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공자’가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다. 하지만 흥행 성적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 후진타오까지 나서서 독려하고 아바타 상영을 제한하는 등 당국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던 중국에서도 상황은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여러 다른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로 뭘 해보겠다는 목적성이 과도하게 개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중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문명국가’ ‘문명중국’이라는 언설이 적잖이 회자된다는 점이다. ‘문명중국’은 정치적으로는 조공체제와, 가치개념으로는 천하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중국 지식인들이 말하는 ‘문명국가’라는 개념은 그들 사이에서는 ‘민족국가’의 대안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명중국’에 관해서 일본의 중국 연구자 다지마 에이이치(田島英一)의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그에 따르면 중국 근대의 국민국가 형성은 사(士)·민(民)·이(夷, 소수민족이나 주변국가를 포함) 세 집단을 균질적 국민으로 개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중국 국민국가 창성의 특수성에 주목할 경우 거기에서부터 ‘문명중국’(캉유웨이, 康有爲), ‘혈통중국’(쑨원, 孫文), ‘계급중국’(마오쩌둥, 毛澤東)이라는 세 개의 모델을 추출할 수 있다. 그리고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계급중국’ 모델이 종언을 고하고 ‘문명중국’ 모델이 부흥했다. 이것은 공자를 핵심으로 하는 유교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계급중국’ 모델의 종언과 ‘문명중국’ 모델로의 회귀가 중국 내외적으로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문명중국’으로 사(士), 즉 지식인이 주류가 되었다는 것은 인민의 주변화를 의미한다. 사실상 개혁개방 이후 구체적으로는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인민에 대한 삼중의 주변화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문명중국’의 출현은 어떤 식으로든 인민들에게 민주의 문제를 제기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의 이런 현실에 비추어볼 때, 현재 중국 지식인들이 가장 크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인민의 주변화가 심해지면서 나타나는 대중민족주의의 강화 현상일 것이다.(졸고, 「현대 중국 민족주의 비판」, 역사비평 2010년 봄호)

다음으로는, ‘문명중국’ 안에 자본과 제국에 대한 대안적 의식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문명중국’ 또는 ‘문명국가’라는 개념 안에 중국의 봉건과 서양의 근대를 극복할 계기로서의 대안문명을 내포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안에 민(民)과 이(夷)의 자리가 있는지, 자본주의의 근대성에 대한 대안적 고민과 더 나아가서는 제국주의에 대한 대안적 사유를 포함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 존재 여부는 어찌되었든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계급중국’이 종료되고 개혁개방이 시작되면 어떤 식으로든 신사(紳士)와 같은 미묘한 계급이 생겨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론 실체로서의 계급이라기보다는 생활양식이나 생활수준 같은 것에서 생겨나는 계급화를 뜻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주의를 거쳤어도 수천 년의 계층적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 그것이 다시 되살아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민두기, 「「중국근대사론Ⅰ」, 지식산업사, 1988) 그러나 문명중국을 유교 그 자체의 회귀로 직결시키는 것은 좀 곤란할 수도 있다. 문명중국이라는 것을 사유방식이나 역사적 전통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천하주의에서의 천하도 가치로서의 천하, 그러니까 도덕의 원천이라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또 여기서 문명중국, 유학, 공자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은 지금 중국이 맞닥뜨린 문제를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공자를 박물관에서 다시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 혁명을 포함한 근대성에 내재된 목적론에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아리프 딜릭, 「역사와 대립되는 문화인가? : 동아시아 정체성의 정치학」, 『발견으로서의 동아시아』, 문학과지성사, 2000) 그러니까 유교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가치 때문에 그것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믿고 있던 신념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면 전통이 과도하게 과장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서 다시 질문해야 하는 것은 중국의 맥락으로 들어갔을 때 유학에 관한 중국 공산당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국가 시스템과 체질을 고려할 때 공산당의 정책결정과 그 파급의 범주에서 지식인은 아직까지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여기서 진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공산당이 자신의 정당성을 세우는 데, 그리고 자신의 정치문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유학을 단편적으로만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전면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공산당의 의지가 어떻든 중국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진정 현실을 사유한다면 유학이든 공자든 그 부활이 ‘괴물 자본주의’와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유학이 과연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좀 더 디테일한 고민을 진행해야 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민들의 생활과 유학의 부활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청화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캐나다 태생의 학자 다니엘 벨(Daniel A. Bell)은 그의 북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사회주의는 다만 사회의 통제 수단으로만 활용되고 있으며 더 이상 중국 정치의 미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런 진단을 바탕으로 앞으로 20년 내에 중국의 공산당을 의미하는 CCP(Chinese Communist Party)가 중국의 유가 정당을 의미하는 CCP(Chinese Confucian Party)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Daniel A. Bell, China’s New Confucianism: Politics and Everyday Life in a Changing Socie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and Oxford, 2008) 다니엘 벨은 중국의 앞으로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이제 유학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공자와 유교의 부활은 단순히 과거 중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긍정하는 것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중국의 인민과 소수민족의 주변화 문제, 그리고 근대성에 대한 대안 등 현안에 관련해서 말이다. 공자를 현대에 살리기 위해서는, ‘유산’으로서만이 아니라 ‘계획’으로서의 공자가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영화 ‘공자’는 이런 점에서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재미가 없더라도 작심하고 봐야겠다. 나는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살았던 한 낯선 외국인으로서 공자를 볼 작정이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인터넷에 돌고 있는 공자가 한국인이라는 주장에 자극받아 중국에서 ‘공자’라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려온다. 공자를 대상화시켜보는 작업은 그래서 중국인에게는 물론 한국인에게도 역시 필요한 것 같다. 중국, 동아시아인이 공자의 가치관을 집단적으로 내재화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공자를 낯설게 또는 외국인으로 보는 작업은 공자를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