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계엄령 발동 가능성을 주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터무니없는 괴담으로 치부하며 넘겼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실제로 계엄령을 내렸다. 나는 귀가해 컴퓨터를 켰다 이 소식을 접하고는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언론은 뒤늦게 김민석 의원의 주장을 재조명하고 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면을 통해 김민석 의원에게 사과까지 했다. 계엄령 설을 무시한 자신이 안이했다는 반성이 이어진다.

하지만 계엄령 설은 비현실적 주장이 맞았다. 상식으로도 정치 논리로도 그랬다. 한국처럼 형식적 민주주의가 수십 년 전에 이뤄진 국가에서 명분도 없이 계엄령을 발동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자신이 내란죄로 처벌받는 상황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현재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예측 불가능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후 그것을 예측 가능했던 일처럼 재구성하는 것에 가깝다.
이번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비합리적 행위자’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의 계엄령은 나름의 공모와 계획을 통해 이뤄진 것이지만, 원칙적 명분은 물론 현실적 결과에 대한 인지가 파탄난 결과다. 일말의 합리성도 없었고, 그렇기에 합리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번 일을 '반성'하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아무리 비합리적인 주장이라도 실현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자"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더 나은 사회적 판단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비현실적 주장까지 수용하는 태도는 도태되어야 할 음모론에 숨 쉴 토양을 깔아주고 사회적 혼란을 조장할 수 있다.

근거가 부족하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극단적 가설은 제쳐 두는 것이 옳다. 특히나 그것이 사회적 불안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라면 더욱 경계해야 한다. 음모론자들은 혼란을 틈 타 자신들의 주장을 퍼트리고 반사 이득을 취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가능성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이후 계엄 해제를 선포했지만, 이 비합리적 행위자가 차후 무슨 일을 더 벌일지 알 수가 없다. 그의 차후 행보는 철저히 감시되어야 하며 사회적 견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행위자가 그처럼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밤의 소동이 다시금 확인시켜 준 사실은 분명하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은 두 시간 반 만에 진압될 만큼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행위가 맞다. 계엄군 출동이 지체되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보도되었고 야권 의원들이 발 빠르게 대응한 사실은 평가받아야겠지만, 근본적으로 대통령이 허무맹랑한 충동에 지배당했기에 실패한 것이다. 무모하고 충동적인 통치자가 선출된 것은 대의 민주주의가 품은 함정이지만, 통치자의 폭주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는 유효하게 작동했다. 한국 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그만큼 역진되기 힘든 상태이다.

계엄령 사태는 숱한 비화와 시평을 낳고 있지만, 잘 이야기되지 않는 과제가 있다. 우리는 권력이 비합리적으로 행사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민주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시민의식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교훈이 모든 층위의 주장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사태의 현실성이 아니라 그 결과의 '극단성'에 초점을 두고 논의한다면, 사회적 논의의 우선순위는 헝클어질 것이고 판단 기준도 뒤집힐 것이다.
비합리적 통치자가 부른 혼란을 수습하는 대안은 예측 가능한 행위자를 선출하고 그를 견제할 수 있는 환경을 점검하는 것이지, 비합리적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예감까지 공인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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