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22일자에 게재된 삼성광고
오를 기세를 모르고 떨어지던 기온도 얼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봄이 오긴 오려나 보다. 만물이 소생하여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자연은 자연스러움이란 그렇게 움직여 가는 것이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바야흐로, 해빙의 계절은 찾아오고 있는 것일까. 삼성이 한계레, 경향에 광고를 다시 줄 모양이다. 삼성은 어제 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신문 백면(본지의 가장 뒷면) 광고 리스트에 한겨레와 경향을 포함시켰다. 그 광고의 문구는 “세계는 ‘기적’이라 부르고 우리는 ‘결실’이라 말합니다.”였다.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 폭로 이후 거의 2년여만의 일이다.

이제,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려나. 여기저기서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신빈곤'의 시대에, 부디 이 생경한 복원이 한겨레, 경향의 나아갊에 작은 품위라도 되길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는다. 삼성이 광고를 끊은 2년 동안 우연인지 모를 필연들이 겹치며, 한겨레와 경향의 경영 사정은 말할 수 없이 참담해졌다. 단적으로, 두 신문 모두 노동부의 지원을 받는 유급 휴가를 통해 기자들의 월급을 지급하는 자구적 경영으로 반쪽짜리 편집국을 운영한 바 있었다.

삼성의 광고가 당장 두 신문에 얼마만큼의 재정적 해갈을 줄 런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다른 기업들마저 여차하면 삼성마냥 광고를 안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뒷골목 '협잡'의 상황만큼은 이제 걷히지 않을까 싶다. 시민들의 진심어린 응원으로 종합일간지가 살아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이 그런 낭만을 허용할리 만무하니 낙담할 것도 색안경을 낄 것도 없다. 순정해지지 말자. 종이 매체의 존재는 광고이다.

언론이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자본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경로일 것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향한 꿈은 모든 언론이 꾸는 공통의 이상이지만, 자본으로부터 배제되는 언론을 지향하는 매체는 단 한 곳도 없을 테니까. 삼성과 광고 중단은 말하자면, 특정 기업이 특정 언론을 왕따 시키는 그런 뒤집어진 관계, 불경스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삼성의 광고가 재개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보자면 언론과 자본의 전통적 관계가 복원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거창하게 생각하긴 해야 한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삼성을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삼성이 몰락해야 할 까닭도 없다면, 언론은 감시와 견제를 통한 삼성과의 공생을 모색할 수밖엔 없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삼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 사주의 심기가 불편할 수 있다는 어림짐작으로 경영의 판단이 흐려지는 구멍가게 방식의 사고가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확한 통계나 조사치를 살펴보진 않았지만, 신문 광고의 실제적 효과가 날로 줄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할 테다. 신문 구독률 자체가 급격히 하강하는 중이고, 일반적으로 신문을 구독하는 계층은 인터넷을 즐기는 계층에 비해 소비에 더디게 반응하는 계층이기도 하다. '아이폰'의 사례에서 보듯 하나의 돌발 변수만으로도 전체 판이 흔들리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신문은 어쩌면, 기원을 알 수 없는 고리타분한 낡은 종이배를 띄어놓고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자본이 신문에 광고를 주는 것은 순전히 관리 차원, 경영의 위험을 예방하는 수준의 행위이다. 적나라하게는 기사를 넣고 빼고를 조절하기 위한 포석이며 사회적 관계망에서 보자면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자본을 통해 상대적 힘을 가진 언론을 상대하는 방어 본능이다. 부박하더라도 한겨레, 경향이 싸워야 할 영토는 거기이고, 게임의 룰은 그것이다. 그 시스템 바깥이란 어떻게 이해하더라도 배제 밖에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삼성에 광고를 받고, 삼성을 조질 수 있는 수준에서 언론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한다. 그 부단한 긴장의 연속에서 진보언론도, 상식을 지향하는 매체도 생존해야 한다. 항상, 조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할 기사를 애써 빼먹지 말고, 조져야 할 때라고 판단되면 거리낌 없으면 된다는 뜻이다.

경향신문이 삼성 광고를 받기 직전 김상봉 교수의 칼럼을 누락시킨 문제는 그래서 차라리 잘 된 홍역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당장에 위장이 딸랑거리더라도 그런 없어 뵈는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차라리 왕따의 유혹은 강해지고, 삼성 앞에 꼴만 우스워진다. 한겨레는 그나마 버틸 강단과 체력이 있어 뵈는데, 경향의 자세가 자꾸 흐트러지는 것이 염려스럽지만, 삼성의 광고를 일단 환영한다. 삼성에게 광고는 광고대로 받고, 조지기는 또 조지기대로 하는 자연스러운 관계를 유지해낼 힘이 여전히 한겨레, 경향에 있다고 믿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