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와 기독교가 소유한 세계일보·국민일보 등이 동성 부부를 사실혼 부부와 차별해서는 안 된다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판결에 대해 '위헌적 판결', '사회 질서를 뒤흔들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1일 서울고법 행정1-3부(이승한 심준보 김종호 부장판사)는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소 씨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판정에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행정법상 '평등 원칙'과 세계적 흐름이 고려됐다.  

소 씨는 지난 2019년 김용민 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배우자 김 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건보공단은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소 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고 보험료를 부과했다. 

동성 커플이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 2심에서 이겼다.
동성 커플이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 2심에서 이겼다. 21일 선고 직후 서울고법 앞에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심 재판부는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도 소 씨 부부를 사실혼 관계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동성 결합 배우자 집단'과 '사실혼 배우자 집단'은 동성·이성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혼인생활을 하는 것은 같다며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점에서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 결합 배우자 집단은 다르지 않고,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인정 여부를 가릴 때 부양자 관계의 합법성보다 경제적 의존도를 우선 고려하는 것이 피부양자 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며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고 판결문을 맺었다. 건보공단은 대법원 판결을 받아보겠다며 상고를 예고했다. 

국민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등의 언론은 사설을 통해 이번 법원 판결을 '위헌적 판결'이라고 규정했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헌법 제36조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22일 국민일보는 사설 <‘동성커플 건보 자격’ 인정 판결, 대법원이 바로잡으라>에서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첫 판결이자, 우리 사회의 기본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판결"이라며 "동성 간에 혼인(또는 사실혼)이 성립할 수 없음은 헌법과 법률과 숱한 판례로 제시돼 있다.(중략)재판부는 ‘사실혼 배우자’ 대신 ‘동성 결합 상대방’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동성 혼인을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지만, 이 판결은 혼인에 대한 사회적 개념과 기준을 허무는 위험성을 가졌다"고 썼다. 

국민일보는 "보험 적용 기준의 기저에 혼인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동성 커플을 포함시킨 것은 혼인의 범주를 넓히자는 선언과 다르지 않고, 이는 가장 기초적 사회 질서인 혼인의 개념을 파괴하는 일"이라며 "결국 동성 혼인 법제화 논란을 불러올 위험한 단초가 이 판결로 마련됐다.(중략)대법원은 반드시 이 판결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보수기독교계가 출자한 언론사다. 국민일보 소유주 '국민문화재단' 이사진은 보수기독교계 목사들로 구성돼 있다.

석간 문화일보는 같은 날 사설 <‘동성 결합’ 건보 피부양자 인정한 2심 판결은 위헌적>에서 "법률혼은 물론 사실혼도 아니라면서 ‘실질적 혼인’이라고 한 것부터 억지"라며 "설령 사회적 합의로 ‘동성 결혼 공식 인정’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그때까지는 현행 제도와 질서를 법적으로 지켜야 한다. 건보공단이 상고 방침을 밝힌 만큼, 대법원이 바로잡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23일 세계일보는 사설 <위헌적 ‘동성 결합’ 건보 인정 판결, 대법원이 바로잡아야>에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법 체계에 어긋나는 위헌적 판결"이라며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면서 사실혼 관계와 같다고도 하니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재판부가 판결문에 이례적으로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소수자 권리 보호와 법원 책무를 거론함으로써 헌법과 법률보다 판사 개인의 신념이 크게 작용한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 권익 보호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가족 관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에 섣불리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썼다. 세계일보는 통일교재단과 통일교가 최대주주다. 

국민일보 
국민일보·세계일보 CI 

반면 한국일보는 22일 사설 <법원, 동성반려자 건보 인정...소수자 인권 진일보>에서 2심 재판부가 '행정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평등의 원칙을 규정한 행정기본법 제9조로 사건을 의율한 점을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한국에서 민법상 동성결혼은 인정되지 않지만, 이번 판결은 그런 원칙에서 파생된 행정적 차별을 제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동성 커플들은 사실상 가족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건강보험 피부양자나 상속, 연금부터 수술 동의서에 이르기까지 ‘부부’나 ‘가족’에게 부여되는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는 다수결에 끌려가서는 안 되는 인권 문제이며, 이번 판결은 그 점을 환기시켰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 권리 인정한 첫 판결 환영한다>에서 2심 재판부가 "혼인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짚은 부분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실제 대만을 비롯해 전 세계 34개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이며, 일본에선 지방정부가 조례로 동성 파트너를 배우자에 준해 인정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은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동성결혼이 승인될 경우 발생하는 권리가 1000여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동성 커플들이 그만큼 많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소외돼 있다는 의미다. 오랜 기간 삶을 함께해온 동반자들도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복지혜택에서 배제되는 게 현실"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보장체계가 개선되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앞당겨지길 기대한다"고 썼다. 

한겨레는 사설 <‘동성 부부’ 건보 자격 인정한 법원, 제도 개선 이어지길>에서 "이제 정부와 국회가 성소수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때"라며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도 법적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생활동반자법' 입법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현행 가족제도가 혼인·혈연을 벗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차별하고 각종 공적 사회제도에서 이들을 배제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생활동반자법은 2014년 초안이 마련됐으나 보수단체 등의 반발로 발의조차 안 됐다"고 짚었다. 

이어 한겨레는 “정부는 그동안 성소수자를 ‘없는 존재’처럼 취급해왔다.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과정이 모욕적이었다"는 소 씨의 소회를 전하며 "시민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찾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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