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한겨레에서 일하고 있는 허재현이라고 합니다. 발 냄새, 땀 냄새 풍겨가며 이런 저런 현장을 뛰어다니다보니 어느 새 기자 짬밥 3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20대인데 어느덧 30대의 나이가 된 것처럼, 마음은 여전히 수습기자인데 경력은 벌써 3이라는 숫자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실력은 없어도 열정 하나만 있으면 용서받던 병아리 언론인의 때를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하는 셈입니다. 어지간히 부담도 되지만 이제야 깊은 숲속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아 조금은 설레기도 합니다.

이런 때 <미디어스>에 ‘못다한 이야기’ 연재를 맡게 되었습니다. 볼 것없이 요란하기만한 저의 졸필 보관함인 블로그(다시한번까딸루냐찬가)가 ‘초큼’ 여기저기 알려진 덕에 이런 연재도 제안 받게 된 듯합니다. 사실 <한겨레>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외부에 글을 기고할 만큼 뛰어난 언론인은 못됩니다만, 그래도 뭔가 다른 공간에서 독자님들과 소통하고 싶은 유혹에 이끌려 이렇게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크게 좋은 글은 못써드리겠지만 제가 느끼고 경험했던 일들을 욕심내지 않고 편안하게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여기서 이런 병아리 기자가 좌충우돌하면서 살고 있구나’ 알아주시면 그 정도로도 족할 것 같습니다. 그럼 신고 인사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허재현 기자 블로그 화면 캡처
오늘은 여러분께 보도하고 난 뒤 ‘거 참 씁쓸했던’ 취재 뒷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에서 한번 다뤘던 내용인데요. <미디어스> 독자님들께 한 번 더 전해드립니다. 여전히 유효한 문제제기 같아서 말입니다.

기자가 무언가 취재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우리 사회를 좀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구가 큰 몫을 차지할 겁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을 찾아내 사람들에게 알리고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기자로선 큰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몇 번 했습니다. 2008년 10월 하수관 보수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밀착 취재해 보도한 뒤 서울시로부터 환경 개선 약속을 받아낸 적도 있고(물살 거센 5m 지하 막장, ‘도시의 정맥’ 땜질) 2009년 6월 촛불집회 참여한 학생의 학생회장 입후보를 막으려한 송곡고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인권침해 결정’을 내리는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촛불 괘씸죄?’ 학생회장 후보 ‘안될 말’)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럴 때 ‘기자가 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한데 모든 기사들이 이런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보도 이후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는 것만 목격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 이런 경우를 두 번이나 연거푸 당해 ‘이거 참 씁쓸하구만’ 했습니다.

첫 번째,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경찰의 폭력 진압 보도

지난 해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을 취재하다 저는 경찰 특공대가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복날 개 잡듯’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해 보도한 적 있습니다. 마치 광주항쟁 당시 시민들이 공수부대에 구타당하는 것 같은 현장이 고스란히 펼쳐졌었지요. 당시 저는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된 공장 안에서 보름간을 버티다가 폭력진압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동영상 카메라를 품에 안고 있었고 그 날 경찰의 노동자 폭행 장면은 생생하게 영상에 담겨 보도될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좋아하는 단독 보도였습니다.

폭풍처럼 정신없이 기사와 영상을 데스크에 송고한 뒤 짧은 순간 한숨을 돌리며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조현오 경기경찰청장(현 서울 경찰청장)이 최소한 대국민 사과 정도는 하겠구나.’

경찰이 거짓 해명 못하도록 영상까지 찍어 보도했으니 이런 추측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요. 하지만 저는 정말 순진했습니다.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은 지금 서울경찰청장이 되어 있습니다. 사과하기는커녕. 경질당하기는커녕. 조 청장은 올해 1월 초 되레 서울경찰청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승진 이유를 보면 더욱 더 가관입니다. 언론 보도를 보니 강희락 경찰청장이 “조현오 경기청장은 쌍용차 사태를 잘 해결한 게 평가돼 서울청장으로 전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어 ‘헉’소리가 다 났습니다. 다른 이유도 아닌 ‘쌍용차 사태 진압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을 하다니요. 제 보도는 정부에게 철저하게 짓밟힌 셈이었습니다. 아니, 밟히지도 않고 그냥 버려진 거지요.

이런 경우를 보면 대체 정부가 언론이 왜 존재하고 있는 지 고민은 하고 있는 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언론이 뭔가를 고발하고 정부에 시정하라고 알려도 무시하고 되레 ‘엿 먹으라’는 듯 문제 당사자를 승진시켜버리니 말입니다. 나중에 조 청장을 보게 되면, 제가 과연 웃으면서 인사를 드릴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 미군 기지촌 일대의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 밀집구역. 이곳에서 인신매매되어 온 필리핀 여성들이 일한다. ⓒ허재현 기자
둘 째, 인신매매 당해오는 필리핀 여성들 보도

제 보도로 되레 상황이 악화된 사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지난 12월 저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인신매매 당해오는 여성들을 보도해드렸습니다. ‘가수로 일하게 해준다’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미군 기지 주변 유흥업소에 보내지는 안타까운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도해드렸습니다. 근 3주 동안 필리핀 여성들을 만나보고 문제의 업소들을 잠입 취재하는 등 꽤 공을 들여 취재했었습니다. (한국행 필리핀 여성 ‘가수 꿈’ 갇히고 ‘성노예’)

이 취재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이유는 단 한 가지. ‘제발 이 문제 좀 뿌리 뽑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인신매매 필리핀 여성 문제는 저희 <한겨레>를 비롯해 몇몇 언론에서 지난 몇 년간 간헐적으로 보도를 해왔던 이슈입니다. 하지만 몇 년 째 제 자리 걸음 상태로 방치된 사회문제이기도 하지요. 정부가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다룬 언론 보도에 날카로움이 없기도 했습니다. 이전의 기사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기자들이 직접 필리핀 여성들을 만나거나 인신매매 현장을 취재하지 않고, 시민단체의 입을 빌려 제3자의 시선으로 보도를 했더군요. 모두 좋은 기사들이었지만 ‘~하더라’는 식의 보도였습니다. 이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의 모든 과정을 살펴보고 ‘~하더라’가 아닌 ‘~이다’고 보도해 사회적 관심을 끌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다’고 보도하는 데 성공했고 사회적 관심도 어느 정도 끌었습니다. 민주당의 김춘진 의원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신매매 방지법 제정에 나서기 시작했고, MBC와 인천방송이 후속 보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보도 이후는?

참담합니다.

보도가 나간 뒤 법무부에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지 물었는데 절망적이었습니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법무부 관계자에게 ‘보도를 보지 않았느냐’고 따졌지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명백히 인신매매 현장을 잡아서 보도를 해줬는데도 이렇게 나오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숟가락에 밥을 얹어서 입까지 들이 밀어줬는데도 삼키지 않는 정부였습니다.

정부는 무관심 덕에 미군기지 주변 유흥업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변했습니다. 저의 취재를 도와주었던 시민단체로부터 최근 전화를 받았습니다.

“보도 나간 뒤 유흥업소 업주들이 필리핀 여성들 출입단속 시키고, 시민단체 사람들은 아예 들어가 보지도 못하게 해요. 상황이 더 악화됐어요.”

용기 있게 제게 인신매매 필리핀 여성에 관해 인터뷰 해준 동두천의 한 업소 사장도 곤란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제게 전화해서 이러시더군요.

“보도가 나간 뒤 기획사들이 우리 집에 (필리핀) 여자애들을 안 보내 주려고 해요. 언론에 협조하는 사장으로 낙인찍혔어요. 왜 그런 인터뷰를 해줬는지 후회돼요. 이거 어떡할 거에요.”

보도 안하느니만 못한 상황을 제가 저지른 셈이 되어버렸더군요. 그나마 필리핀 여성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던 업소 사장님이었고 그래서 취재를 도와주었던 분인데 제 보도로 되레 곤란한 처지에 놓이셨습니다. 참 답답했습니다. 그저 끝없이 미안할 뿐. 이 문제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법무부가 원망스러울 뿐이었지요.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솔직히 힘 빠지기도 합니다. 내가 대체 ‘뭣 하러 이 박봉의 월급을 견뎌가면서 기자로 살고 있는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기도 합니다. 내가 한 보도로 세상을 정의롭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제가 아직 순진한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엔 여전히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신음하는 사람들은 많고, 이를 찾아내는 공무원의 숫자는 부족하니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요. 기자 생활 3년 차 접어들고 있지만 일희일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좀 최근엔 좀 씁쓸했다 이겁니다.

일단 이 자리를 빌려 정부에 호소합니다. 제발 언론 보도에 귀기울여주세요. 당신들을 귀찮게 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들을 돕고 싶을 뿐입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여러분의 마음이나 국민을 위해 기자수첩을 작성하는 제 마음이나 똑같지 않겠습니까.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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