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추적60분'과 MBC의 'PD수첩' 그리고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상파 방송사 교양제작의 간판으로 PD가 제작하는 탐사취재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구조 그리고 자본의 폭력이라 할 불공정 거래 등을 고발한다.

하지만 그들 프로그램이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방송사 내부에서 자행되는 불공정거래에 의한 노동착취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불공정 거래의 폐해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해 1월이었다. 진보세력을 향한 좌충우돌 저격수 노릇을 하는 변희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공격대상은 방송사가 아닌 방송노조였다.

“약자와 서민을 보호하겠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방송노조가 이제껏 방송 권력에 착취당하는 외주업체와 작가들의 권익을 주장한 바는 없다. 방송노조가 지지했던 KBS 정연주 전 사장이 외주업체 제작비를 일방적으로 40% 삭감했을 때도 그들은 침묵했다.”

동아일보 2009년 1월 9일자에 오른 칼럼 <방송 귀족들에 빼앗긴 영상세대의 꿈>의 일부다. 독립PD들로서도 그리 달갑지 않은 변희재의 지적이다. 허나 그의 지적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변희재가 공격한 대상이 방송노조처럼 보이긴 했는데,정작 저격 대상은 독립PD였다. 방송사와 방송노조의 희생양이 된 독립PD협회 소속 386세대들이 2008년엔 KBS 정연주 사장 사수 투쟁에 앞장서더니, 2009년엔 방송노조와 연대하며 ‘미디어법 개정 반대 투쟁’에 나서는 게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변희재는 조준사격을 했다. 독립PD의 행각은 결국 방송노조의 노예로서 ‘흑인이 백인의 밥그릇을 위해 투신하는 격’이라는 것이다.

이미 일 년이 지난 변희재의 조준사격이지만, 독립PD 내부에서 이 칼럼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변희재의 저격은 일정 성공한 셈이다. 이제 생각해보자. 변희재의 필봉이 날카롭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변희재의 필봉은 좌충우돌 아무나 찔러보고, 논리의 비약단계가 아스트랄한 수준이기에 아무리 숯돌에 갈아도 날이 설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희재의 필봉이 날카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방송사의 불공정 거래 관행과 그 구조적인 악행에 방관하는 방송사 내부의 침묵으로부터 비롯된다.

지상파 방송프로그램의 30% 이상을 독립PD들이 제작 연출한다. 30대 초반 독립PD의 노동은 주당 80시간을 넘어선다. 그러나 임금은 방송사 정규직의 30% 수준이다. 거기에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갑’과 ‘을’의 관계는 말도 꺼내기 싫을 정도로 모멸적이다. 원칙적으로 ‘갑’은 방송사, ‘을’은 독립제작사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갑’은 방송사 정규직이고 ‘을’은 독립PD가 된다. 그러다보니 독립PD내부에서 흐르는 방송사 정규직에 대한 감정은 증오 수준에 이른다. 마치 볼세비키 혁명 이전의 프롤레타리아가 지녔던 적개심처럼 말이다.

▲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MBC 남문 광장에 만들어진 '힘내라 MBC' 촛불 ⓒ송선영

지난 해 ‘미디어법 반대 투쟁’의 전선에서 MBC노조는 방송 파업을 한 바 있었다. 이때 독립PD들은 MBC 파업에 연대와 지지를 선언했다. “MBC 파업으로 인력 공백 현상이 생겨도 우리 독립PD는 결코 대체 인력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갑’인 방송사가 ‘을’인 독립제작사에게 대체 인력 투입을 요청하면 거부할 방법이 없다. ‘원청’의 명령을 어떻게 ‘하청’이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독립제작사의 인력구조 핵심을 이루고 있는 독립PD는 노조조차 없는 미조직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명령이 방송사로부터 독립제작사에게 내려오면 단호히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상의 파업 선언이다. 방송사 정규직은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라도 있지만, 독립PD는 방송 노조에 가입조차 할 수 없는 미조직 노동자면서 사실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걸 변희재는 “흑인이 백인의 밥그릇을 위해 투신하고 있는 격이다. 방송 권력의 외주업체 장악은 경제 영역을 넘어 정신의 영역까지 파고든 것이다. 이른바 노예근성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까지였다. 방송사의 정규직들은 우리에게 그 어떤 반응도 응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일부 각성한 개인 몇몇 만이 독립PD를 위무했을 뿐이다. 지상파 권력은 강력한 ‘갑’으로 ‘을’을 착취하는, 그래서 정규직의 배만 부르는 견고한 체제로 흔들릴 줄 몰랐다. 자성의 목소린 들리지도 않았다.

독립PD 혹은 독립제작사가 마련한 제작 협찬금은, 여전히 최하 20% 최대 60%까지 ‘송출료’ ‘전파료’란 명목으로 삥을 뜯긴다. 방송사 정규직에게 독립PD는 그저 하청 노동자며 앵벌이다. “왜 이러십니까? 우리 프로그램이 삥을 뜯은 적은 없어요. 만약 제가 외주 제작을 담당하는 자리에 있게 된다면 그러한 구조적인 악을 부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최근 모 정규직 PD가 내게 한 말이다. 이 말에 독립PD는 좌절한다. 자신의 프로그램이 독립PD를 직접 착취한 건 아니지만, 그들이 누리는 고액의 출장료와 엄청난 제작비 속엔 독립PD의 앵벌이와 피 고름이 있다는 걸 주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있을 MBC 노조의 전면 파업에 적극 연대하며 동참할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자신 없다. 독립PD 내부엔 반대의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지난 해 여름 내게 있어서 후배가 되는 젊은 독립PD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싸워야 하고, 지킬 것 많은 자가 용감해야 하며, 여유 있는 자가 베풀 줄 알아야 싸움의 정당성은 높아가고 승리의 가능성은 커질 겁니다. 그런데 ‘미디어법 반대투쟁’의 중심에 섰다는 방송노조들. 정말 정신 차려 주기 바랍니다. 아직은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지만 참말로 벨로시렙터의 밉살스러움이 극에 달한다면 내 몸이 갈갈이 찢길지언정 티렉스가 벨로시렙터를 토막내는 모습에 열광하면서 죽어갈지도 모르니까요.”

앞으로 벌어질 MBC 노조의 총파업을 바라보는 독립PD의 시선은 이렇게 복잡다단하다. 방송사의 정규직 노조를 향한 독립PD의 짝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는 게, 나의 간절하고 정말 간절한 심정이다. 노파심이 든다. 이러한 우리의 목소리조차 ‘사회적 약자를 가장한 폭력’으로 매도당할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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