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권력의 궁극적 목적이 '부의 세습'에 있다면, 정치권력의 궁극적 존재 이유는 '정권의 연장'에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정권은 재창출을 도모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간단한 이치이다.

대개 경제 권력들이 전전긍긍하는 것은 '부의 세습'을 둘러싼 안달의 결과물 들이다. 편법으로 세습하거나, 나눠주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티 안 나게 넘겨주려거나 등등. 반면 '정권 연장'을 도모하는 정치권력들은 언제나 초연한 척 한다. 이른바, 선거를 통한 민주적 세습 이외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밑에선 치열한 암중모색과 이전투구가 있다손 치더라도 겉으로는 대개 무탈한 척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는 보통 추잡함을 감추기 위해 역사와 대의 같은 추상의 것들을 끌어들인다. 예컨대, '역사의 평가를 받겠노라' 하는 주억거림 말이다.

MB의 청와대 역시 다르지 않다. 이제 딱, 3년이 남았고, 오는 지방선거가 정확히 권력의 반환점이다. 지방선거를 통과하면 사용할 권력은 이미 사용한 권력보다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지방선거에 앞서 굳이 무리수를 써가며 MBC 사장을 교체한 것이고, 총리를 앞세워 4월 이전에 세종시를 결정짓자고 덤비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삽질에 들어간 4대강이야 워낙 전선이 넓게 뻗쳐있으니 한 숨 돌리고 있을 것이고, 종편 사업자의 선정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 마지막 힘을 응축해 결정지으면 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다.

그 외의 모든 관심과 정열은 이제 어찌 하면 정권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인가로 쏠려 있을 것이다.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할 필요도 없는 당연지사이다.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지방선거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따위와 비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미래 플랜이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MB와 청와대 그리고 친이계들이 지금 무슨 쑥덕공론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토록 전 방위적으로 친박계를 치받고 있는가 말이다. 권력이 가장 왕성하던 임기 초에도 않던 일을 왜 이제서야 이리 극악하게 하고 있느냐 말이다. 한 지붕에서 유례없는 살기가 뿜어지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며 행여, 박근혜 없이도 정권의 연장이 가능하다는 견적이 이미 나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는 이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 남소연 오마이뉴스
그래, 세종시를 둘러싼 친이와 친박의 싸움은 예사로운 집안 분란이 아니다. 최근 들어 자주 강조되고 있는 '과거에 묶여서 미래를 못 나가면 안 된다'는 MB와 청와대의 인식은 정확하게 박근혜를 향해 있는 비수다. 얼핏, 박근혜와 함께 미래를 가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 말은 어쩌면 자신들의 미래 플랜에 이미 박근혜는 없다는 성토인지도 모른다.

친박계의 좌장이라 일컬어지는 김무성 의원의 수정안과 미래를 향해 굴러온 돌 정몽준 대표의 회동 무산 사실 공개 이후, MB와 청와대 그리고 친이계들은 세종시 문제를 미래를 향한 싸움으로 자가 발전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 까닭, 노림수, 목적 그리고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국은 달라질 것이고, 다음 정치권력의 때깔 또한 분명 바뀔 것이다. 자칫하면, 언제나 행동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박근혜 스타일의 정치가 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질 가능성도 있다.

한 때, 여의도에 '주이야박'이라는 말이 있기는 했었나 싶을 정도로 한나라당의 질서가 일제히 MB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징후는 곳곳이고, 상황은 명확하다. 세종시를 둘러싼 한나라당의 분란은 어지러워 보이되 세밀히 보면 단조로운 직렬의 움직임뿐이다. 박근혜계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고립되고 있다.

몇 가지 추정되는 것들은 있다. 우선, 시기적으로 공천권이 친이계에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야당의 경험은 살아 '갈' 권력보다는 살아 '있는' 권력에 붙어 있는 것이 확률적으로 유리하다는 수세적 인지반응을 학습시켰을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파적으로 친박계와 민주당을 합친다고 한들 현재 한나라당의 위세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세는 치명적이다.

세종시 문제가 확장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박근혜 의원은 점점 더 막다른 외통에 몰리게 될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4월에 처리가 된다는 것은 곧 박근혜 의원의 리더십이 돌이키기 힘든 내상을 입는다는 뜻이 된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한들 세종시를 고리로 지방선거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그 패배의 책임을 옴팡 써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것이다. 설령 모든 걸 묻고 일단 지방선거에 협조한다 하더라도 기적 같은 승리가 연출되지 않는 한, 그 책임을 피하긴 어렵게 됐다.

진수희 의원은 대놓고 막말을 했고, 전여옥 의원은 "한 개인을 따르는 건 한심한 일"이라고까지 일갈했다. 무참한 인간들에게 그 경박함을 경악할 필요 없다. 정치는 생물이라지 않았던가, 대통령의 위상에 버금간다는 철옹성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부서지고 있다. 무엇일까, 박근혜 없이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거는. 또 그이는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어떤 결정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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