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서울시의회가 서울시교육청에 청소년과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반헌법적”, “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시 교육전문위원실은 서울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 검토의견을 요구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해당 조례안을 보내고 의견을 구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의원발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면서 “시민단체를 통해 조례안이 접수됐고, 검토 이후에 의원발의를 예정하고 있다고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의원발의를 염두에 두고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사진=연합뉴스)
서울시의회. (사진=연합뉴스)

30일 미디어스가 확보한 조례안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여성의 임신중절 금지를 법제화하는 내용이다. 제2조 6호에는 “‘성·생명윤리’란 건전한 성 가치관 형성을 위한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생명 보호 및 가치의 증진을 위해 지켜야 할 윤리로서 학교 교육 활동과 관련하여 학교 구성원이 준수하여야 할 다음 각 목의 핵심 가치를 말한다”고 했다. 

“혼인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연합을 의미한다”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개인의 불변적인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고, 이는 생식기와 성염색체에 의해서만 객관적으로 결정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인간인 태아의 생명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로서 보호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하며,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권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중단할 권리가 없다”

조례안 제3조는 “아동·청소년에게 조기성애화, 성 정체성 혼란, HIV/AIDS 등 성매개감염병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적으로 충분히 안내하여야 한다”,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원치 않는 성행위를 거부할 소극적인 권리로 제한되어야 하고,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일한 선상에 두고 취급하거나 판단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했다. 

서울시교육감이 조례안에서 제시된 내용 실천 및 증진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해 추진해야 하고, 학교의 장은 이 같은 내용을 학교교육활동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무조항도 포함됐다. 

“조례 어기면 신고”…“성교육은 절제에 주안점”

또 성·생명윤리 위반행위가 발생하면 학교 구성원이 학교의 장에게 제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성·생명윤리 위반행위는 “성·생명윤리에 관한 신실한 종교적 신앙과 도덕적 신념을 이유로 학교구성원에게 불이익을 가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는 행위”, “교직원이나 제3자가 학생에게 성·생명윤리에 반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행위", "학교 도서관 등 학교시설에 성·생명윤리에 반하는 도서, 영상물, 전자자료 등의 매체물을 비치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교육감은 성·생명윤리책임관을 두도록 했다. 성·생명윤리책임관의 권한 중 하나는 성·생명윤리 위반행위를 조사하는 것이다. 

조례안은 “절제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례안에 “성교육은 학생과 보호자가 조기 임신과 성매개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조력하도록 설계된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성교육은 생물학적 성별에 관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교육에는 조기성애화, 성 정체성 혼란, HIV/AIDS 등 성매개감염병 등의 보건적 유해성에 관한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조례안에는 ‘성·생명윤리 실태조사’, ‘성·생명윤리교육’ 등을 관장하는 ‘성·생명윤리위원회’를 교육감 산하에 신설하는 내용도 담겼다. 조례안에 따르면, 성·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의 자격은 “성·생명윤리에 관하여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높은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헌법 위배” “혐오 가르치는 게 교육이냐”

해당 조례안을 두고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반헌법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30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해당 조례안은 의견을 낼 가치조차 느끼기 어려운 수준으로 현장 교원들에게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며 “서울시의회는 괴상한 해당 조례안을 당장 폐기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는 “해당 조례에서 ‘성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조항은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기본적 인권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한다”며 “본 조례는 순결과 정조를 강요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성소수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하고 배척해야 한다는 걸 가르치는 게 진정 교육이냐”고 꼬집었다.

이승미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퇴행도 이런 퇴행이 있느냐”며 “조선시대에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많은 서울시의원들이 격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의회 교육전문위원실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온 것을 교육청에 검토해달라고 보낸 것뿐”이라며 “이것뿐만 아니라 조례를 만들어달라는 민원은 상당히 많이 들어온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민원을 제기한 시민단체가 어디냐’는 질문에 “어디인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수의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교육위와 관련된 모든 민원을 조례안 형태로 서울시교육청에 보내 검토의견을 받지 않는다. 민원으로 들어온 조례안은 민원소통관이 취합해 검토한 후 상임위원회로 보내 서울시의원들이 합의하거나 검토해 처리하게 돼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검토를 요청한 조례안은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박강산 시의원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당을 떠나 상임위 내에서 논의된 적이 없는 조례안”이라며 “외부 민원 형식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논의는 일절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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