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소형 칼럼] 굵은 장대비가 쉴새없이 창문을 두드려대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던 7월의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하다. 오늘은 흰 뭉개구름 사이로 자못 파란 하늘을 뽐내고 있으니 말이다. 학교 캠퍼스는 한적하고 주변에선 이미 바다 멀리 어디론가 여름휴가를 떠난 사람과 이제야 휴가 일정을 잡느라 부산해진 지인들 소식이 들린다.

가족이나 연인, 지인들과 보내는 휴가나 생일, 얼마 후에 있을 추석 명절과 같은 특별한 시간을 이제는 추억으로만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바로 우리와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어버이날인 5월 8일 오전 서울광장 이태원참사 분향소에서 유족들이 청년들이 달아준 카네이션을 하고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어버이날인 5월 8일 오전 서울광장 이태원참사 분향소에서 유족들이 청년들이 달아준 카네이션을 하고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우리는 통계조차 없지만,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도슨(Lesel Dawson) 교수 연구팀이 작년에 발간한 정책보고서 <Let’s talk about death>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거의 모든 아동이 16세가 되기도 전에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한 번은 경험한다고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학령기 아동 29명 중 1명, 즉 한 반에 한 명은 부모나 형제자매의 죽음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 2020년부터 작년까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유족들은 망자의 손도 못 잡아보고 마지막 작별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먼 거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 상실감과 애절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해소되지 않은 극심한 슬픔과 고통은 우울증, 불안과 같은 정신적 문제들을 일으키는 등 유가족의 삶의 질에 지속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유족이 청소년이나 청년인 경우, 저조한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실업, 범죄, 자살에 이르는 확률은 높아진다. 이 때문에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상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슬픔과 고통에 잘 대처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을 의미하는 ‘애도 리터러시(grief literacy)’(Breen et al, 2020)의 문화가 학교 교육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역에서 장려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돌봄, 사회적 연결감과 공감을 촉진하는 통합적인 지원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2012년 영국 교육청(Ofsted)의 조사 결과, 11-18세의 대다수 청소년들이 가장 신설되기를 원하는 교양과목으로 ‘사별에 잘 대처하는 방법’을 꼽았고, 교사들에게 사회의 주요 현안과 관련된 토론 자료를 제공하는 VotesforSchools의 2022년 조사에서도 ‘애도 교육’이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애도 리터러시’에 대한 인식 확산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퍼센트] 세월호 유가족 81%
[퍼센트] 세월호 유가족 81% "8년 지나도 트라우마 고통"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누군가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운명’과도 같지만, 예고되지 않은 죽음 앞에선 망연자실할 유족들의 모습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가슴 아픈 참사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특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회적 참사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해 비로소 제대로 애도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치유하고 회복력을 되찾아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생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일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 법안’이 어렵게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채상병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25일 국회 본회의 재의 표결에서 다시 부결된 상태다. 반드시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 참사로 소중한 이들을 잃은 이웃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함으로써 우리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연결감과 연대 의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미디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즉,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고 애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4월 18일 세월호 참사 10주년을 추도하는 KBS <다큐 인사이트 –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의 방영이 무산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월호 10주기 일주일 앞둔 단원고 4.16기억교실 (안산=연합뉴스)
세월호 10주기 일주일 앞둔 단원고 4.16기억교실 (안산=연합뉴스)

영국처럼 ‘애도 리터러시’를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하자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은 요원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가 ‘애도 리터러시’를 확산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경제 불평등, 정치 양극화, 혐오에 기반한 젠더 갈등 등으로 서로 분열하고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살길로 여겨지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공감과 연대 의식의 확산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응원해주는 공동체의 삶을 그려볼 수 있게 미디어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이 사랑했던 이들과의 행복했던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 김소형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초빙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 제 1031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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