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안담 칼럼] 12월 3일 밤, 우리는 한 나라가 세 시간 만에 겪을 수 있는 변화의 범위를 완전히 수정해야 했다. 그날 이후로 잠을 세 시간 이상 이어 자기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뉴스를 주시해야 하니까.

12월 3일 밤 10시 30분, 한 남자가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했다.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를 습격했다. 각자의 밤을 포기한 시민들이 군경을 태운 버스를 가로막았다. 계엄군의 총이 시민의 가슴팍을 향했다. 국회 밖에는 헬기와 장갑차가 있었다. 국회 안에는 사무처 집기로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군인이 유리창을 깨고, 보좌진이 소화기를 뿌리며 그를 막았다. ‘걸어 다니는 입법기관’이 담을 뛰어넘었다. 새벽 1시, 재석 190인, 찬성 190인으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155분은 하나의 단위가 되었다. 장편 소설 한 권에 빠졌다 나올 수도, 마틴 스콜세지의 근작 한 편을 시청할 수도, 2024년 최저임금 기준 삼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을 벌 수도, 밀린 집안일을 하고 밥을 먹을 수도 있는 시간. 그보다도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의 기본권과 자유가 떼어졌다 붙여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민들의 일상은 무너졌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4일 자정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4일 자정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은유는 작동을 멈추었다. 시민들은 서로에게 ‘깨어있기’를 요청했다. 그것은 정치 현안과 사회 문제를 향한 관심을 잃지 말자는,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견지하는 가운데 개별적인 사랑과 행복을 추구해 나가자는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언제 또다시 터질지 모르는 국가 전복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말 그대로 눈을 뜨고 있자는 요청이었다. 그날 이후로 시민들은 깨어있었다. 그동안 윤석열은 아마도 잠에, 술에, 그도 아니면 자신만의 생각에 취해 있었다. 이 압도적인 현실에는 예술다운 모호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빗대고 우회하고 암시하는 일의 사치스러움이 부끄러워서 사람들은 쓰고 그리고 만들기를 멈추고 거리로 나가고 있다. 

감히 수사법에 기대어 살길을 도모할 정도로 파렴치한 것은 윤석열을 보호하려는 자들뿐이다. 그들은 계엄령이 일종의 과장법이었다고 주장하려는 듯 보인다. 국민의힘 대변인은 계엄 사태 직후 TV토론에서 국정을 마비시키는 야당의 행태가 대통령에게는 전시 사변에 ‘준하는’ 비상사태로 여겨지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되는 인물이 저지른 위헌 행위를, 마치 비속어를 잘 참지 못하는 친구를 헤아리듯이 변호하는 여당의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위협한 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독점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 수장의 “피를 토하는 심정”을 ‘빗대어’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 계엄령이었다는 듯 말한다. 군사독재가 남긴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국민들 앞에서 고작 권력 상실의 위기를 호소하기 위해 ‘탄핵 트라우마’를 운운한다. ‘직무 정지’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이 만드는 틈새를 통해 비열하게 숨을 쉰다.

그러나 이것은 틈을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윤석열은 군사를 동원해 국민과 국민의 대표를 겁박한 내란범이다. 논의, 협상, 이해, 참작의 여지를 질식시킨 것은 바로 저들이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손 피켓을 흔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손 피켓을 흔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석열이 농담을 하거나 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후 밝혀진 바, 그날의 계엄은 다른 누구보다도 윤석열에게 실제 상황이었다. 물론 윤석열에게 이 나라를 체계적으로 장악할 실질적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언론출판계 통제라는 대업을 KBS도 MBC도 아니고 겸손방송국 습격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사당 창문을 깨는 공수부대의 모습이 각종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생중계되는 시대에 말이다. 그는 지금의 ‘반국가적’ 여소야대 의회가 ‘부정선거’를 통해서 구성되었다는 믿음으로 중앙선관위를 덮쳤다.

우스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권력이, 지나치게 막대한 권력이 있다. 헝겊으로 만든 인형의 머릿속보다도 조잡하고 허술할 도식 속에 사는 이에게 군을 통솔하고 의회를 거부할 권한이 쥐어져 있다. 그 사실이 우리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이 나라는 투표소에서 자격 없는 이에게 자격을 주고, 광장에서 자격 없는 이의 자격을 빼앗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짓을 다시 할 수는 없다.

윤석열은 그만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의 나라에서 군대는 국민, 의회, 헌법, 심지어 보수가 사랑해 마지않는 국가 그 자체에도 충성하지 않고 오로지 윤석열에게 충성한다. 그의 나라는 사랑하는 그의 가족을 위협하려는 종북 세력으로 들끓고, 그들을 궤멸하기 위해 무슨 수를 쓰든 정의롭다. 그의 나라에서 그는 고등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잘 지낸다. 그의 나라에서 그가 원하는 일은 모두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는 그 나라의 대통령이므로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

그가 나의 나라에 살게 해야 한다. 그 나라의 대통령을 끌어내려 이 나라의 범죄자로 만들어야 한다. 그를 처벌해야 한다. 윤석열이 보고 느끼고 바라고 꿈꾸는 게 무엇이든, 더이상 그의 심상이 이 현실로 흘러나와서는 안 된다. 윤석열의 잠을 깨워서 보게 해야 한다. 윤석열이 취임한 이래, 지난 12월 3일과 같은 불면의 밤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다는 사실을. 주 120시간을 일해야 해서 잠들 수 없고,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거리에서, 물속에서, 불속에서 잃어서 잠들 수 없고, 동등한 시민의 자격으로 지하철에 탈 수 없어서 잠들 수 없고, 나날이 증폭되는 차별과 혐오의 소음 때문에 잠들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의 존재는 고문이다. 그는 깨어있어야 한다. 적어도 모두가 잠들 수 없었던 시간만큼은.

안담 작가. 무늬글방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친구의 표정⟫, ⟪소녀는 따로 자란다⟫, ⟪엄살원⟫(공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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