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근혜 대표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사퇴를 거론하며 “국회라는 곳이 국가의 안위를 다루는 곳인데,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있고 국민들도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박 대표가 말한 국가관의 의미는 ‘색깔론’ 즉 좌익 이념 논쟁인데, 다름 아닌 박근혜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말로 과거 남로당 출신으로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 내용은 오마이뉴스 “좌익혐의로 무기징역… 재심서 구사일생(2004.8.8)” 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1949년 2월 8일 구 통위부(미군정 당시 국방부에 해당하는 부서로, 현 위치는 서울 충무로 코리아헤럴드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과거에도 조중동으로 대표되어지는 수구언론에 칼럼을 쓴다는 이유 등으로 비판을 받았던 진보 인사의 수는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도 지금과 같은 논란이 있었으며 그 때 그 지식인의 편을 들어주는 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경우도 있었다. 내가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는 예가 조선일보 창립 기념 행사에 노회찬이 참석했던 건데 그 때 노회찬은 그야말로 융단폭격 수준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 때 지금의 종편 출연 연예인이나 김연아처럼 노회찬을 옹호해 주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물론 정치인 혹은 지식인과 연예인 혹은 스포츠 스타를 동일한 잣대 위에 놓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연예인 혹은 스포츠 스타를 무조건적인 ‘예외’로
‘용가리 통뼈 뉴스’. 트위터에서는 상당히 알려져 있지만 아마 트위터를 이용하지 않는 이들에겐 다소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돌발영상을 만들었던 ytn 해직 언론인 ‘노종면 pd'가 트위터에서 제공하는 뉴스 서비스다. 그 날 나온 다양한 기사들 중 뉴스 가치가 있지만 주류 언론이 외면(?)한 것들을 추려낸 후, 여기에 간단한 해설을 달아서 제공하는 일종의 ’트위터 뉴스 서비스‘라고 보면 된다.(@YoTonews)7월 20일 현재 1만 2천 8백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을 만큼 매우 호응이 좋은데, 대개 스타 트위터러에 팔로워가 몰리는 경향에 비춰 볼 때 ‘사람’이 아닌 ‘뉴스 서비스’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우고 이 정도의 팔로워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언론이 소셜테이너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그들의 스타성을 ‘활용’하여 최대한 클릭수를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봤자 ‘연예인’에 불과하니 ‘쇼’ 이상의 무언가는 하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를 늘어놓는 일이다. 당연히 그 둘 어디에서도 소셜테이너가 목 놓아 외치는 무언가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김여진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울먹이며 외치는 한진 중공업에 대한 이야기, 고공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진숙님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정황을 소개하기 위한 곁가지일 뿐 언론이 주목하는 건 그저 그녀가 ‘배우’라는 점이다.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진보 언론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진숙님이 이토록 오랫동안 크레인 위에 올라가
PD수첩 PD 두 명이 비제작 부서로 발령이 났다. 어쩌다 보니 발령 난 두 분 모두 약간의 안면이 있는데 이우환 PD는 언론노조 사무총장 시절 만난 적이 있고, 한학수 PD는 얼마 전 MBC에서 언론관련 토론회에서 만났었다. 먼저 이우환 PD는 미디어법 관련 언론노조 집회가 한창일 때 관련 UCC를 제작을 총괄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제작에 참여했는데 자막 하나 컷 하나에도 몇 번의 수정을 요구하며 나를 괴롭(?)혔다. 물론 한참 선배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작을 나에게 맡긴다고 했으면 그냥 좀 둘 것이지 어찌나 시시콜콜 주문을 하든지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주문사항을 쉽게 거절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유는 주문의 이유가 충분히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의견(취향)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대개의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 해결책은 항상 내부에 있다. 문제는 쥐를 괴롭히는 고양이지 쥐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건 쥐다. 억울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어제 국회에서 여당은 일방적으로 예산안 및 각종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야당들은 온몸을 던져 막아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맞다. 문제는 날치기를 한 여당에 있지만 그 날치기를 막아야 할 이들은 다름 아닌 야당들이다. 그러니 겉으로는 여당의 날치기에 대해서만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무능한 야당에 대해 그만큼 실망할 수 밖에 없다. 변명 거리는 많다. 의석수가 너무 적다는 점을 비롯하여 다양한 한계 조건들은 야당들이 제대로 된 역
트위터에 DM이 왔다. 이번 주 수요일(10월 6일) YTN 언론인이 해직된 지 2년을 맞아 간단한 일일 호프와 바자회를 진행한다는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를 보낸 이는 다름 아닌 YTN 해직 언론인 정유신 기자다. 그와 나는 대학 동기다. 그나 나나 대학생활을 참 호기롭게(?) 보냈다. 열심히 연애하고 열심히 놀았다. 몇 번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정기자는 대학 방송반 아나운서이자 프로듀서였는데 학교 길을 오를 때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꽤 미끄러운(?) 발음으로 팝을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고 부드러웠다. 그랬던 그가 YTN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었고 얼마 지나 돌발영상을 제작하게 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사실 그다지 자주
최근 김규항씨와 진중권씨의 논쟁을 보며, 그리고 그 논쟁에 대한 또 다른 논쟁을 보며 내가 든 생각은 엉뚱하게도 ‘대중성’에 대한 나의 ‘강박’이었다. 김규항씨가 펼치는 진중권씨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진중권씨의 반박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우리 사회가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걸 잘 알기에, 무엇보다 그 둘 중 누가 더 맛깔스러운 말로 상대를 제압하는지를 숨죽여 지켜보기엔 우리 사회가 그리 한가하지 않기에 논쟁 그 자체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진 못했지만 논쟁 가운데에 김규항씨가 내뱉은 ‘대중성에 대한 강박’이라는 말은 분명 내 시선을 끌었다. 마이너리티에 있어 본 사람은 한번 쯤 경험하겠지만, 아니 한번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쌓아봤음이 확실한 것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들로 기사들이 도배가 되고 있다. 급기야 PD 수첩의 4대강 의혹을 다룬 편이 불방이 되자 기사들은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성토 일색이다. 하지만 이처럼 정권 비판적 기사들이 넘쳐 남에도 불구하고 기사 안엔 단 한 줄도 '민주 진보 대연합'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도 없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다. 인사 청문회와 PD수첩 4대강 편 불방이 도대체 민주 진보 대연합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이다. 맞다. 이게 현실이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주 진보 대연합'과는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 말은 쉽게 얘기해서 '민주 진보 대연합'은 현 정권을 비판하는 '주체'도 되지 못하고, 현 정권 이후의 '대안
누군가 나에게 의 가장 큰 성공요인을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계몽적 접근 방식’을 탈피한 것이라 답한다. 그리고 그건 그저 뒤돌아보니 그런 것 같다는 ‘총평’이 아니라, ‘1초’편, 그러니까 지식채널e의 첫 번째 편을 만들 때 아주 구체적인 수준에서 프로그램의 주요 컨셉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즉 1초 편 마지막 문장은 방송 프로그램이 갖는 계몽성과, 그러한 계몽적 방송 프로그램이 한 때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받았던 계몽 시대와의 단절을 의미 한다. 지식채널e는 그렇게 계몽의 맨 끝자락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지식채널e에는 두 가지 슬로건이 있다. 하나는 ‘생각하는 힘’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사실 이 두 슬로건 중 ‘생각하는 힘’이란 것이 훨씬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이 어디 하나둘이겠냐만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어부와, 이름조차 발음하기 어려운 외국의 어부가, 모두가 다 아는 이름의 누군가를 구하겠다고 바다에 나가서 실종되고 심지어는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잊어버린다면 장담하건데 우리에겐 희망은 없다, 희망은 이미 죽었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한 여자 연예인이 밤에 몰래 유가족을 찾아가 손을 잡고 같이 울었다고 하는 기사를 봤다. 난 그녀가 광우병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지 따위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광우병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해하든 미국산 소고기를 잘 사먹지 않기에 그녀의 발언을 꼬투리 잡는 것 자체가 공허하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주목하는 건 그녀가 유가족과 함께 한 야
요즘 핫 이슈는 단연 아이폰과 트위터다. 감성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애플의 아이폰과,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넘어서 진화하는 소셜 네트워킹을 보여주는 트위터는 어느새 몰라서는 안될 듯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다르게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그렇게 쏟아내어진 수많은 기사는 다시 아이폰과 트위터로 확대 재생산된다. 그래서인지 선관위에서 트위터를 규제하겠다고 한다. 파급력이 워낙 크니 선거에 미칠 영향이 우려스럽다는 생각에서일 거다. 하지만 아이폰이든 트위터든 그건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 뒤엔 '사람'이 있다. 아이폰을 통해, 트위터를 통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 그 말을 듣고 싶은 사람, 그처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될 때만 해도 그가 '무상급식'을 들고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니 그가 들고 나온 무상급식을 한나라당 교육위원들이 그토록 강력하게 반대할 줄도 몰랐고, 그 반대가 그토록 크게 이슈화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급기야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은 최대 이슈가 돼 버렸다. 어찌 보면 참으로 초라한(?) 이슈인 무상급식이 어째서 이렇게 '스타'로 급부상한 것일까? 사실 한나라당측에서 소위 '좌파' 혹은 '진보적'인 정책들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 것이 무상급식만은 아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대에 국민들은 생각보다 '무신경'했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달랐다. 처음엔 그저 인터넷 매체에서 기사화를 했던 것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메이저 언론에서조차 언급하는 수준으로 확산되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MBC에 지원을 했었다. 물론 KBS에도 지원을 했었고 당연히 EBS에도 지원을 했었지만(SBS는 안타깝게도 나이가 걸려 지원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MBC에 가장 먼저 원서를 냈었는데, 그만큼 방송사 PD 지망생에게 MBC는 지상파 방송국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송사였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그저 MBC의 프로그램들이 주는 매력에 '나도 한번 저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자연스레 지원 1순위에 MBC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제 와 뒤돌아보면 내가 PD를 꿈꾸게 된 것이 MBC에서 방송했던 프로그램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춘기 시절 봤던 는 공부 압박에 찌든 내게 청춘(?)으로서 숨통을 틔울 수
한 사람이 모르던 무언가를 알게 되고, 알게 된 무언가로 의심을 품고, 의심을 품은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이 뭘 모르는지 알게 되며, 그렇게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하다. 기껏해야 이제 뭘 모르는지, 그래서 뭘 알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 뿐이고, 그 때부터 ‘알아야’ 할 것들을 알기 위해 해야 할 노력들이 산더미처럼 앞에 놓여 있는 겨우 그런 수준 즉, ‘시작점’에 놓인 상태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앎에 이를 수밖에 없다. 폭풍과 같은 앎, 격정적인 앎, 한 번에 일깨워주는 앎이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위의 과정이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서히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던 ‘결과’에 불과할 뿐, 정말로
얼마 전 일선에 계시는 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의를 마치고 몇몇 선생님들과 말씀을 나누던 도중 낯익은,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많이 늙으신 남자 한 분이 인사를 건네시더군요. 누군지 기억나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는 찰나 갑자기 제 손을 꼭 잡으며 하시는 한마디.“네가 참 자랑스럽구나.”순간 그 남자분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 중 한 분이란 것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을 기억하시는 선생님과 달리 저는 선생님 성함은커녕 담당 과목도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렇게 멍해 있는 찰나 선생님은 조용히 강의실을 빠져나가셨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아니셨고, 제 기억엔 직접 수업을 들은 기억도 별로 없는데 저를 기억하셨던 거죠. 저는 그 순간 선생님에겐 자랑스러운 제자인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