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매체 환경이 변화하며 정치 양극화와 확증편향 심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범람하는 극단적 주장이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더욱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지난 6월 김정훈 CBS 기자가 <저널리즘 리얼리즘>을 출간했다. <저널리즘 리얼리즘>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 언론학개론을 지향하는 책이다. 김 기자는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기자라는 명함을 갖고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을 풀어냈다. 김 기자는 ‘언론과 분리될 수 없는 모두’에게 먼저 언론을 ‘이해’해보자고 제안한다.
지난 2일 서울 목동에서 <저널리즘 리얼리즘> 출간한 김정훈 기자를 만나 책을 쓰게 된 계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김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먼저 <저널리즘 리얼리즘> 출간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 이 사회와 세대에 대한 책을 함께 쓴 적이 있고, 이제 저널리즘에 대한 책을 냈는데 안에 제 얘기가 녹아 있거든요. 그래서 쓸 때 더 재미있겠다 싶었지만 ‘이렇게 써도 되나?’, ‘이렇게 말해도 되나?’라면서 더 고민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에세이적인 면도 있는 거 같아요?
“저널리즘에 대한 책이지만 교과서는 아니잖아요. 제가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저널리즘은 사실 이러하다’고 전달하고 싶었어요. 성격을 따지면 에세이죠.”
<저널리즘 리얼리즘>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사람들이 언론을 비판하죠. 또 언론이 욕먹을 짓도 했고요. 그런데 비판과 지적을 들어보면 우리 현실하고 동떨어진 얘기들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판이 더 효과를 가지려면 언론을 좀 더 잘 알면 좋겠다 싶었죠. 저도 언론에 있으면서 ‘왜 이런 사정을 몰라주지?’ 하는 답답함이 있었는데 그런 답답함을 풀어내 보고도 싶었습니다.”
제목의 의미는 뭔가요?
“리얼리즘 위에 서 있는 저널리즘이라는 의미도 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리얼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제목을 지어봤습니다.”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이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고 혁명을 하려고 기자가 됐다고 나와요. 아직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시대에 따라 혁명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또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혁명이 다를 것이고요. 그런데 만약 혁명이 예전처럼 무력투쟁을 통한 것만이 아니라 전에 없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그런 혁명은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자님이 생각하는 혁명은?
“혁명의 방향은 각자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는 교육 개혁을, 누군가는 권위주의 타파를, 누군가는 세대 문제나 젠더 문제 해결을 두고 혁명의 지점들을 생각합니다. 각자 마음속에 다양한 혁명의 숙제를 안고 있는데, 이것이 더 다채롭고 건강한 혁명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기자님이 초년병 시절 캡으로부터 노동자의 자녀라 좋다는 말을 들었다고 나와요. CBS라서 그런 반응이 나왔을까요?
“다른 곳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노동자의 자식이어서 참 좋다’라는 말은 그 선배 개인의 생각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CBS가 늘 그런 분위기였고, 그렇다 보니 소외된 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그것이 사실 기자정신이기도 할 것인데, 선배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줘 왔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기반이기 때문일까요?
“당연히 그 기독교적 정신 위에 우리가 서 있고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긍휼함이 우리 안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CBS의 저널리즘으로 나타나는 것이고요.”

기자님은 기자들이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는 걸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직접 취재해야 한다는 것이고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해요. 하지만 단톡방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있지 않나요?
“지금 저도 단체 채팅방에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취재의 근육을 만들어갈 때, 누구라도 받아볼 수 있는 정보 귀동냥 하지 말고 스스로 정보를 캐내고 탐문하고 확인하는 이런 훈련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적어도 기자로서 훈련 받아야 할 때만큼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님 초년병 시절과 지금은 환경이 다른데.
“제가 초년병 때는 카톡이라는 게 없었어요. 그때는 아예 타사 기자들하고 말도 섞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 살았고요. 기자들끼리 정보 교환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리고 제가 기자들을 가르칠 때 단체 채팅방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준 것입니다. 지금 교육을 시킨다면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죠. 다만, 정보 귀동냥보다 직접 탐문하고 직접 취재하고 직접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 돼야 함은 계속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떤 점이 다를까요?
“자꾸 떠도는 얘기들을 귀동냥하다 보면 인식이 매몰되는 우려가 있어요. 또 정보를 캐내고 누군가를 설득해서 확인받는 일들은 스킬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훈련을 좀 더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훈련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어떤 정보가 흘러나오는지 파악해서 그 정보 갖고 있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 묻고 마음을 열 때까지 두드리고 확인받은 뒤, 다른 곳에서 더블 체크해서 실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종합적인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는데요. 직접 그런 일들을 해봐야 ‘취재를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오랜 시간이 걸리는 훈련을 받아야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질문자 추첨함에 취재진 명함이 들어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07/313754_223258_1924.jpg)
기자는 평론하는 사람이 아닌 ‘질문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요. 기자란 직업의 본질을 규정한 것 같아요.
“어떤 사안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아요. 근데 생각해 보면, 새로운 것을 드러내는 일, 누군가 감추는 것을 꺼내놓는 일은 기자만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못하면 아무도 안 해요. 그렇다면 이 일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 기자의 사명에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해야 질문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정보 갖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내는 방법은 정말 다양해요. 그리고 사람은 제각기 다르잖아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직종을 만나가며 열심히 훈련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건 교과서에서 배우거나 어떤 선배 한 사람이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것이죠.”
기자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기본적으로는 신뢰가 전제돼야 해요. 누군가 어떤 말을 해줬는데 이후 피해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으면 더 이상 말을 해줄 수 없겠죠. 그런데 그 신뢰는 하루이틀 사이에 쌓을 수 없잖아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쌓은 신뢰, 수십 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보여준 신뢰가 결국 사람의 마음 여는 가장 큰 열쇠가 아닐까요?”
중요한 게 취재원과의 관계인데 기자님은 어떻게 하나요?
“이 역시 다양해요. 사람들이 다 다르니까요. 전제는 기자가 사람들을 고를 수는 없다는 것이고요. 나와 스타일이 달라도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친해져야 하는 게 기자잖아요. 그러자면 과묵한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면 그에 맞추고, 활발한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면 같이 놀 줄 알아야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은 책을 읽으며 신뢰를 쌓을 수도 있겠죠.
어떤 사람과 코드를 맞춘다는 게 이해관계에 따라 아부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길을 여는 것이지 않을까요. 제가 책에서는 주파수라고 표현했는데, 상대와 주파수를 맞춰야 그 사람이 나를 인식하고 얘기해줄 수 있거든요.”
처음 만났는데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방도 좋아한다고 하면 호감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사전에 준비해서 만나면 얘기할 거리가 생기고 좀 더 가까워지죠.
“맞아요. 그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고 관심사, 취향 등을 알아야 다가갈 수 있잖아요. 기자들은 그런 노력을 게속 해옵니다.”

세월호 이야기도 나오는데 세월호 참사는 한국 저널리즘을 논할 때 빠질 수 없을 것 같아요.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저널리즘은 나아졌을까요?
“세월호는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줬던 사건이죠. 그 계기를 통해 언론이 많이 반성하고 달라지려 노력했던 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기자들이 재난이나 참사를 취재할 때 예전처럼 경솔하게 하지 않으려 많이 노력하고 있고요. 다만 남들보다 빨리 전해야 한다는 속보 경쟁은 언론의 속성이기도 하고 일종의 강박이기도 합니다. 그 속보 경쟁에 따른 폐해가 아예 없느냐, 그렇진 않고요. 그 부분은 우리가 계속 경계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 혹은 정치인 비판하는 기자를 공격할 때 기레기란 말을 써요.
“책을 통해 확증편향에 대한 이해도 넓혀가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사로잡혀 그 기준에 맞으면 진실이고 맞지 않으면 진실이 아니라고 보는 틀이 강화되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자질이 아예 없는 기레기들도 있습니다만, 확증편향에 따른 기준으로 기자를 나눠 생각하는 시각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도 확증편향을 경계해야 하지만 독자, 시민들도 스스로 경계를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유튜브 영향이 큰 것 같거든요.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튜브를 끊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웃음). 농담입니다. 끊을 수는 없겠죠. 유튜브와 다른 SNS 플랫폼도 마찬가지인데 로그인하여 알고리즘에 따라 이용자의 기호와 취향, 이념적 성향을 반영해 콘텐츠를 제시하잖아요. 이를 전제로 깔고 스스로 경계하는 자세가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정보는 없을까, 이 정보와 상반되는 다른 내용이 혹시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체크해 봐야 하는데,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기는 하죠.”
![[연합뉴스TV 제공]](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07/313754_223255_830.jpg)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흰까마귀론과 음모론을 연결시킨 부분이 흥미롭던데 어떻게 이렇게 얘기하게 됐나요?
“한국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음모론들이 있었고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많이 병들었던 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여러 음모론이 더 판치는 토대가 되겠구나’ 하는 우려가 들더라고요. 앞으로도 사실 이 부분이 염려스럽습니다.
아마 칼 세이건이 했던 말 같은데요, ‘범상치 않은 주장에는 범상치 않은 근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거든요. 믿기 힘든 주장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근거들을 갖춰야 하고, 그런 근거 없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의미죠.”
작년에 민주당이 계엄에 대해 경고할 때 명확한 근거는 없지 않았나요? 그런데 결국 비상계엄이 현실화됐어요.
“그런데 시간을 돌린다면, 그 당시에 그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명확히 드러냈다면 좀 더 일찍 내란 사태를 막을 수도 있었겠죠. 무엇은 허무맹랑한 주장이고, 무엇은 아직 근거를 덜 갖춘 진실인지 쉽게 알 수는 없지만 범상치 않은 주장에는 범상치 않은 근거가 필요한 것은 맞다고 봅니다.”
출입처 관련 얘기도 나와요. 기자님은 다양한 출입처를 경험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출입처가 자주 바뀌면 전문성은 떨어지지 않을까요?
“기자가 전문성을 갖는 영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적 영역을 확보하더라도 초반에는 사안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거든요. 우리 사회 어떤 분야이든 마찬가지일 거예요. 법률, 의학, 부동산, 금융 등 어떤 한 분야만 알고서는 현실에서의 영향이나 효과를 설명하기엔 대단히 제한적이거든요. 그래서 종합적 식견은 갖추고 그 이후에 전문성을 겸비하면 정말 좋은 기자가 되겠다 싶습니다.”
이 책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책에서 여러 내용을 다루긴 했는데요. ‘내가 생각하는 바가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대개 맞다고 하면서도 상대방을 지적해요.
그런데 여러 인식의 편향 중 ‘맹점 편향’이 있습니다. 내가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맹점 편향이라고 하거든요. 우리 스스로 맹점 편향이 있는 건 아닌지, 이를 경계하면서 ‘기자도 기자답게, 독자도 독자답게’ 미디어와 저널리즘을 같이 살찌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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