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다시, 어김없이 그날이 돌아왔다. 올해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곳곳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중 하나가 언론이다. ‘전원 구조’ 오보를 비롯해 보도 참사라고 불릴 만한 사건들이 이어지며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오명을 얻었고, 언론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기자협회 등 5개 단체는 ‘재난보도준칙’을 마련했고 많은 언론사들은 ‘보도 참사’에 대한 반성문도 내놨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언론은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하고 더 나은 세상이 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자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탐사취재를 이어온 김성수 뉴스타파 기자를 9일 서울 충무로역 근처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최근 『세월호, 그날의 기록』의 개정판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출간하셨는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오신 좋은 필자들과 함께 2년 넘게 작업한 책입니다. 오랫동안 많은 공을 들인 책이어서 굉장히 뿌듯합니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출간까지 2년 걸렸다고 하셨는데, 새 책이 아닌 개정판으로 출간한 이유가 있을까요?
“세월호 7주기가 지났을 무렵 ‘진실의 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초기였는데, 세월호 진상규명이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뜻이 맞는 분들끼리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모임에 나가봤더니 이 필자분들(박상은‧이정일‧전치형‧조용환)이 계셨습니다. 처음엔 연속 세미나, 심포지엄, 토론회 같은 걸 기획해 보자는 의견이 오갔는데, 그런 일회성 행사로 뭔가를 바꾸긴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진실의 힘에서 2016년에 냈던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 1만 5천 부까지 찍고 절판된 상태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선체 인양 이전에 나온 책이라서 ‘침몰 원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제한적이었는데, 선조위(선체조사위원회)가 2017년부터 인양된 선체를 조사하고 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초판을 그대로 또 찍을 수가 없었죠. 그렇다고 침몰 원인 부분을 보강하자니 초판 필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였던 사람들은 그렇게 중요한 책이 아예 절판되게 그냥 두긴 아깝다고 생각을 모았고 그래서 직접 개정판을 써보자고 했던 겁니다.
초판과 비교하면, 선조위와 사참위가 잇달아 조사한 ‘침몰 원인’ 관련 조사기록들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2020년 검찰 세월호 특수단이 기소한 해경 지휘부 11명에 대한 수사와 재판 기록들이 추가됐습니다. 또 초판 출간 이후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굵직한 의혹과 음모론들이 어떻게 해소되었는지도 담았습니다.”

세월호 탐사취재를 꾸준히 이어오셔서 10주기가 더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어떠세요?
“매우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6·25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정도의 참사였고, 전 국민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계기가 됐지만 10년이 되도록 그게 안 된 거죠.
그런데 진상규명이, 이제는 ‘그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들이 모였다고 저는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여러 가지 이유로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걸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바꿔 나가야 하고 어떻게 해야 안전해지는가를 이미 수년 전부터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거기까지 발걸음도 못 떼고 있어요.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아쉽죠.”
그런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이유가 복합적이라 단순하게 설명해 드리기 어려운데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재난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로 대체해 온 점이 크다고 생각해요. 즉 그 참사가 벌어지는 데 직접적인 위법 행위를 한 사람들을 찾아서 처벌하면, 그 내용이 바로 진상규명이 된 걸로 이해됐던 거예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란 독특한 특성이 있었는데, 정보가 매우 불투명하고 권력기관들이 정치권력에 대해서 아주 순응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재난 참사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법’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조사하도록 했어요. 그러면 그 조사위원회는 수사와 조사의 차이를 먼저 정확히 인식해야 했습니다. 그게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수사와 조사의 차이, 설명 부탁드립니다.
“‘수사’는 위법 행위자를 기소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그러나 법으로 처벌할 수 없지만 분명히 참사의 원인이 된 요소를 찾고, 그 요소들이 어떤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참사로 이어졌는지 촘촘하게 정리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조사’예요.
어떤 재난 참사는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거기에 연관된 행위자 중에 법으로는 아무도 처벌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이 한 행위들이 묶여서 참사로 이어진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까 책임자 형사 처벌이 아무도 안 됐다고 해도 조사를 잘하면 진상이 규명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주 많은 사람을 형사 처벌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진상을 다 밝혔다고 할 수 없는 거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애초에 어떤 시스템이 잘못 짜여 있었다면 법으로 처벌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제도가 잘못돼 있었어도 법으로 처벌할 수 없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비극적으로 한꺼번에 묶여버리면 대형 재난 참사가 벌어집니다. 세월호는 그런 요소들이 대단히 많아요. 그런 부분에 집중하는 게 조사위원회가 할 일이고, 조사 내용을 잘 정리해서 보고서를 내서 국민이 읽게 해야 했는데요.
지금까지 세 번의 조사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경향을 보면 ‘우리가 조사한 내용으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지’라는 방향으로 쏠린 거예요. 책임자 찾아서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의 조사에 집중하다 보니 무리한 ‘의혹성’ 조사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즉 법으로는 처벌 안 되지만 참사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촘촘하게 찾아나가는 조사 작업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들이 엉망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국민들에게는 참사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알릴 수가 없게 된 거죠.”
기자님이 생각하는 참사의 진상은 뭔가요?
“지금 유가족분들은 10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이 안 됐다며 여러 가지 과제들에 관해서 이야기하세요. 일단 이 참사를 발생시킨 그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이지요. 그런데 참사 발생 후 정부 대응이나 기무사의 유가족들 사찰 등은 ‘사후의 이야기’로서-그것도 진상규명의 과제지만-참사를 부른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과는 구분돼야 합니다.
참사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이라고 하면 과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왜 침몰하게 됐는지는 선체조사위원회에서 거의 모든 조사가 끝났습니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이전부터 복원성이 너무나 취약한 상태로 오랫동안 점점 불안한 배가 되어 왔기 때문에, 그날이 아니어도 언젠가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배였죠. 그 이전에도 배가 기울어지고 하는 작은 사고들은 몇 번 있었어요. 이것이 조사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이지만 당시에 유가족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겁니다.

두 번째, 침몰했을 때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입니다. 구조를 진짜로 못한 거냐, 구조를 일부러 안 한 거냐는 식의 의혹까지 있었는데 그렇게 보일 만했죠. 당시 현장 영상을 보면, 배가 계속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승객들을 밖으로 탈출시키는 게 누가 봐도 맞는데 탈출 방송을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선박에서 사고가 나면 육상에서 119가 달려가는 것처럼 빨리 못 갑니다. 보통 2~3시간씩 걸려요. 그래서 해상에서 발생한 조난 사고는 가장 먼저 선원이 초동 조치해놓고 해경을 기다려야 해요. 그런데 세월호 같은 경우는 123정이라고 하는 100톤급 경비정이 근처에 있어서 한 30~40분 만에 도착한 거예요.
문제는 가면서 세월호와 교신을 안 했단 점이에요. 그리고 해경은 6천 톤급 대형 여객선이 기울어져 있을 때 승객을 어떻게 구조해야 하는지, 평상시에 그 훈련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현장에 달려갔을 때 뒤집힌 배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거나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둥둥 떠 있으면 가서 옆에서 건져 올리는 훈련이 해경에서 한 구조 훈련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123정은 300명이 탄 여객선이라고 하니까 현장에 도착하면 대부분이 구명조끼 입고 바다에 둥둥 떠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하고 간 거예요. 근데 현장에 갔더니 바다에 아무도 없으니 그때부터 당황했고, 갑판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구조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갑판에 먼저 나와 있던 사람들은 다 선원들이었죠.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구하다 보니 선원들부터 구했고, 헬기도 마찬가지로 비슷했어요.
지휘부에서 현장 상황을 보고받아요. 그래서 ‘배가 점점 기울어지고 있고 승객이 바다에 아무도 없습니다.’란 보고를 듣고도 자기네들 눈으로 직접 봐야 알겠다는 식으로, 현장 영상부터 빨리 찍어서 보내란 소리만 계속합니다. 현장에서 보고 하면 그걸 듣고 바로 지시를 내려야 하는데 정확한 보고와 지시 과정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거예요. 해경이라는 조직이 완전히 봉숭아학당이었던 거죠. 그렇게 해서 못 구한 것입니다. 지휘부부터 말단까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능하고 정말 조직적으로 무책임했던 거예요.”
‘전원 구조’ 오보도 있었는데 참사와 관련해 중요한 걸까요, 아니면 단지 언론 문제인가요?
“언론 문제라고 봅니다. 전원 구조 오보가 없었다고 해서 승객들을 더 많이 구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다만 그것이 참사 유가족들에게 미친 심리적인 영향이 너무 큰 거죠. 참사의 규모를 좌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10년 동안 세월호를 취재하며 보람도, 아쉬움도 있으실 것 같아요.
“제가 그래도 세월호 취재하면서 나름대로 역할을 했고 보람 있었다고 하면, 민간의 김지영 씨나 이런 쪽에서 나온 ‘음모론’에 대해서 더 반론할 수 없을 만큼 꼼꼼하게 검증 보도를 했단 점입니다. 나중에 사참위 같은 조직도 음모론적인 관점과 관련해 조사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중간조사 결과들에 대해 꼼꼼하게 반론 검증을 했고, 그래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산으로 가는 것에 대해 제가 조금은 막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일 보람이고요.
현장에서 아쉬웠던 점은 이 작업을 저 혼자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상황들이에요. 다른 매체나 기자들이 제 보도라도 보고 이런 관점으로 세월호 진상규명 과정을 취재했으면 훨씬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세월호 참사 때 ‘기레기’라는 멸칭이 등장했고, 한국 언론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난이 거셌어요. 1주기 당시 기자님은 언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때요?
“언론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어요. 세월호 참사 초기에 ‘기레기’라고 지목받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실 확인 안 하고 보도자료만 받아썼죠. KBS 같은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체육관 가서 연설하는 와중 유가족들이 항의하는 소리를 지르는데 그 부분 빼고서 박수 소리를 집어넣었잖아요. 권력 편향적인 보도는 물론 굉장히 비윤리적인 취재 행태들도 보였습니다.
5살짜리 권지윤 양에게 카메라 들이대고 친구 잃은 학생들에게도 마이크 들이대고, 그런 여러 가지 행태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핵심은 사실 확인을 제대로 안 한 받아쓰기 보도입니다. 근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10년의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유가족이나 시민단체 아니면 조사위원회의 특정 그룹들이 주는 정보자료 받아쓰기만 할 뿐, 그 자료를 꼼꼼하게 검증하는 취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그때와 달라진 점이 없어요.
다만 지금 취재 현장에서 참사 피해자나 유가족을 대할 때 비윤리적인 취재 행태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17년도 말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을 취재하러 가보니, 이미 그때도 기자들이 유가족 취재할 때 굉장히 조심하고 배려하면서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점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그런 부분은 달라졌죠.”

받아쓰기는 왜 아직도 안 고쳐질까요?
“출입처 중심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데다, 매일매일 속보를 쏟아내야 하는 데일리 시스템 환경에서는 그 부분을 본질적으로 고치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매체마다 데일리로, 그날그날의 스트레이트 속보를 보도하는 기능도 있지만 기획보도나 탐사 프로그램들도 섞여 있잖아요. MBC <스트레이트>나 <PD수첩> 등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은 그래도 장기 취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될 텐데, 그런 프로그램들마저 제대로 검증하고 내놓은 보도들이 10년 사이에 거의 없었다고 저는 보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언론단체들이 재난보도준칙 마련했는데 어떻게 평가하세요?
“없는 거보다는 낫죠. 그러나 이를테면 해경이 구조 매뉴얼이 없어서 구조 못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모든 매뉴얼이나 준칙 제정은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마치 해경이 훈련하는 것처럼, 평상시 취재 과정에서 늘 머리에 새기면서 작은 취재라도 그에 맞게끔 훈련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재난 참사 현장에서 그런 준칙은 지켜지지 않는 거죠. 핵심은 그것에 대한 실천 의지이고, 평상시에 작은 취재라도 그걸 준수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