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여야 당 대표 회담에 합의한 지 하루 만에 회담 전체를 '생중계하자'는 조건을 걸었다. 이 때문에 여야 대표 회담 실무협의가 공전하고 있다.
보수진영 내에서도 한 대표의 '생중계' 조건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회담 생중계 시 여야 대표가 구체적 협상이 아닌 자기 지지층을 의식한 대결적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높고, 별다른 성과 없이 회담이 종료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채해병 특검법에 대한 불명확한 입장, 실력 부족 등으로 회담 생중계 리스크는 한 대표 측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이어진다.

지난 19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는 25일 여야 대표 회담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이 확정되자 민생 현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한 대표가 수락하면서 회담이 성사됐다. 한 대표는 회담 성사 당일 최고위원회에서 "여야가 미뤄진 여러 민생과제에 대해 실질적인 많은 결과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며 "다양한 의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튿날인 20일 한 대표 측은 돌연 기자들에게 '회담 생중계를 제안할 것'이라고 알렸다. 언론 보도를 통해 생중계 제안을 접한 이해식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은 "실무회담에서 합의된 선에서 발표하는 것이 상례이다. 예의에 어긋난다"며 "대표 회담을 하나의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만들려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예정된 양당 대표 비서실장 간 실무협의는 불발됐다.
생중계 조건을 둘러싼 양당의 기싸움은 21일에도 계속됐다. 한 대표는 기자들에게 "국민이 여야 대표가 대화하는 것을 보는 게 불쾌할 일은 아닌 것 같다"며 "논의 과정, 사안들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국민들이 보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했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이 대표의 상습적인 말 바꾸기가 국민 앞에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면 마다할 명분이 없다"고 했다.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에서 "대표회담 성과를 낼 아무 권한도 없는 무력한 대표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대국민 보여주기식 쇼에만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당 내에서도 한 대표의 생중계 제안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회담 생중계는 안 한다. 대선 TV토론 1차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라며 "이게 무슨 이벤트로 하는 것도 아니고, 회담이라는 게 결론을 맺기 위해서는 서로 양보할 것도 있고 밖에다 얘기 못할 것도 많다. 그게 협상"이라고 했다.
22일 한겨레 기사 <국힘도 한동훈 ‘회담 생중계’ 비판…“이벤트화” “성과 없을 것”>에서 한 영남권 국민의힘 의원은 "회담을 생중계하면 회담으로서 의미가 있나"라며 "각자 입장만 얘기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결과물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를 "회담은 각자 요구와 주장을 관철시키려 노력하는 동시에 양보와 타협으로 접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인데, 이를 생중계하면 지지층을 의식해서라도 날 선 주장만 하다 끝나게 된다는 우려"라고 풀이했다.

22일 중앙일보는 사설 <우리 여야 대표도 새겨들어야 할 “뭐라도 하자”>에서 "타협하려고 하는 회담인데 생중계 대결 봐야 하나"라고 직격했다. 중앙일보는 "새로 뽑힌 여야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민생을 풀어보겠다며 마련한 자리다. 어디까지나 회담이지 토론이 아니다"라며 "접점을 끌어내기 위해 서로 양보할 건 양보하고,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게 회담이다. 이를 TV토론마냥 생중계하면 결국 대화가 아닌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서로 얘기하고 싶은 것만 얘기하게 된다. 그동안 그래 왔고, 두 대표의 스타일도 그렇다"며 "두 사람 간 신뢰가 얼마나 없으면 이런 생중계 얘기까지 나왔을까 싶지만, 그럴수록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신뢰 쌓기 노력을 해야 한다. 싸움 그만하고 민생 좀 챙기라는 여론 때문에 만들어진 회담인데, 생중계 TV를 통해 지루한 싸움을 또 봐야 하겠는가"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형식보다 의제와 타협 의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중앙일보는 의제는 민생을 중심으로 폭넓게 설정해야 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위해서는 회담 시간을 제한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시급한 현안으로 저소득층·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방안을 꼽으며 "최대한 공통분모를 도출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한 접근을 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양당 대표가 주장하는 지구당 부활에 대해 "모두 지구당 부활이 정치개혁이라고 주장하나 그건 정치인의 논리일 뿐"이라며 "정치 과몰입 현상을 더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분명히 새기길 바란다"고 했다.

한 대표가 원하는 대로 회담이 생중계 된다고 해도 오히려 이 대표에게 밀릴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진다. 한 대표가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한 국민의힘의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고 이 대표에 비해 정치적 식견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대표는 당의 변화를 만들어야되는데, 저는 이분들로 인해 당이 새롭게 확 변하겠구나 하는 느낌 못 받았다"며 "(한 대표)개인에 대한 기대치는 좀 있으니 TV토론 같은 데서 한 번 실력을 보이고 싶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리스크는 한 대표 쪽에 훨씬 더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절대 정치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학습되는 게 아니다"라며 "(한 대표는)말을 굉장히 거침없이 많이 하는 편인데 사실 말을 굉장히 아껴야 되는 자리가 대통령, 당대표라는 자리다. 거의 최종적인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얘기해도 되는데(그렇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생중계로 가게 되면 결국 말싸움, 일종의 논쟁이 붙게 되는데 일단 한 대표의 화법은 질문에 질문으로 되묻는 방식이다. 이게 정책적 토론으로 갈 때 의외로 안 먹힐 수 있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한 대표는 정책 공부를 좀 더 해야 한다. 주 3일 출근제하고 주 3일 근무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상태인데 이 대표는 알지 않나"라며 "(이 대표가) 'RE100 알아요?' 이렇게 대화 끌고 가는 분이라 이런 데 밀리지 않으려면 좀 더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김 전 의원은 "결국은 특검법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특검법에서 한 대표가 만들어냈던 초식들은 다 읽혔다"며 "지금 (민주당은)다 받겠다는 거다. 한 대표가 얘기한 제3자 추천 받겠다, 제보사주도 받겠다고 했는데, 사실 (한 대표가)제보사주 제안한 것 자체가 잘못하면 김건희 여사까지 (채 해병)특검에 끌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앞서 민주당이 '제3자 특검을 수용할 수 있다'고 압박하자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제보 공작' 의혹을 수사 범위에 포함하는 것을 조건으로 관련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보 공작 의혹'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제보자인 김규현 변호사가 민주당에 제보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을 말한다.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씨가 연루돼 있다. 김규현 변호사는 한 대표 입장에 대해 '물타기' 의도가 있음에도 채해병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특검 수사를 받을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 전 의원은 "이런 것들은 우리로서 엄청난 자충수인데, 만약 (생중계에서)특검법 이야기로 모든 게 포커싱이 되고 나면 한 대표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며 "일단 비공개로 만나서 상견례 정도 하자 해야지 무슨 생중계인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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