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MBC 뉴스테스크 화면 캡쳐
공은 다시 한국사회 '무능'함의 대명사격인 '국회'로 넘어갔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또다시 공을 때리지 않고, 그냥 토스해버렸다. 언젠가부터 헌재가 '스티브 블래스 병'(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들을 일컫는 야구 용어)에 걸린 투수마냥 매순간 결정을 짓지 못하는 '불능'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스럽다.

물론, 모든 사회적 쟁점에서 헌재의 판단을 최종 심급으로 삼고자 하는 작금의 세태 자체가 불합리한 것일지 모른다. 예컨대, 미디어법의 경우 그 판단의 최종 권한을 헌재가 가졌어야 하는 문제였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서 흔한 사회학 용어로 '87년 체제'의 유산이라 불리는 헌재는 어쩌면 386 컴퓨터의 용량으로 스마트폰의 흉내를 내고 있는 우리 안의 비극적 괴물일지도 모른다.

뭐, 하여간 각설하고. 헌재가 사형제를 5: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합헌의 근거로 든 조항은 헌법의 110조 4항의 단서 조항이다. 그 조문은 "비상계엄 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이다.

솔직히, 몰랐다. 우리 헌법에서 사형의 정당성 혹은 빈약하나마 사형을 실제 하게 하는 근거가 딱 저 한 조항일 줄은. 그나마 저 조항은 이번 결정에서 사형제가 위헌이라는 입장을 밝힌 김희옥 헌법재판관의 말대로 "단서조항의 도입 배경이나 규정의 맥락으로 보아 법률상 존재하는 사형의 선고를 억제하여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한 규정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비추어 보아도 간접적으로나마 헌법상 사형제도를 인정한 근거규정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이 아닌가.

사형제는 인간이 고안해낸 모든 제도들 가운데 가장 오만한 그래서 야만적일 수밖에 없는 형벌이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당대의 기준을 근거로 하여 만고불변의 존엄성을 갖는 생명을 아예 제거한다는 것은 도무지 문명적이지 못하다. 즉, 사형제라고 하는 형법 질서는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살변'이 통치술로 활용되는 드라마 <추노>같은 시절에나 납득될 질서란 말이다.

헌재는 이렇게 말했다. “범죄 예방을 통한 국민의 생명 보호, 정의 실현 등의 공익이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권 보호라는 사익보다 결코 작지 않다”고. 헌법을 그들보다 잘 알 수 없는 내가 보기에도 전혀 법리적이지 못한, 명절날 늘 같은 소리만 해대는 집안 어르신의 어리광 같은 소리다.

사형제를 통해 범죄가 예방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예컨대 사형제를 이미 폐지한 139개국의 범죄율이 그렇지 않은 59개국에 비해 현격히 높다고 말할 수 있는가? 따라서, 사형제의 시행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사형제를 통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말은 전쟁을 통해 평화를 얻는다는 말과 같이 그럴싸해 보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 25일 MBC 뉴스테스크 화면 캡쳐
덧붙여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권 보호'라고 사형제 폐지의 의미를 훼절한 것 역시 헌법의 판관들이 사용할 수사는 아니다. 이건 그야말로 하등의 법리를 갖추지 못한 편향된 저잣거리 논리 일뿐이고, 인권에도 종류가 있으니 법이 보호해야 할 인격에도 차별을 두자는 덜 여문 소리가 아니냐는 말이다.

헌재를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헌재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국회를 믿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7명이 위헌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이제 5명으로 줄였으니, 마지막 한 명만 더 줄이기 위해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사형제가 있기에 죄를 저지르지 않으며, 사형이 무서워 사회적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재판관들은 그러한가? 혹, 국회의원들은 어떠한가? 엄벌이 있어야 세상이 평온하리라는 누군가의 근대성 혹은 지긋지긋한 계몽주의로부터 한국 사회는 진정 민주화되어 있는 것인지, 오늘 헌재가 그걸 다시 국민들에게 물었다.

세계인권선언의 1조는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동등한 인권을 가진다'고 외치며 시작된다. 내가 살아갈 권리로 충만해야 한다면, 누군가의 그것도 나와 같아야 한다. 특정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것이 박탈되어야 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 박탈 여부를 국가 혹은 공동체가 판단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난센스이다. 공지영 소설가의 말처럼, 내 아이를 죽인 자를 죽인다고 한들 내 아이가 돌아오진 못한다. 감정의 잉여분을 배설하는 창구로 사형제의 존치 논리가 구성되어선 곤란하다. 확언하건데, 사형제를 존치한다고 한들 사형이 옳을 순 없다. 헌재의 주문대로, 13년간 이어져 온 사형 미집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국회가 언제 사형제 폐지 법률안을 입법할지 알 수 없으므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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