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말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되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한다는 뜻으로 곧잘 인용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교육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뜻으로 통용될 만하다. 갓난아이 때부터 음악듣기, 영어듣기를 쫓아다녀야 하고 대학졸업 후에는 취업을 준비하느라 늙어서는 일자리를 얻기 위한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을 떠나지 못한다. 과도한 교육비로 인한 가계부담 증가가 출산율을 저하시키고 계층간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 또 비생산적인 분야에 대한 과도한 지출로 인해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잠식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4/4분기∼2009년 1/4분기 가계의 교육비 지출액이 40조5,248억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39조1,557억원보다 3.5% 증가했다. 이것은 2005년의 30조854억원에 비해 10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 시기에는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터져 국민생활이 어려워졌는데도 불구하고 교육비 지출이 오히려 증가했다.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었는데도 다른 부문 지출을 줄이면서까지 교육비 지출을 늘렸다는 소리다. 실제 같은 기간 주류 및 담배 지출액이 0.5% 줄었는데 이것은 1971년 관련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또 교통비 3.1%, 통신비 1.5%, 의류 및 신발 구입비 1.1% 등으로 감소했다.

▲ 19일자 한겨레신문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의 가계소비 중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3%이다. 이것은 2007년 기준 미국 2.6%의 2.8배, 일본 2.2%의 3.3배, 영국 1.4%의 5.2배나 많은 것이다. 또 2008년 기준 프랑스 0.8%, 독일 0.9%보다 9배나 높은 수준이다. 2009년 상반기에는 그 비중이 7.4%로 더욱 높아졌다. 2000년의 5.4%에 비해 2.0%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유학-연수비용까지 합치면 8.2%로 2000년의 5.8%보다 2.4%포인트 늘어났다. 교육비 지출중에서 공교육비 비중은 2000년 3.5%에서 2009년 상반기 3.8%로 증가세가 미미한 편이다. 그런데 사교육비 비중은 1.9%에서 3.6%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역대정권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헛구호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교육비 지출증가는 치열한 입시경쟁 탓이 크지만 그 이전에 공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의 공교육비를 비교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1인당 유아 교육비는 25개국중 24위, 초등은 28개국중 23위, 중등은 29개국중 22위, 대학은 27개국중 21위로 최하위권이다. 또 학업성취도가 기초수준 미달인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미국 69.9%, 일본 53.1%이지만 한국은 29.2%에 불과하다. 반면에 학업성취도가 탁월한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미국 17.9%, 일본 45.1%지만 한국은 83.7%에 달한다. 이것은 한국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대학입학을 위한 사교육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다.

가계가 이렇게 과중한 교육비를 부담해서는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출산율 저하의 첫째 원인은 교육비 부담이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력 감소는 내수성장을 둔화시키고 나아가 경제규모를 축소시킨다. 맞벌이를 해도 자녀 교육비를 대기 어려우니까 출산을 기피한다. 사교육비를 대다보면 내 집 마련도 어려워지고 문화여가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빚을 내서 가계를 꾸려야 한다.

국가적으로도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부진으로 내수산업이 진작되지 않는다. 교육관련산업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미약하다. 조기유학-해외연수는 국제수지를 악화시킨다. 저축율 저하는 자본축적의 감소로 인해 성장둔화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중산층을 붕괴시켜 사회 양극화를 촉진한다. 가계저축률이 1988년에만 해도 25.2%로 세계 1위였는데 2000년 들어 급격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는 3.2%로 OECD 국가중 최하위권을 나타낼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가 자율과 경쟁의 교육정책을 주창하면서 사교육이 더욱 번창하고 있다. 강남 학원의 증가와 사교육 사업의 팽창이 그것을 말한다. 대형학원은 이미 학원이 아니고 기업 수준이며 주식시장에 상장된 사교육업체만도 18개나 된다. 공교육에 대한 투자확대를 통해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역대정권의 경쟁위주의 교육정책은 중산층을 붕괴시키는 빈민화 정책이며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잠식하는 빈국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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