본부 중앙위원은 아이템 연성화와 관련해 “내부 PD들도 많이 느끼고 있는 문제다. 중요 아이템을 발제해도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연성 아이템이) 시사 프로의 소재 자체가 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개의 연성 아이템들은 당장 해답을 찾아야 하는 시급한 현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 프로의 소재로) 적절하지는 않다”며 “참여정부 때 시사프로에서 그런 연성 아이템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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