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7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대한민국은 이미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악한 문재인 정권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최저임금을 인상해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밀어 붙이면서 오로지 ‘괴담’에만 근거한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뜬금없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캐비닛을 뒤져 증거능력도 없는 문건을 꺼내 흔들며 생중계를 자청해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정치적 복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미국은 중국을 대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을 강행하며 압박 강도를 올리고 있고, 북한은 문재인 정권의 순진한 ‘베를린 구상’을 걷어 차버렸다. 문재인 정권은 서울 한복판에서 불순분자들이 웃통을 벗어 제끼고 몸을 흔드는 음란한 행사에 인권위를 보낼 정도이지만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다!

거짓말이 아니다. 실제 신문 지면이 이런 주장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다른 보수언론들도 정도는 각기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현실을 얼마나 과장 왜곡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여러 사례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최저임금 문제일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5일 밤 전체 위원들이 참여한 표결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했다. 전체 위원이 표결에 참여한 것은 2008년 이후 9년 만이다. 노동자 측 위원이나 사용자 측 위원이 논의 과정에서 퇴장해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번 결정이 노사합의안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물론 사용자 측 위원들은 사퇴를 선언하는 등 반발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번 결정이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합의제의 취지에 맞게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은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중소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일제히 지면에 배치했는데, 이는 상당히 괴이한 논리다. 왜냐하면 중소자영업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알바’들의 인건비 뿐 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의 ‘갑질’ 피해를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힘없는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전가해왔다는 게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대표적으로 편의점이나 치킨집을 생각해보라.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오로지 최저임금 인상의 불합리성만 입을 모아 성토하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케 한다.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인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대안을 내놓을 일이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최저임금의 결정을 물가 수준과 연동시키는 방법도 있다. 차라리 이게 합리적일 수 있지만 보수언론은 이런 얘기엔 관심이 없다. 17일 보수언론 지면에서 제기된 거의 유일한 제도적 대안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전문가 중심의 완전 독립결정기구가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완전 독립결정기구’란 정부의 입김을 배제하라는 것이고 ‘전문가 중심’이란 돌고 돌아 결국 노동계를 대표하는 인물 등은 빠지라는 얘기나 같다. 여기에 지금의 구도를 그대로 반영한다면 사용자 측의 철학에 코드가 맞는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돼 근로자 측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쨌든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정부는 16일 ‘소상공인 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내놨다.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에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인 16.4%와 최근 5년 최저임금 인상률인 7.4% 사이의 차이 만큼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용절감 권익강화 영업지원으로 요약되는 간접지원 성격의 대책도 더해진다.

보수언론은 이런 방식에 대해서도 정부가 세금으로 민간의 임금 손실을 보전해준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정부의 발표에 논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현실을 따져보면 정부의 민간 기업에 대한 어떤 지원도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세금으로 임금을 보전해주는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그 대상이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인 경우는 더 그렇다. 이런 경우에 무 자르는 것처럼 어떤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임금에 개입하는 게 아주 특별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일련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민간 기업에 대놓고 임금 수준을 올리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보수언론의 방식대로 하면 대기업이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는 동안 불안정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활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로 고통에 시달리는 일상이 영원히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낙수효과’에 대해 신념에 가까운 믿음을 가졌던 이명박 정부도 2009년을 지나면서부터는 ‘동반성장’으로 경제정책의 슬로건을 바꿨다. 대한민국 경제 파탄의 가장 큰 책임은 대기업 집단에 있지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도 쉽지 않은 수준의 시간당 최저임금에 있지 않다.

보수언론은 그저 안 된다고만 한다. 최저임금 인상도 안 되고 소득주도 성장도 안 되고 분배 강화도 안 되고 공무원 확충도 안 된다. 보수언론이 지난 몇 년 간 경제 위기의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구조개혁 특히 노동개혁이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보수언론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나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등을 흔히 예로 든다.

그러나 하르츠 개혁은 독일 내에서도 실패했다는 논란의 대상이 된 바 있고 바세나르 협약의 경우 노동조합의 강력한 조직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은 실질적으로는 아무 힘도 없는데 오로지 보수언론의 지면에서만 ‘수퍼 파워’가 된다. 보수언론에 의하면 독일은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와 복지 축소로 독일병을 고쳤다는데, 대한민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여기서 더 얼마나 확대할 수 있겠으며 복지는 또 뭘 더 축소한단 말인가.

오로지 모든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대기업의 탈법과 방종에는 눈을 감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의 방아쇠는 삼성으로부터 당겨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삼성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권과 결탁했고 그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던 최순실 씨의 딸 승마선수 정유라 씨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재판은 여러 구설에 휘말리며 꾸역꾸역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를 정리하던 중에 박근혜 전 대통령 혐의를 수사하는데 참고가 될 자료들을 발견해 검찰에 넘겼다. 보수언론은 이를 청와대가 사법부에서 이뤄지는 재판에까지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라며 ‘정치 보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삼권분립은 중요하다. 그러나 청와대가 판사에게 ‘오더’를 내린 것도 아니고, 스스로 발견한 자료를 검찰에 넘겨준 것뿐이다. 누구는 ‘생중계’를 예로 들어 정치적 때를 묻혔다며 압수수색을 자처했어야 한다는데, 청와대가 스스로 압수수색 오더를 내리고 검찰이 이에 따라 압수수색을 해서 그 메모들을 찾아내는 그림이 더 웃긴 것 아닌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보수세력 최대 정당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영수회담에 가지 않는다는데 대통령과 좋은 분위기 연출하고 싶지 않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명분도 없어 보인다. 말로만 혁신을 외치는 보수세력의 정치와 언론이 언제까지 이런 식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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